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교회 1월 풍경> – 2026년 표어 설교

<사랑만 하며 사는 해>

새해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세월이 더디 가는 것 같아도, 돌아보면 덧없이 흘러가는 것이 세월인 듯하다. 한 주 늦긴 했지만, 하나님이 올해 우리 교회에 주시는 표어를 오늘 나누고자 한다. 우리 교회에 변하지 않는 표어는 “한번뿐인 인생, 영원한 것에 투자하자!”(One Life Given, Invest It in Eternity) 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하는 삶을 작은 표어로 매년 나누고 있다.

기억나는가? 작년에는 “진정한 예배를 회복하는 해”(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였다. 2026년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시는 표어는 사랑만 하며 살아가는 해“(Live a Life of Love)이다. 질문 하나 해보자. 인생을 살면서, 아니 작년 한 해를 살면서 가장 후회되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목사로서, 아니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사랑하라고 붙여주신 사람들에게” 준 상처의 말들이다. 즉 삶 가운데 제일 어리석은 행동은 바로 “사랑하라고 허락해주신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하라고 남편과 아내를 허락하셨다. 하나님이 사랑하며 살라고 부모와 자식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이 사랑이 필요한 교회 식구들을내게 허락하셨다. 그런데 희안하다. 제일 사랑해주고 제일 아껴주고 용납해줘야할 대상에게는 함부로 말하고, 상처주는 것도 주저하지 않으면서오히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나 불특정 다수에게는 친절하게 대한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가?

하나님이 구약과 신약을 주셨다. 수많은 명령들을 주셨다. 복잡하고 어렵고 다양한 명령들로 이해하기 힘들지 몰라도, 실상 하나님은 이 모든 명령을 한 가지 이유때문에 주셨다. 그게 뭔가? 사랑만 하며 살라는 것이다.

갈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Galatians 5:14 The entire law is summed up in a single comman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온 율법이 “이웃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내 이웃을 그렇게 사랑하며 살라 하신다. “사랑만 하며 살라는 명령”이 성경 66권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단 하나의 명령이다. 매일 묵상(큐티)을 하는 목적도 하나이다. “적용”이다. 삶의 변화! 특히 “남을 위한 희생의 삶”이 성경을 매일 읽어야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런데… 실상 우리는 너무나 쉽게 상처를 준다. 아무 생각도 없이 함부로 말을 내뱉는다. 자기가 듣게 되면 분노할 말들을… 남들에게는 여과없이 한다. 하고 싶은 말들을 다해야 직성이 풀린다. / 그리곤 후회하겠지. 우린 예수를 믿는 자들이기에, 남에게 상처를 주게 되면, 마음이 절대로 편하지 않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대신 근심하기 때문에, “좀 더 참을걸” “좀 더 부드럽게 말해줄걸”하며 후회하게 된다.

미안하다는 말을 바로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때를 놓쳐, 상처 준 그대로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많다. 남편에게도 그렇고, 아내에게도 그렇고, 자식이나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교우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가족일 경우에는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러다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땐 땅을 치며 후회해도 시간을 돌이킬 수가 없다. 그런 일이 내게는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내 곁에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내게 남아 주지 않을 가능성이 늘 있다.

 

작년에 한국에서 지상파와 공중파의 모든 드라마를 대상으로 상을 주는 유일한 시상식인 SeoulCon APAN Star Awards에서 중편드라마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이준호가 주연한 “태풍상사”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주인공의 아빠가 살아있을 때 많이 엄했다. 중소기업 사장이었던 아빠는 아들을 강하게 기르려고 그랬던 것이지만, 지나치게 엄격히 대했다. 그랬던 아빠가 회사 부도로 극심한 상황에 쓰러지게 되었고 결국 숨을 거둔다. 그 뒤를 이어 아들이 태풍상사를 일으켜 세우는 드라마이다. 엄청나게 고생을 한다.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다. 그러던 중, 마음이 무너질 만한 일이 생겼고, 그날 아들은 아빠가 자주 가던 술집에 앉아있다.

(비디오 클립1) “같이 술 한잔 마셔줄걸!” “한 잔 따라라도 줘볼걸” “이 쉬운 걸 한번도 못했어” 뒤늦게 아빠의 고뇌와 사랑과 그리움이 올라왔지만, 아빠는 이미 곁에 없다.

