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일교회 11월 풍경 >

< 제일교회 11월 풍경 >

본래 3-4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나가곤 했다. 그런데 아버지 건강도 여의치 않으신 것 같고, 작년에 한국에 나갔을 때 “이제 또 너희들 볼 수 있겠냐”고 하셨던 아버지 말씀이 귓가를 떠나지 않던 차에, 올 해도 부모님을 뵈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정상 성수기에는 힘들고, 가을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한 쪽 눈은 실명한 상태이고, 다른 쪽 눈도 1/4 정도 밖에 시력이 남아 있지 않는 상태이다. 더 악화되기 전에 함께 여행을 모시고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오랜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남해에서 가족이 펜션을 운영하는 (우)형순에게 말이다. 형순이는 LG정유 여자 배구단 9연패의 마지막 선수들 중 한 명이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LG정유에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예배 모임을 인도하곤 했는데, 그때 알게 된 동생이다. 정말 오랜 만에 만나는 거였는데도 너무 반갑게 맞아주어 고마웠다. 펜션 바로 옆 CU(형순이네가 운영)가 있는 것도 너무 좋았다.

한국은 휴게소가 대박이다. 없는 음식이 없다. 주전부리도 얼마나 많은지… 문경 휴게소를 거쳐 대구에서 막내이모를 만났다. 신외리 목회 때부터 물심양면으로 돌아봐준 이모부와 이모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사촌 창현이의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나왔다. 혈육이지만 2-3년에 한 번씩 보는 것이라 어색할 것 같았는데, 조카들이 살갑게 다가와 줘서 너무 좋았다.

한참을 달려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에 이르렀다. 첫 번째 도착지는 남해가 아닌 광양! 얼마 전 일대일 제자양육을 마친 재원(고향:광양)이가 강추해 주었던 “청룡식당”에 도착했다. 재첩국!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았다. 우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시원함, 적당한 간으로 무쳐진 재첩무침! 부모님도 너무 좋아하시니 나도 더 맛있었나 보다. 남해에 도착해서 형순이의 환영을 받고, 숙소로 향했다. 아버지와 아내는 얼굴팩! 나는 옆 CU에서 (서울에서 그토록 찾았지만 없었던) 캔디바를 발견하고 6개를 단번에 구입! 그렇게 남해 첫날밤이 지나갔다.

남해는 처음 가본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장관이다. 따로 떨어져 있는 섬들 하나하나도 너무 예뻤고, 섬과 섬을 잇는 다리도, 굽이굽이 펼쳐지는 해안가 풍경도 너무 아름다웠다. 펜션 바로 앞 발코니에서 부모님과 해돋이를 보며 이야기를 나눈 시간도 너무 좋았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갈치조림, 아버지가 좋아하는 갈치구이를 동시에 맛볼 수 있었던 공주식당! 형순이가 추천해 준 곳인데, 자기 친구인 동광호 선장이 강추해서 왔다고 하면 더 잘해준다고… 가서 “동광호 선장 추천으로 왔어요” 했더니, 안에서 어떤 남자가 돌아앉으며 “제가 동광호 선장인데요!” 형순이 친구인 동광호 선장은 유명 유투버(55만 구독자^^)란다. 사진도 한컷! 난 갈치구이 파인데, 정~말 맛있었다. 인생 갈치구이였던 것 같다.

보물섬 전망대와 독일마을도 장관이었다. 전망대 앞에 펼쳐진 해안선을 보고 있자니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남해 독일마을은 60-70년대 한국 경제발전을 위해 독일로 향했던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기리며 만든 마을이었는데 독일에 온 듯 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노고로 인해 벌어들인 외화로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며 나라의 기틀을 이루었다. 그때 이들이 당했던 차별과 외로움과 육체적 고통에 대한 역사를 아버지를 통해서 듣기도 했다.

주일에는 한 시간 반 떨어진 곳에 있는 칠원(경남 함안)에서 예배를 드렸다. 가까운 곳에도 교회들이 많았는데 아버지가 구지 칠원 교회로 가자고 한 이유가 있었다. 이 교회에 내 외증조부(윤형규)가 다니셨다. 그때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도 이 교회를 다니면서, 윤형규 할아버지와 독립운동을 함께 하셨다고 한다. 그때 윤형규 할아버지는 태극기를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 만세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전달해 주러 가다가 일본군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셨다고 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밝혀져, 지금은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으셨다.

모두 알다시피, 손양원 목사는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인민군 오재선을 용서하다 못해, 사형 선고를 받은 그를 구명하여 양아들로 삼은 분이시다.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런 이유로 한번쯤은 꼭 아들인 나와 함께 방문하고 싶으셨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중매를 서신 분이 손양원 목사와 주기철 목사였단다(^^). (주기철 목사는 내 외할머니의 작은 아버지이시다. 두 목사님은 평양신학교를 함께 다니셨다.) 어머니가 칠원 출신으로 7살 때까지 이곳에서 사셨다고 하는데, 정작 하나도 기억이 나진 않으신다고…^^ 이래저래 칠원교회는 우리 가정과 유래가 깊은 교회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렇게 주일 예배를 이곳에서 드린 것은 이번 남해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인 듯하다.

