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산책>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신외리에서 8년 목회, 캐나다 땅에서 1년 공부 그리고 이곳 미국 로체스터! 결혼후 지난 8년간의 세월을 뒤돌아보니, 정말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만 온 것만 같습니다. 신외교회는 작은 교회였지만 이것저것 돌볼 일들이 많았고, 1년 캐나다에서의 공부도 몇 과목 듣지 않았지만 책만 파고들어야만 했었습니다. 이곳에 와서도 여러 가지 알아가야할 그리고 계획하고 준비해야할 문제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한 주간 동안은, 자동차 보험 문제로 여간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무사고 경력을 인정해줄 수 없다느니, 아직 미국에서의 신용이 전혀 없는 관계로 보험료를 많이 내야만 한다느니, 게다가 영어까지 제대로 되지 않아, 너무 힘든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저녁 해가 저물 무렵, 아이들이 산책을 나가자고 졸라댔습니다. 하루종일 보험회사를 찾아다니느라고 몸도 맘도 지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아이들의 청이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내는 집안 정리할 것이 있다고 하여, 아이들과만 동네 산책에 나섰습니다. 아빠 손을 잡고 나선 발걸음이 신이 났던지, 아이들도 조잘조잘 저에게 얘기를 걸며 함박웃음을 지어댔습니다. 제 팔에 매달리기도 하고, 앞서 뛰어나가기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하루의 체증이 모두 내려가는 듯 했습니다. 저도 느긋한 발걸음으로 아이들 뒤를 좇아가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의 산책이었습니다. 분주하고 정신없었던 하루일과를 잊고, 아니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9년간의 제 삶을 잠시 뒤로 한 채, 참된 안식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만 이루어지는 목회가 아니기에 더 많이 하나님을 붙잡아야 하는데도, 인간인지라 일에 진척이 없고 어긋나가기 시작하면 마음부터 분주해 지는 저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저의 모습을 아셨는지, 이날 저에게 귀한 시간을 허락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능히 해낼 수 있는 일은 극히 적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발버둥치며 살아갑니다. 어떻게 보면 부질없는 것 같은 일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작은 것에서 찾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의 짧은 산책 시간을 통해서 느꼈던 것처럼, 우리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 주는 행복은 지금 바로 내 곁에 있답니다. 작고 보잘것없이 보이는 일들, 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누릴 수 없는 일들,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행복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래의 일들로 머리 싸매고 정신없이 살아가시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가끔씩 모든 걱정을 그 자리에 내려놓고, 하나님이 이미 여러분에게 허락해 주신 복들을 헤아려 보세요. 아이들과 산책을 하는 일,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이 곁에 있다는 사실, 멀리 있지만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랑의 손길이 있으며, 두발 뻗고 누울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고, 무엇보다 나를 소중히 여겨 주시는 우리 예수님께서 나를 늘 지켜주신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이요, 잊기 쉬운 복들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잊어버린 소중한 복들을 하나 둘씩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분주하고 힘든 하루도 보람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200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