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추수감사예배를 드린 직후로 기억됩니다. 당시 저는 경기도 신외리에서 시골목회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추수감사주일 예배 때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갖가지 과일과 배추, 호박 그리고 쌀 한가마를 차에 싣고 안양에 있는 <해관보육원>을 방문했습니다. 해관보육원은 1918년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보육시설이자, 기독교 최초의 고아원이기도 합니다. 본래는 독립투사들의 자녀를 보호 교육시키는 시설로 출발하였으나, 지금은 기독 보육원으로서 고아들과 버려진 아이들, (부모의 형편 때문에) 맡겨진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곳입니다. 유아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100여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곳에 처음 가기 전 정어진 원장님에게 전화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물었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부금이나 어떤 물건들을 가져다주시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이곳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시는 것이 더 필요하답니다……….. 이번에 오실 때 초등학생 아이들과 목욕을 함께 가 주시면 안될까요? 목욕탕 주인들이 아이들끼리 목욕탕 오는 것을 싫어해서….. 목욕탕에 한번도 못 가본 아이들이 태반이랍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음식과 옷가지 그리고 물질로 후원하는 것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저희 내외와 청년들은 ‘몸으로 뛰는 것’(?)에는 자신 있었기에, 그렇게 하겠노라 했습니다. 한번에 많은 아이들이 가지 못하기 때문에, 순번을 정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제 세상 만난 듯이 탕에 뛰어들었고, 냉탕에서 수영하며, 깔깔대며 좋아했습니다.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저마다 먼저 달려와 저와 청년들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앞으로 커서 소방관 또는 경찰관이 되겠다고 자랑스레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중 지훈(당시 1학년)이란 아이가 있었습니다. 앞머리가 잘라져 있어, 슬쩍 말을 시켜보니, 기가 막힌 이야기가 흘러 나왔습니다. “초등학교 반 친구들이요,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내 머리를 잘랐어요. 그리고 매일 발로 밟고 그래요. 야구놀이 한다고 방망이로 날 때리고, 선생님이 들어오면 얼른 책 읽는척해요….. 근데 괜찮아요. 내가 참아야죠. 참을 거예요.”
이 아이들에게는 자기들의 투정을 받아줄 사람이 필요했고, 자랑할 누군가가 옆에 있기를 원했으며, 자기들이 다른 친구들보다 더 사랑 받고 있음 또한 몸소 느끼고 싶어했습니다. 버림받았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 이 아이들로 하여금 ‘사랑’을 더 한층 그리워하게 만든 것이지요.
목욕이 끝난 후,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맥도날드’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은 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합니다. 실은 근처에 있는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사주려 했었습니다. ‘맥도날드’에 가야만 한다고 찡얼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밉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이렇게 자기들의 엄마 아빠에게 찡얼거리기도 하며 사랑도 받고 자라야 할 아이들이 아닌가!’ 결국 모두 함께 ‘맥도날드’로 가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준비해간 잠옷을 나누어주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런 말이 들려왔습니다. 이번에 목욕탕과 맥도날드 다녀온 아이들의 발걸음이 달라졌다고 말입니다. 늘 우울해하며, 학교 가기도 싫어했던 아이 한명도, 제일 먼저 학교로 달려가고, 가슴을 죽 펴고 힘차게 걸어다니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형들에게 자랑한답니다. “내가 말이야, 지난번에 목욕도 갔었고, 맥도날드에도 갔었지!”시린 마음에 잔잔한 미소가 흘러나왔습니다.
사랑은 지속적인 것이랍니다. 매주 가지는 못했지만 정기적으로 이들을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목욕도 하고, 맥도날드에서 맛있는 것도 먹으며, 많은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열심히 하다가 저희 가족은 멀리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신외리 청년들이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는 손길들도 붙여 주셔서 더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이영범/김태연 집사님, 김구환/이경하 집사님, 사랑하는 조카 영은이 엄마와 아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기에, 함께 기도해 주는 분들의 기도와 물질 후원은 이 청년들에게 더 큰 힘이 된답니다.
요즘은 더 어린 아이들(5-6세)이 나온다고 합니다. 초등학생들과는 달리, 목욕을 시켜주는 청년들을 엄마나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들도 있답니다. 그럴때면, 정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제 이 일에 우리 교회도 조그만 힘을 싣어 주기로 했습니다. 지난 성경공부팀이 모은 100불 정도의 예물을 ‘고아들 목욕비’로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상하반기로 나누워 도울 생각입니다.
우리는 비록 그곳에 직접 가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지만, 멀리서나마 같은 맘으로 기도하며 후원할 것입니다. 넉넉지 못한 액수라 할지라도, 해관 보육원의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청년들을 위해 계속 기도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 어렵게 생각하지 맙시다. 그저 사랑이 필요한 자들을 찾아가서, 만나주고, 이야기 나누며, 함께 사랑을 만들어 가면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거기서부터 출발합니다.
“부영아, 현미야, 한설아, 정혜야, 낙은아, 그리고 주환, 미선 전도사, 모두들 사랑한다. 우리 몫까지 열심히 사랑해 다오.” (2004년 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