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달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는 이야기 하나로 대신 하려고 한다. 내가 미국에 와서 한인 목회(로체스터 제일교회)를 한 지는 22년이 되었고, Faith UMC 영어 목회를 한 지는 올 해가 딱 10년이 되는 해이다. FUMC 교우들의 격려 덕분에 내 영어 실력도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다 표현하는 것은 참 어렵다.
그런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Frank이다. 처음에는 그와 대화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영어 목회를 시작한 후 첫 두어 해는 Frank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면, 괜히 Linda나 David와 이야기하는 척을 하기도 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Frank는 나와 이야기하려던 것을 이내 포기하고 돌아섰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영어를 함에 있어서 제일 어려운 부분은 농담이다. 이것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가 없다. 특히 Frank는 농담의 달인이었다. 그는 늘 내게 다가와 농담을 하곤 했는데, 얼굴 표정은 너무 진지했었다. 그래서 나도 진지한 얼굴로 대응을 하곤 했는데, 그런 나에게 지긋이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려주면, 그제야 농담인줄 알고 나도 긴강을 풀며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의 농담은 나를 편하게 해주기 위한 방식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Frank가 다가와 말을 걸려고 할 때마다 나는 이미 웃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게 그의 방식으로 “내가 네 곁에 있어! 나는 네 편이야”라고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Frank가 79세의 나이로 얼마 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갑작스레 폐암 말기 판정을 받게 되어서 입원 치료를 몇 주 받았지만 더 손을 쓸 수가 없어서, 집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낸 끝에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신 것이다. FUMC 예배 음향을 맡아주고 있는 김원영 집사와도 친했기에 그와 함께 심방을 갔었다. Frank는 여전히 농담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고, 호흡이 힘든 것 외에는 괜찮다며 곧 교회에서 얼굴 보게 되기를 함께 기도했었다.
특별히 감사한 일이 하나 있다. Frank가 소천하기 바로 전 주일이었습니다. 나는 예배 후에 Frank를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마침 그날이 성찬주일이었는데, Patty가 예배 후 내게 다가와 말했다. “Frank에게 성찬을 베풀어 주면 어떨까요?” 그 생각은 전혀 못 했었는데, 너무 좋은 제안이었다. 성찬 elements를 챙긴 Patty와 그리고 원영 집사와 Linda도 함께 동했앴다.
Frank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숨쉬기를 힘들어했지만, 의사소통은 여전히 잘 되었다. 여느 때처럼 우리는 몇 가지 농담을 주고받았다. 정말 유쾌한 시간이었다. Frank만을 위한 특별한 성찬 예식을 함께 나누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성찬이 될 줄은 몰랐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거룩한 순간을 허락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또 하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Frank와 나는 늘 장난스럽게 경쟁했던 것이 있다. “누가 더 잘생겼냐”는 주제로 말이다. 우리는 서로를 “잘생긴 남자”(handsome guy)라고 불렀다. 내가 “내가 더 낫지”라고 말하기도 했고, “네가 제일 잘생겼고, 나는 바로 그 다음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지막 방문 때, 나는 그의 침대 옆에 놓인 오래된 사진 하나를 보았다. 약 10년 전쯤의 Frank 사진이었다. 아주 멋있는 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진 속 그의 얼굴처럼, 병상에 누워 계심에도 그는 여전히 잘생겨 보였고, 그 사진을 보면서 인정했다. “Frank, 네가 이겼어. 너 정말 나보다 더 잘생겼어.”
Frank가 소천한 후, 나는 Linda와 함께 그의 아내 Marlene을 찾아가 장례 예배에 대해 논의했다. 여기서 잠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여러분은 친구들의 이름을 휴대폰에 어떻게 저장하는가? 그냥 본명으로 저장 하는가, 아니면 애칭으로 저장하는가?
Marlene이 내게 한 이야기가 내 마음을 깊이 울렸다. 그녀는 Frank가 사람들의 이름을 그냥 이름 그대로 저장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Frank가 목사님 이름은 어떻게 저장한 줄 아나요?”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그 사람, 목사님을 ‘Handsome Lee’로 저장해 놨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울컥했다. 세상을 떠난 후에도, Frank는 여전히 내게 따뜻하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영어가 여전히 불편한 나를 늘 편안케 만들어 주었던 Frank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도 내게 선물 하나를 주고 떠나신 것이다. 그에 대한 기억이 다시 내 마음을 강하게 두드렸고, 내가 그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는 죽음을 절망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붙잡아 온 소망의 완성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믿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떠난 자들은 지금 예수님의 품 안에 있다는 것을! 그곳에는 더 이상 고통도, 슬픔도, 눈물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슬픔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으며,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물론 Frank를 이 땅에서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 깊은 슬픔을 안겨준다. 나는 여전히 그를 그리워한다. 그의 미소가 그립고, 그의 농담이 그립다. 때로는 그 농담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결국은 나를 웃게 만들었던 그의 따뜻한 농담이 너무 그립다. 맞다. 그를 잃은 우리의 마음은 무겁고,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평안히 쉬고 있는 “잘생긴” Frank를 떠올릴 때, 우리는 이것이 진정한 복임을 깨닫는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우리도 언젠가 Frank처럼 삶의 마지막에 이를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결국 이 땅의 사라질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한 것들, 즉 하나님과 함께 누릴 기쁨과 평안을 바라보며 살아가자. 그리고 그날이 와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문 앞에 서게 될 때, 부끄러움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Frank와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영원한 기쁨에 참여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