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보고 싶은 얼굴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모습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염려가 되고 궁금해집니다. 미리 사정을 알게 되면 걱정은 덜 되겠지만, 아쉽고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많은 성도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강태윤 형제와 길호진 성도, 친구 결혼식 때문에 뉴저지에서 주일을 지키게 된 김동진 집사와 안진영 성도, 따님네 다녀온다고 뉴저지로 가신 최보물 권사, 늦깎이 결혼식을 아픈 몸으로 올려 몸살이 난 박인옥 집사, 그리고 연락 없이 못나오신 성도들도 두어명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못나온 성도들의 빈자리를 볼 때면, 그분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궁금하고 걱정이 된답니다. 주일 예배 뿐만이 아닙니다. 저희 교회는 새벽기도 멤버들이 정해져 있는데, 그 중 한 분만 빠져도 ‘몸이 아프신가’, ‘무슨 일이 있으신가’ 하는 걱정이 기도회 내내 떠나질 않습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늘 자리를 지키시던 이운섭 권사님이 연락도 없이 예배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 모두들 한 목소리로 걱정을 했습니다. 저도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하며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심방차 ‘Lee’s'(직장)를 찾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권사님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나이도 드시고, 일도 고되다 보니, 무릎에 이상이 생기신 것이랍니다.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저에게 다가 오시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한 곳에 앉아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아픈 무릎을 꼭 잡고 말입니다. 얼굴을 보고 함께 기도를 드리고 나니, 그제야 안심이 되고 기분도 좋아졌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우리 교인들이지만, 감사하게도 매주 거의 모든 분들이 예배에 참석을 하십니다. 적은 교인들이기에 한 분이라도 자리를 비우게 되면, 눈에 금방 띄게 된답니다. 그래서 한 주만 못 봐도 너무 보고 싶고, 얼른 주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을 그렇게 그리워하며 주시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여러분이 있어야 할 자리(예배의 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안타까운 맘으로 우리를 찾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정말 감사하지 않으십니까?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며 만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나’를 보고 싶어 못 견뎌 하는 분이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서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내 얼굴을 보기 싫어하는 사람은 혹 있을지 몰라도, 내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받으시며, 나를 보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아갑시다. 그 자리는 예배의 자리요, 기도의 자리요, 용서의 자리요, 감사의 자리요, 헌신의 자리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 만남의 자리를 늘 사모하며 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2003년 8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