형순이와 아쉬운 인사를 하고, 우리는 여수로 향했다. 게장을 먹기 위해서! “청정게장촌”! 수많은 연예인들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알고 보니 재원이도 여수만 가면 들리는 곳이란다. 한 그릇 가득 세 번 리필이 된다. 그런데 우리 주변 사람들은 기본으로 나오는 것만 먹고 일어나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게장에 대한 모독이란 말인가!^^ 우리는 세 번 꽉 채워 리필! 먹으면서 지난 여독이 모두 힐링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그 유명한 여수 케이블카까지! 어머니는 힘들어 차에서 쉬시고, 아버지만 모시고 갔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여수 바다가 장엄하고 수려해보였다. 아버지가 이 장면들을 자세히 보실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대충 윤곽과 바다 소리와 분위기를 느끼시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좋았다. 그냥 한국에서 이런저런 일들 보며 부모님이랑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시간을 내어 여행을 다녀온 것이 좋았던 이유는 추억거리들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진도 많이 남겼다. 오가며 나보다 살뜰히 부모님을 챙겨주고 분위를 만들어준 아내가 없었다면 재미없는 아들과의 어색한 여행이 되었으리라! 짧았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남해 여행이 되었다. 내년에도 부모님 건강이 허락되실 줄 믿고, 동해 여행을 만들어볼까 한다.

너무 짧게 잡고 간 한국 여정이었지만, 하루하루 알차게 보낸 것 같다. 건강검진도 받았고, 윤준호 집사 덕분에 치아 치료도 잘 받았다. 아내의 생일을 아버지가 소래포구에서 열어주어, 외삼촌네와 큰이모와 제수씨와 영은이도 함께 모였다. 아내가 좋아하는 회를 후회 없이 먹은 것 같다. 원기 형님네와 예찬이네와의 만남도 반가웠다. 찬수의 깜짝 등장에 부모님이 너무 놀라 행복해 하셨고, 조카 샘율이의 퇴소식(논산)도 부모님과 진영이네(동생)와 함께 해서 너무 좋았다. 케리그마(감신대 농구부)와의 만남도 좋았고, 제일교회 오래전 지휘자였던 진우와의 만남도 너무 행복했고, FUMC 사역의 life-time 동역자 소윤/민환과의 시간도 너무 소중했다. 창천교회 제자 선희(조선호텔)의 깜짝 선물도 너무너무 좋았다. 마지막 날 밤 10시에 만난 (곽)예림이와의 만남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스트만 출신들로 구성된 실내악 연주단 창단 예배를 맡아 설교한 것도 내겐 의미가 크다. 선재를 만난 것도 꿈만 같고, 찬미, 선영, 유리와 “Studio Bara”의 첫 시작을 함께 해서 너무 감사하다. 오랜만에 사촌동생 진휘, 진남, 진선이와 작은 엄마를 만난것도

잊지 못할 순간이 또 하나 있었다. 함께 훈련받고, 사랑도 함께 주고받고, 함께 웃고 울었던 제일교회 출신들을 만났다. 제흥이가 한두 가정과 식사를 하자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40명이나 온다는 것이었다. 누가 오냐고 했더니 surprise라며 안 알려줬다. 당일에 한명한명 들어올 때마다 너무너무 반가워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찬양단으로, 목자와 회장으로, 라이드로, 청년들 음식으로, 일대일 제자양육으로, 농구와 축구로, 남선교회 모임으로 함께 했던 이들 한 명 한 명과의 추억이 순간 주욱 펼쳐졌다. 제일 멀리서(전남 광주) 우리 내외를 보고자 두 딸과 함께 달려와준 준규/으뜸 부부에게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서로 모르는 사람도 있기에 명찰을 착용했고, 서로 소개도 하고 게임도 하고 예배도 드리며 그 짧은 시간을 채워갔다. “로체스터에서 견딜 수 있었던 힘이 제일교회였다.” “인생에 있어서 제일 행복했던 시간을 제일교회에서 가졌다.” 등등의 이야기들은, 하나님이 제일교회 모든 교우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전해주시는 것 같았다. 작지만 힘 있는 사역을 하는 제일교회 교우들 한분한분이 너무 귀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이렇게 한국 일정이 끝났다. 내가 떠난 후 아내가 2주 더 머물다 얼마 전 다시 로체스터로 돌아왔다.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꿈같은 시간이 저 뒤로 흘러간다. 하지만 이번 여정은 특별했던지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번에도 아버지가, 아내가 떠나는 날 “내년에 내가 너희들을 볼 수 있을까?”라고 하셨다는데, 건강하시리라 믿는다. 뒤늦게나마 부모님과 여행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했고, 가능하다면 내년에도 두 분 모시고 맛있고 멋있는 곳에 모시고 가고 싶다. 모든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며 각자의 위치에서 주를 위해 열심히 살다 다시 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