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위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저 어린아이와 같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은 무엇이 있을까요? 어린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큰 일이 아닙니다. 하루 하루를 살면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과연 이 일이 예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일까’하는 단순한 고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됩니다.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며 살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복잡한 문제의 해결은 단순해 짐에 있습니다.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생각이 틀려 있기에, 세상이 힘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질이 우선이 되야만하고, 명예만은 지켜야 하며, 좋은 인간 관계가 힘이 된다는 사고들….. 틀린 생각들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먹고 사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명예가 주어진다는 사실에 삶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내게 없는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좋은 ‘줄’을 잡고 있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그러한 것들이 영원히 여러분 것이 될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물질이, 명예가, 연줄이 여러분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나요? 정말 그런가요?
이 땅에서의 삶은 나그네 삶일 뿐입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삶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영원한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짓기를, 나그네의 삶을 통해 영원한 삶을 결정지을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영원한 영광 가운데 살 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고통 가운데 살 것인지는,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에 달려 있답니다.
당장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물질과 명예와 권력도, 사실 지나가면 그만인 것입니다. 남들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 나도 일단 얻고 보자는 식으로 덤벼드는 우리의 삶을 이제 내려놉시다. 그리고 영원한 삶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에게로 눈을 돌립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서 아버지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며 삽시다.
오늘 이야기가 많이 무거워졌네요. 사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바쁜 삶 속에서 우리가 잊으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내 마음에 둔 것이 ‘말씀’이고(시119:11), 우리를 거룩하게 지켜주는 것도 ‘말씀’(요17:17)이며, 영원토록 존재하는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벧전1:25).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작년에 처음 성경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창립기념주일을 앞두고 ‘잠언서’를 여러 성도들이 쓰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는데, 열다섯명 이상이 성경을 썼습니다. 정성껏 성경을 써 온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에게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로마서’를 썼습니다. 이번엔 오히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성도들이 꽤 참여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성경을 쓰게 되면 세 번 읽는 셈이 됩니다. 쓰기 위해 읽으면서 한번, 읽은 것을 되뇌이면서 한번, 되뇌인 것을 적으면서 한번! 일석 삼조! (Killing three birds with one stone.)
말씀은 곧 육신의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입니다(요1:1,14). 그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내게 복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이야 말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생명’입니다. 물질도, 영화도, 명예도, 권세도 다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말씀만큼은 여러분과 저를 세상 끝날까지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함이 여러분의 양식이 되길 원합니다. 그가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영원한 안식과 평안으로 이끌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기준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이유랍니다. (2004년 2월 1일)
“The word of the Lord endures forever. That word is the good news that was announced to you.” (1Pet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