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건 대통령이 그렇게 좋아했다는 잭 런던의 시 ” 먼지가 되느니 불타는 재가 되리”라는 시(詩)같이 인생은 죽어 먼지가 되지만 그들은 불타는 재가 되었기에 찬사를 보내야 될런지?. 부시대통령이 말한 대로 순간의 비극(a moment tragedy)이 아니라 인류의 꿈(Human dream)을 위한 영원한 숭고함(eternal sublimity)이 되었다고 위로해야 할지?. 정말 컬럼비아호의 7명 영웅들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고 애석한 일입니다. 사건을 보며 느껴지는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입니다. 예상하면서도 방심하다가 당하는 어려움을 일컫는 말입니다. 지난 인터넷 대란도 위험을 알면서도 설마 하다가 큰일 날 번했는데 이번 컬럼비아호의 사건도 설마가 가져다 준 예고된 인재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컬럼비아호는 1981년 4월 처녀비행을 한 세계 최초 우주 왕복선으로 28차례나 비행을 했으며 2001년 퇴역이 예정되여 있었습니다. 그간 성능 개선과 수리작업을 했지만 연결고리 누출, 문 장식 균열, 녹 쓴 외장들, 심지어 딱따구리 구멍등 노후와 흠집과 결함이 많아 퇴역을 논의하였으나 나사(NASA)의 예산 삭감으로 인한 숙련 인력 이탈 등으로 안전에 대한 투자 소홀이 가져온 결과라고 합니다. 사고 원인은 이륙 당시 열료탱크에서 떨어진 절연장치 조각이 왼쪽 날개를 때려 2만개의 기체 보호 방열 타일 중에 일부가 떨어지며 생긴 사고라고 합니다. 그러나 22년 된 컬럼비아호는 처음부터 비행 자체가 무리였으며 이륙당시 파편에 의한 충돌을 느꼈지만 무시했던 것도 문제며 사고 직전 왼쪽 날개 유압조절 장치 내 온도 감지기가 멈추어 섰지만 우주선 착륙 시 흔히 있는 현상으로 넘겨버렸다고 합니다. 3번의 설마가 쌓여 비극을 초래하였던 것입니다. 인터넷 설마 보다 컬림비아호 설마는 증폭이 더 큰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성경에도 설마가 불러온 불행들이 기록돼 있습니다. 노아 때 사람들은 아무리 비가 많이 온다고 해도 설마 땅에야 넘치며 산까지 덮이랴고 생각하며 노아가 물가가 아닌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짓는 것을 비웃었습다. 소돔성이 망할 때도 설마 하늘에서 불 비가 오기야 하겠느냐고 하다가 망했습니다. 한국에만 설마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도 설마가 있으며 그 피해의 파장은 훨씬 컸습니다. 이제 세계가 설마 할 날이 올 것이며 그 날은 세계가 모두 비극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롯의 때와 같이 안전하다 평안하다 할 그 때에 – 즉 설마! 설마! 할 그때에 잉태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같이 홀연히 멸망의 날이 오리라고 하였으니 종말의 비극은 설마 하며 안 믿는 자들에게 덫같이 임하게 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깨여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교훈은 온도 감지기가 갑자기 멈추고 온도감지기 신호가 멈추자 사고가 왔습니다. 감지기가 고장난 우주선 같이 우리 신앙의 진단 감지기가 고장이 난 심령들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느끼게 됩니다. 양심이 화인을 맞으면 깨닫지를 못하고 술 취한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듯 말세에는 노아의 때에 사람들이 취한 상태에서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며 홍수가 나서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던 것같이 취하고 깨닫지 못하는 때라고 했습니다. 문둥병이 감각이 없어 느끼지 못하는 병이듯 심령이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은 심령이 병든 까닭이며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입니까? 셋째는 잠시 후를 모르는 인생의 무상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임무를 마치고 지상에 착륙하기 불과 16분전이며 지상 63Km의 가까운 거리까지 와서 사고가 났습니다. 승무원들도 지상관제소도 모두들 80여가지 실험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는 과학의 승리에 미리 흥분되어 있는 시각에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 것입니다. 16분 후를 모르는 인생, – 어느 점성가는 그 16이란 숫자가 문제였다고 말했습니다. 16일 이륙해서 16일간 연구를 마치고 9시 16분에 착륙하기 16분전에 사고가 났습니다. 원래는 7이 문제 숫자인데 16은 1+6=7이어서 승무원이 7이며 16의 계수가 7이기 때문에(16→1+6=7) 재난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점성가의 미신을 믿으려는 것이 아니라 16분 후도 모르는 인생이란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16분이 아니라 16초 앞,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의 발걸음을 오직 주님께 맡길 뿐입니다.
-박청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