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이곳 로체스터에 오셨습니다. LA에 말씀 전하러 오셨다가 이곳에 들르신 것입니다. LA에서 이곳까지 바로 오는 비행기도 없고, 갈아타는 곳에서도 두어 시간을 기다리셔야 하고, 건강도 그리 좋은 것이 아니시기에, 사실은 이곳에 오실 계획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떠나기 며칠 전에 전화가 왔습니다. 힘들지만 이곳에 오시기로 한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 로체스터 공항에 드디어 어머니 모습이 보였습니다. 너무 반가웠습니다. 찬수와 지혜가 먼저 달려가 안겼습니다. 긴 여행에 지친 얼굴을 하셨지만, 아이들을 안아 주시는 어머니 모습에서 가족의 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짐을 차에 옮기고 공항을 출발하기 전에 어머니가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마디를 채 마치시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며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식구를 이렇게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면서 말입니다. 자식은 공부와 목회를 하면서 정신없이 시간을 지내왔는데, 어머니는 아들 내외와 손주들을 멀리 보내고 나신 뒤, 하루하루를 그리움으로 보내오신 듯 하여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안타까웠던 것은, 정작 어머니와 함께 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담임 목회를 하시기에 두 주 이상 본교회를 비울 수 없으셔서, 사흘 뒤 금요일 아침에는 이곳을 떠나셔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캐나다 해밀턴으로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들으러 가야하기에, 실질적으로 어머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수요일 하루였습니다.
특히 수요일 저녁에는 특별 집회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팠던 이야기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여느 때보다 많은 성도들이 나와서 함께 은혜를 나눌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늘 듣는 간증이었지만 저 또한 많은 도전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 이제 어머니가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경비를 아끼신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항공편을 예약해 놓으셨기에, 시카고에서 한번, 일본 동경에서 한번 비행기를 갈아 타셔야 했습니다. 각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총 22시간 정도가 걸리는 모양이었습니다.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티켓팅을 하고 짐을 부치고 나니, 한시간 반 정도가 남았습니다. 그래서 커피와 빵을 시켜 잠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제 아내가 기도를 했는데, 또다시 기도는 눈물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힘들게 목회 하시는 어머니를 옆에서 위로해 드릴 수 없어서였는지, 마음 한 구석이 메어져 왔습니다.
이제 시간이 되어 보딩 장소로 갔습니다. 들어가는 어머니를 꼭 안아 드렸습니다. 안으면서 참 불효 자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에 온지 나흘째인데, 이제 어머니를 처음 안아 드린 것입니다. 아무리 무뚝뚝한 아들이라도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너무 죄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이곳에 오셔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건강은 괜찮은지, 애들은 무얼 갖고 싶은지 에만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려고 애쓰셨는데, 저는 마음으로만 사랑을 했지 어머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해드렸음이 깨달아져 뒤늦게 후회가 되었습니다. 사라져 가는 어머니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다가 그만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습니다.
늘 받기만 하는 것이 자식인가 봅니다. 무뚝뚝한 자식에게라 할지라도 늘 주시려고만 하는 것이 부모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무엇으로도 부모의 사랑은 갚을 길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잘해드리려 애써도 늘 부족한 모양입니다. 변변치 않은 아들의 설교 테이프 두어 개를 손가방에 넣으시고는 뿌듯해 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네 설교 들으면서 갈게!” 웃으시면서 남긴 말 한마디에 더 코끝이 찡해집니다. 그깟 설교 테이프 하나에도 기뻐하시는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집니다. 어머니가 들어가기 직전에 살며시 용돈과 편지를 손에 쥐어 드렸습니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말하시면서도, 흐뭇해하시는 어머니 얼굴에 제 마음도 조금 위로가 되었습니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 모르겠지만, 건강하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늘 부족한 자식이지만, 늘 열심히 영혼 사랑하고, 열심히 목회할 것입니다. 다음에 오실 때는 제가 제일 먼저 안아드릴께요.” 어머니가 떠난 뒤에 혼자서 뒤늦게 되뇌어봅니다. 이 마음이 어머니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2003년 9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