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척자의 맘으로, 섬김의 모습으로 >

여느 교회나 그렇겠지만, 우리 교회 또한 여선교회가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기에, 우리 교회가 이만큼 자라날 수 있었던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 부임하면서 내내 맘속에 한 가지 소원이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남선교회가 조금만 더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는데……. 어른들이 나서 주시면, 나이 어린 사람들은 그 모습을 닮게 되어 있는데……’

몇 주 전 예배 후에 점심 식사를 하고 있던 남자 성도들에게 이운섭 권사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남선교회에서 Nursery room 정리를 맡아 주면 어떻겠냐고 말입니다. 미국 교회를 빌려 쓰고 있는 입장이라, 가끔 지적을 받곤 합니다. 특히 Nursery room 정리에 대해서 말입니다. 여선교회에서는 매주 여러 가지로 바쁜지라, Nursery room 정리까지 신경 쓰기에는 일손이 부족합니다.

이운섭 권사님의 제의에 저는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과연 누가 이 일을 하신다고 나설까?’그러면서도 남선교회가 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내심 흥분(?)이 되었습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다가, 제일 연장자이신 이민기 권사님이 어떻게 하면 되냐고 자세히 물으시더니, 우리 남선교회에서 하겠다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당장 2월 한 달은 이민기 권사님이 맡기로 하셨고, 3월부터는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두주가 지났습니다. 미국교회 담임목사에게서 쪽지를 받았습니다. 자기가 부임한 이래로 이렇게 기가 막히게 정리를 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입니다. Nursery room 뿐만이 아니라, 지하의 주일 학교 교실까지 매주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음을 보니, 정말 흐뭇했습니다. 매주 친교 후에 일찍 가시던 이민기 권사님이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정리를 하시며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을 종종 보셨을 것입니다. 저도 흐뭇하지만, 이임자집사님(부인)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듯 ‘섬기는 모습’은 삶을 넉넉하게 해줍니다. 섬기는 자나, 섬김을 받는 자 모두의 삶을 말입니다.

물론 기존에 헌신하는 분들의 모습은 더 귀합니다. 매주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손길, 끝까지 남아 구석구석 정리하는 손길, 식탁을 미리 세팅해 놓는 손길, 설거지로 섬기는 손길,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는 손길, 차량으로 봉사하는 손길, 매주 일찍 나와 찬양으로 섬기는 손길….. 정말 헌신하는 손길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가 건강해지지 위해서는 ‘섬김’의 모습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그냥 이 자리에 머물러 우리끼리 천년만년 좋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섬김을 받으려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몸된 교회로 이끄신 것 또한 서로 섬기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직분이 문제가 되나요? 체면이 그리 중요한가요? 뭔가 보상을 바라고 헌신하나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섬김, 예수님의 헌신, 예수님의 죽으심은 뭐가 되나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저 섬기십시오. 하나님은 섬길 수 있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나’를 비우고, ‘남’을 섬길 수 있는 자가 됩시다. 남이 못하는, 아니 남이 안하는 부분들이 발견 됩니까? 여러분이 하십시오.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세상 속에 나가 그저 섬기는 모습으로 살아가세요. 섬기는 모습은 바로 예수님이 찾는 모습입니다.

이번 주일은 “남선교회 헌신예배”로 드려집니다. 이제 우리 남선교회가 섬기는 데 앞장을 서려 합니다. 여지껏 섬김을 받는 데만 더 익숙하지만, 이제 섬기는 데 익숙해지는 남선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은 그 기념으로 남선교회에서 무엇인가를 준비한 모양입니다. 뭔지 기대가 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모습이 기대가 됩니다.

그래요.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개척자의 맘으로 다시 시작합시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고, 서로 배려하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섬김’이 있기에 우리의 삶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말입니다. (2004년 2월 29일)

“인자(예수)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