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번 학기도 거의 끝나갑니다. 그래서 지난 한 주는 기말 페이퍼를 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제출하기 전에 교정을 보아줄 사람(proofreader)을 구해야 했습니다. 캐나다에 있을 때는 학교가 가까웠기에 proofreader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다, 미국본교회의 Kingsley 선교사님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교회 사무실로 들어오는 할머니 한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Kingsley 선교사님이었습니다. 올해 76세인 선교사님은 새로 목회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인사를 하러 오신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것은 한국말을 너무 잘 하신다는 것이었지요. 알고 보니 이 분은 1992년까지 한국에서 선교사로 사역을 하신 분이었습니다.
1954년 10월, 전후 몸살을 앓고 있던 한국에 복음을 전하고자 미국을 떠나셨습니다. 한해 전부터 Yale 대학에서 한국어 수업을 들으며 기도로 준비해 오시다가, 드디어 의료선교사역자(간호사)로 한국에 첫 발을 디디셨습니다. 1955년부터 3년간 강릉에서 Public health Center에서 봉사하시다, 서울로 사역지를 옮긴 후 연세간호학원을 거쳐 인천기독 간호학원(정확한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셨음) 초창기 멤버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 후 이 학원이 1973년 안산전문대학으로 인가를 받게 되었고, 그곳에서 3년간 교육감으로 강의를 하셨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말로 말입니다. 1976년에 첫 졸업생들을 배출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답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연세 세브란스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시어 Home care와 Cancer Center에서 1992년까지 헌신하시다가 65세에 은퇴를 하셨다고 합니다.
한국 선교사로 온 삶을 헌신하신 지난 얘기들을 듣자니, 진한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결혼도 마다하고(지금도 미혼이랍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삶을 바쳐 주님을 위해, 한국의 영혼들을 위해 소리 없이 피와 땀을 흘리신 선교사님 얼굴에는 지난날의 기억들이 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지금도 선교사님은 미국본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을 맡아서 열심히 헌신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같은 건물에서 예배드리는 한국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애쓰며 배려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십니다.
어제 선교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페이퍼 교정을 다했으니 교회에서 만나자고 말입니다. 꼼꼼하게 문법과 스펠링을 체크해 주셨고, 문맥에 맞지 않는 말들은 “이건 말이 안돼요”라고 한국말로 설명해 주면서, 손수 고쳐 주셨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이 교정을 모두 마친 후 선교사님과 나눈 대화입니다. 헤어지면서 제가 감사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감히 한국인을 대표해서 선교사님의 사랑과 헌신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입니다. 그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릴 수 있음을 다시금 감사 드렸습니다.
‘헌신’이라는 말! ‘몸을 바친다’는 의미를 선교사님의 삶을 통해 발견해 봅니다. 결혼도 마다해 가며, 단란한 가정을 꾸미는 것도 포기해 가며, 이역만리의 땅에서 자신의 청춘을 바쳐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만을 전하며 살아온 선교사님. 선교사님의 삶을 주장했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기에, 이러한 헌신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뜨겁게 주님을 사랑했기에, 사랑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셨기에, 그 사랑을 어떻게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셨기에, 그런 헌신의 삶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받은 사랑을 이제 우리도 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너무나 부족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부족한 그대로 시작합시다. 부족하기에 주님께서 채우실 것이고, 미약하기에 주님께서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채우심과 힘주심을 믿고, 이제 헌신의 첫 발을 내디딥시다. 내 모습 그대로,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헌신의 씨앗을 뿌립시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