하나만 더 볼까? “김부장”이라는 드라마이다. 남선교회에서 강추했던 드라마라 작년말에 보기 시작했다. 정말 잘나가는 회사 중역! 서울에 자신의 아파트도 있고, 대기업 부장이기도 하고, 이제 곧 이사로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다 힘대결에서 밀려, 회사에서 짤릴 위기에 처한다. 아내는 항상 당부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회사에 붙어 있으라고… 적어도 아들 대학 등록금도 내야하니, 절대 은퇴해선 안된다고… 그 꼴만큼은 절대 볼 수 없다고… 하지만 결국 강제 은퇴를 하게 된다. 이 장면은 퇴사 직후 집으로 돌아온 김부장 이야기이다.

(비디오 클립2) 아내의 구박을 받을 것을 예상했는데 … 그래서 아내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는데… 두 팔을 벌려 “고생했다 김부장”하며 안아준다. 아내는 남편의 등을 토닥여주며 “수고했다”라고 한다. 뜻하지 않았던 아내의 따뜻한 말에, 김부장은 그저 아내에게 안겨 운다. “수고했다”는 그 한 마디에!

사랑만 하며 사는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알겠는가? 사랑은 마음에만 있으며 소용이 없다. 말로, 행동으로 전하지 않으면 결국 후회로 남는다. 태풍상사의 아들은 너무 늦어서 사랑을 전하지 못했고, 김부장은 가장 힘든 순간에 들은 한마디 수고했다로 다시 숨을 쉰다. 사랑은 나중에 깨닫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전해야 하는 것이다. 말로, 행동으로 말이다.

 

사랑한다는 말, 괜찮다는 말, 다시 해보자는 말, 용서의 말늦지 않게 많이 해주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은 원한다. 마치,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으로 대해주시듯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만 하며 살아갈 때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만드셨기에, 그렇게 살지 못할때는 당연히 삶의 기쁨이나 평안은 절대 누릴 수가 없다. 돈을 많이 벌어보기도 하고, 좋은 집이나 좋은 차를 사보기도 하고, 업적을 높이 쌓아보기도 하지만… “사랑하며 사는 삶”이 삶 속에 녹아있지 않으면, 진정한 기쁨은 절대 누릴 수가 없다.

예수를 아직 믿지 않는 이들은 삶 속에 진정한 기쁨이 없는 이유를당연히 알 수 없다. 심지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 역시 “사랑만 하며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면, (죽은 후 천국에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절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기쁨이나 평안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올 해는 사랑만 하며 살아가는우리가 되길 소원한다. 마침 올해 첫 묵상 본문인 요한일서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요한일서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요한일서의 저자는 요한복음을 쓴 사도 요한이다.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요한복음의 기록시기는 AD 65년 이후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로부터 20-30년 지난 후에 기록된, (역시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1서에서는 이런 언급을 한다.

요일3:14-15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하는 사람입니다. 살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이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First John 3:14-15 We know that we have passed from death to life, because we love our brothers. Anyone who does not love remains in death. Anyone who hates his brother is a murderer, and you know that no murderer has eternal life in him.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했던 사도 요한이, 30년 후에 기록한 요한1서에서는 형제자매를 사랑해야지만 구원받는다는 투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사이 요한의 생각이 바뀐 것일까? 한 성경 안에 두 이야기가 있으니, 하나님이 실수하신 것일까?….

구원에 관한한 인간에게 “행위로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다. 왜? 구원 의롭게 된다는 것은 죄가 하나도 없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인간이 아무리 선을 행하며 살아도, 구원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죄를 안 짓고) 깨끗해 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즉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내시기 위해,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 대신 십자가에서 죽게 만드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되심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오직 믿음이다. 구원에 관한한, 인간의 선행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100%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 구원이다. /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에서 바로 이 진리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예수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30년이 지나서 요한복음이 기록되었다. 그로부터 30년 또 지나간다. 30년간 교회들 내에서 분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로 용서하지 않고, 기득권을 주장하며 싸우면서도, 이들은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라고 말한다. 서로 시기하여 미워하면서도 “우리는 예수를 주로 믿었으니 구원에는 문제없다”라고 말하면서 또 싸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요한은 형제 자매를 미워하면서 영생을 얻었다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요한1서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받는 방법이 변한 것인가? 구원의 교리를 정하신 후, 이런 사태가 벌어지자,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신 것인가? 그렇다면, 한 성경 안에 두 이야기가 있으면 안되겠죠! 요한복음이나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말은 삭제했어야죠! / 그런데 버젓이 이 두 이야기가 모두 성경에 기록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요한은 구원에 관해 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말을 했을 당시, 하나님이 요한을 통해 주시고자 했던 메시지는…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이웃 사랑은 같은 말이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는 고백은 (완벽해지지는 않을지라도) 내게 허락한 형제자매를 (예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literally) 믿음만 있으면, 삶은 개차반이어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갈5:14절을 다시 읽어보자.

