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분을 떠나보내며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요즘 며칠 째 눈이 계속해서 내립니다. 제가 목회하던 신외리에도 한 번 눈이 오면 많이 내리긴 했지만, 이곳처럼 눈이 꾸준히, 끈질기게 쏟아지는 것을 본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아이들 학교가 임시 휴교를 할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김순희 집사님이 이곳을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목요일 여선교회 회원들이 모여 저녁 시간을 함께 한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캐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늦은 밤이 되기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떠나는 날인 금요일 아침에 찾아뵙기로 했습니다. 고속도로 490을 타고 가다 보니, 사고가 이곳저곳에서 난무했습니다. 대형 사고가 나서 차량을 통제하는 구역도 많았습니다.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사를 하실 수 있을까?’

도착을 하니 한참 짐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또한 떠나기 전에 하우스 인스펙션을 받아야 했기에, 재훈이는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집사님은 모자를 쓰신 채 벤지(퍼피)에게 밥을 먹이고 있더군요. 집사님이 웃는 얼굴로 반겨 주었습니다. 얼마 전 사랑하는 남편(김창규권사)을 잃으신 후부터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신다고 하더니, 어제도 두어 시간밖에 못 주무셨다고 합니다.

권사님이 병원에서 암투병을 하실 때, 하루 종일 간호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답니다. 양쪽 어깨에는 권사님의 하루 세끼 식사 주머니와 빨래 가방을 둘러매고, 품에는 벤지와 또 다른 가방을 들고 매일 밤 집으로 돌아오노라면, 오르막 계단에서 힘에 겨워 종종 뒤로 쓰러지기도 하셨습니다. 지친 몸으로 빈 집에 돌아오면, 다음 날 준비를 또 하셔야 했답니다. 자녀들은 모두 멀리 떠나 있었기에, 벤지만이 유일하게 말동무가 되어 주었답니다.

그 힘들었던 모든 시간들을 뒤로 한 채, 이제 이곳 로체스터를 떠납니다. 좋은 추억들도 많았지만, 가슴 아픈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진심을 왜곡했던 사람들 때문에 침상을 적시며 지낸 시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기로 했고, 두 분 또한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도 했답니다…… 이젠 모두 과거가 되어버린 시간들을 추억 속에 담아두고, 이곳을 떠납니다.

우리 교회에서 준비한 조그만 선물을 전해 드렸습니다. 하나는 교인들의 인사말을 담은 비디오 테잎이었습니다. 지난 주 친교 시간 이후에 모두 성가대실에 모여, 한분씩 집사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답니다. 아쉬움을 담기도 했고, 웃음과 격려를 담기도 했으며, 언제나 함께 하자는 약속을 담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는 제가 이곳에 온 후에 우리 성가대들이 찬양한 곡들을 CD에 담아 드렸습니다. 거기에는 권사님이 살아계셨을 때 함께 들었던 성가들도 꽤 있었기에, 집사님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카드를 한 장 드렸습니다. ‘몸은 떠나셔도, 우리 교인임을 잊지 마세요’라는 글을 담아서 말입니다.

하우스 인스펙션을 마치자,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눈물이 글썽한 재훈이를 안으며,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벤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신 집사님을 눈밭 위에서 꼬옥 안아드렸습니다. 한참 동안 안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만이 그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예전처럼 열심을 찾게 만들 것이고, 더 헌신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권사님의 못 다 이룬 사역을 이루며 사실 것입니다. 30년! 적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비록 이곳을 떠나시지만, 집사님과 돌아가신 권사님을 통해 이곳에 뿌린 사랑의 씨앗들은 반드시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임을 압니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보다는 떠나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더 아프다더니,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습니다. 많이 아쉽습니다. 두 분이 함께 가시기로 한 길을 혼자 보내드려 더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것임을 또한 믿기에 힘을 얻습니다. “제 자리를 채울 성도가 꼭 와야 할 텐데…”하며 걱정했던 집사님 말대로 우리교회에도 새로운 식구들이 오게 될 것임을 믿고, 집사님에게도 우리 이상으로 사랑을 주고받을 귀한 지체들이 예비되었음을 믿습니다. 가셔서도 부디 건강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