하나! 어제의 용사들 (@ 서희 결혼식)
유스 때 부모를 따라 도도한 어린 숙녀로 이곳에 왔던 (김)서희가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고 이곳을 떠났다. 결혼코칭을 하면서, 리허설을 하면서, 주례를 하면서 떠날 두 사람이 벌써부터 눈에 밟혀 마음이 찡했다. 아름답게 결혼 예배를 하나님께 올려드린 자리에 어제의 용사들이 뭉쳤다. 얼마 전 떠났던 장호/자영 가족, 치대 교수로 열심히 살아가는 훈지, 소아 치과 레지던시를 시작한 광원이, 국가 비밀 요원(^^) 성표와 Astrazeneca 근혜 부부까지! 개인적으로 서희를 아는 이들이 많이 참석했다. 모두 열심히 헌신하다 떠난 이들이기에, 이런 기회를 통해 이들 얼굴을 보는 것은 (많은 이들이 떠나는 매해 여름마다) 하나님이 제일교회에 주시는 깜짝 선물이기도 하다.
이들과 뭘 할까 하다가 성표/근혜 부부와 광원이를 데리고 Dinkers에서 피클볼을 쳤다. 성표는 한 게임 쳤는데 이미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광원이는 조금 익숙해지면서 탁구 치듯 상대방을 농락하는 모습이 살아났다(^^). 성표/근혜 덕분에 (외국인 남편을 교회로 이끌기 위해 오래 전 제일 교회를 떠나 외국인 교회로 옮겨간) 왕년의 제일교회 교사 세민이도 만났다. 남편 Alex와도 반갑게 인사했고, 많이 큰 온유와 조이와도 만났다. 장호/자영 성도와는 주일에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Albany에서의 첫 걸음이 순탄치 않았지만 이 시간 역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에 잘 견뎌 나가자고 권면했다. 축도 후에 보지 못한 훈지와는 사진도 못 찍어 아쉬웠지만, 예배를 함께 드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 어제의 용사들이 뭉쳤다…가 다시 헤어졌다. 각자 처한 곳에서 열심히 주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갈 줄을 믿기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둘! 3D Percussion
수년전 Eastman School of Music 음대 박사과정을 마치고 떠난 (이)영경이가 잠시 로체스터를 방문했다. 퍼커션을 전공했기에, 제일교회를 다닐 때 찬양단 drummer로 헌신했었다. 퍼커션 전공자라 그런지 드럼을 다루는 솜씨도 여느 drummer들과 달랐다. 찬양단으로 섬기기 위해 12주 일대일 제자양육 과정을 마쳤고, 열심히 찬양단으로 헌신하다가 이곳을 떠났다. 지금은 인디애나에 위치한 Ball State University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얼마 전 연락이 왔다. 일전에 내게 언급했던 퍼커션 그룹을 만들었고, 그 이름은 3D Percussion이며, 이번에 로체스터에 올 때 공연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제자양육 훈련을 받고 떠난 청년들이 가끔씩 이곳에 들릴 때마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영경이도 그렇다. 말없이 묵묵히 제일교회에서 주를 섬기는 일에 열심을 다했던 청년이라 더 그런지 모르겠다.
이 연락을 받은 것이 목요일이었다. 때마침 그 주 찬양단 drummer들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얼른, 온 김에 찬양단 drummer로 섬겨달라고 했고, 영경이 역시 흔쾌히 허락을 했다. 참고로, 제일교회를 떠난 찬양단원들은 대부분 이곳에 돌아올 때마다 찬양단에 선다. 그 주에 김성영 권사가 리더로, 장호 형제가 일렉으로, 영경이가 드럼으로 합류해 주어 찬양단이 더 풍성해졌다.
공연은 2회 열렸다. 3일 낮에는 St. Joseph’s Park에서, 저녁때에는, Eastman Hatch Hall에서 열렸다. 낮 시간 보다는 저녁 시간이 참석하기에 용이하기에 성도들에게는 저녁때 모이자고 광고했다. 아내와 손지혜 집사는 낮에도 참석을 했다. 가보니 (강)Daivd 식구도 왔었다고 한다. 낮 공연 theme은 pop이었다고 하는데 너무 좋았다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참석했을 것을…
아쉬운 마음을 닫고 저녁에 Hatch Hall로 향했다. 생각보다 많은 교우들이 모였다. 영경이를 잘 모르는 교우들도 3D Percussion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참석을 했다. Eastman 박사과정 중이거나 졸업생들로 구성된 3인조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 연주는 어디서 많이 들었던 박자들이 이어졌다. 사물놀이였다. 나도 모르게 손으로 박자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 이후의 곡들도 숨을 죽이며 들을 수밖에 없었다. 풍선을 가슴에 품고 손가락으로 풍선을 자극하며 연주했던 것도 평생 기억에 남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곡은 미드 “Strange Things”의 장면을 연상케 하는 기묘함이 드러나 좋았다.
로체스터라는 곳에 살면서 “음악”이라는 특별한 선물을 누릴 수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했다. 물론 제일교회를 다녔던 음대생들이 하는 연주이기에 더 마음에 와 닿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제일교회에서 훈련받고 떠난 이들이 각자 처한 위치에서 자기에게 주신 재능을 통해 예수의 향기를 드러내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런 좋은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영경아, 언제든 이곳에서 공연하게 되면 알려다오. 제일교회 식구들과 함께 달려 아니 뛰어가마!”
셋! 이모저모
(1) The Fourth of July 저녁에 제일 교우들이 East Henrietta 약국 앞으로 모였다. 매년 모이는 장소로 말이다. 대도시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나름 괜찮은(^^;) 불꽃놀이를 함께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다. 사실 불꽃놀이를 더 잘 볼 수 있는 장소도 있지만, 이곳에서 30여명이 함께 모여 볼 수 있기에 매년 여기서 모인다. 올 해는 청년들도 꽤 많이 참석했다. 인턴 job을 얻어 얼마 전 로체스터로 돌아온 민하와 뉴욕시티에서 올라온 원영이 부모님, 성영 권사의 학생들까지! 맨해튼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작년보다는 올해 불꽃놀이 피날레가 볼만했다. 올해도 예년처럼 제일교회 식구들의 교회밖 아웃팅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귀한 식구들~ 내년에는 Henrietta Town이 불꽃놀이 예산을 좀 더 높여주길 기대해본다.
(2) 매년 방학 중에 한 번 정도 한미연합예배를 드린다. 이번에는 7월 첫 주일로 잡았다. 양측 교우들이 속속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예배 형식은 FUMC를 따랐다. 찬양은 한영으로 함께 불렀고, 설교는 내가 영어로, 스크린에 한글 번역이 띄워졌다. 온 교우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며 나누는 시간도 소중했다. 린다가 나와서, 원영 집사 부모가 이틀 전 로체스터에서 집(뉴욕시티)으로 내려가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사고에 비해 경미한 부상이여서 정말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소식을 나누었고, 그동안 (미국) 찬양단 멤버로 수고한 (손)예인이가 떠남에 많이 아쉬워하면서, 꽃다발로 수고를 치하해주었고, 뒤이어 내가 기도로 축복해 주었다. (FYI – 원영이와 예인이는 FUMC 오전 예배 때 예배와 찬양으로 수고해주고 있다). 설교 후 이어진 성찬식도 한미연합으로 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서로 다른 두 회중이 한 예수 안에서, 한 테이블을 앞에 두고, 한 빵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하나됨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았다. 한 지붕 두 가족이 잘 어울리기 쉽지 않다고 하는데, FUMC와 KMUMC는 주안에서 서로 위하려는 모습이 늘 보여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