갈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Galatians 5:14 The entire law is summed up in a single comman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믿음으로 구원받았는가? 예수로만 살기로 고백했는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단 한 가지, 수백개의 명령을 하고 계신 하나님의 단 하나의 의도, 즉 구원받은 자들의 삶은 (비록 완벽하진 않을지라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사는 것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오해라지 말라. 이 말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믿음 외에 우리의 선행도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100%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다. 이것은 진리이다. 하지만 내가 고백한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진정한 구원은 내 삶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달라지고, 사람들을 쳐다보는 눈빛이 달라지고, 예전에 하지 않았던 헌신도 하게 되고, 원수를 용서하는 일이 벌어지고… 물론 도중에 다시 미워도 하고, 시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겠지만, 이젠 적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미워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변화되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한1서의 청중들은 형제를 미워하고 자매를 시기하면서도 “나는 믿으니까 괜찮다”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삶의 변화는 1도 생각지 않고, 그저 “믿으면 구원이랬잖아”라고 말한다. / 사도 요한이 바로 이 모습을 보며 안타깝게 기록하고 있는 성경이 요한1서이다. 믿음과 삶은 다른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려 주고 있는 것이다.

즉 요한1서는 바로 “형제자매를 사랑하며 사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마땅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예수를 믿는다면, 적어도 삶의 변화는 생길 수밖에 없고동시에, 예수를 사랑하기에, 예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이웃 사랑의 자리에 나아가야만 함을 말하고 있다.

요일3:23-24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First John 3:23-34 And this is his command: to believe in the name of his Son, Jesus Christ, and to love one another as he commanded us. Those who obey his commands live in him, and he in them. And this is how we know that he lives in us: We know it by the Spirit he gave us.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 아들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이고, 그 다음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실상 우리는 사랑만 하며 살아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사랑만 해주며 살아가자. 예수께서 우리가 잘못할 때마다 싫은 소리 한 적 있는가? 우리가 밉다고 우릴 떠난 적이 있는가? 실수할 때마다 하고 싶은 말들 다 쏟아부우신 적이 있는가? 예수는 늘 사랑으로 한결같이 우리 곁을 지켜오셨다. 우리가 그런 사랑을 받고 살아왔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First John 3:16 This is how we know what love is: Jesus Christ laid down his life for us. And we ought to lay down our lives for our brothers.

사랑하며 사는 삶은 권유나 옵션이 아니라 의무이다. 주변을 둘러봐 보자! 남편과 아내도 서로 바라봐보고, 자식과 부모도 한번 얼굴을 바라보라. 곁에 있는 교우들도 주욱 둘러봐 보라! 이 모든 이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해주며 살아달라”고 붙여주신 이들이다. 따뜻한 내 말 한마디, 마음이 담긴 격려 한 마디, 진심이 담긴 토닥임 하나… 이거 하라고 하나님이 내 가족, 교우들, 이웃들을 내게 허락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셨듯, 남편을 사랑하라. 예수께서 나를 돌아보셨듯, 아내를 돌아보며 살라. 예수께서 내게 하셨듯, 자식들에게 부모에게 교우들에게 그렇게 하며 살아가자. 사랑만 하며 살아가자고 결심해도 무너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니 그런 결심 없이 살아가면, 우리는 더 미워하고, 더 섭섭해 하고, 더 시기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올 해 단단히 결심하며 시작해보자. “주님, 사랑만 하며 살아갈게요!” “예수님, 사랑만 하며 살아가고 싶으니, 그렇게 살아갈 힘을 허락해주세요!”

2026년! 심판이나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그저 올해 사랑만 하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