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산을 참 좋아합니다. 대학교 때 농구 동아리에 몸을 담은 후부터, 친구들과 자주 산에 올랐습니다. 폭우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설악산 대청봉을 정복했고, 마음이 답답할 때에는 지리산을 하루에 올라갔다 내려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산을 좋아하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가장 많이 올라가본 산은 아마도 홍천강 유역에 있는 팔봉산일 겁니다. 삼년 전, 제가 담임하던 시골교회의 학생부(16명)와 수련회를 떠났습니다. 많은 일정이 있었지만, 저에게는 팔봉산(302m) 등정이 가장 인상에 남았습니다. 세 번째로 오르게 된 팔봉산은 그리 높지 않으면서도 홍천강 유역 일대가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산을 처음 타는 사람들에게도 안성맞춤의 산으로 유명합니다.
그 당시 수련회를 떠나기 전, 어린 찬수(당시7살)와 약속을 한 것이 기억납니다. 찬수가 팔봉산 등정에 함께 나서기로 한 것입니다. 힘들 것 같기는 하지만, 아빠가 원하니 한번 해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자기가 힘들다고 하면 꼭 쉬었다 가자고 하더군요.
사실 실제로 찬수가 산에 올라갈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프다고 하는 아이였으니 말입니다. 초등학교 처음 들어가서 간 소풍 (동물원) 때 너무 많이 걸었다며 울면서 집으로 왔던 찬수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런 찬수가 팔봉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3봉 정상에 찬수와 우뚝 서서 사진을 찍을 때의 기분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사실 찬수만 안 갔다면 거의 쉬지 않고 올라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찬수가 올라가면서 힘들다고 말할 때마다, 온 일행은 그 덕분(?)에 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요.
간간이 쉴 때마다 찬수에게 아빠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 주었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산에 오르면 오히려 힘이 난다고 말입니다. 정상에 오르면, 이 세상을 만드신 우리 하나님이 다시 한번 자랑스러워지고, 아빠에게도 큰 힘이 생긴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올라 더 기쁘다고 말입니다.
얼마 후 정상에 오른 찬수는 ‘이 정도쯤이야’하는 표정을 짓더군요! 짜아식! 정상 3봉에 이어, 해산 바위와 로프타기 등 모두를 거뜬히 소화해낸 찬수에게 가장 큰 적은 하산길이었습니다. 아래만을 쳐다보고 가자니 고개가 많이 아팠다고 합니다. 하산길에서 오히려 힘들다는 이야기를 몇 번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등하산 길에 찬수를 포함한 우리 일행 모두는 낙오자 없이 완주를 했습니다. 내려와 홍천강에 몸을 담근 찬수가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다음엔 설악산 아니 지렁이산(지리산)에 올라가요!”
팔봉산에서 찍은 사진을 얼마전 찬수와 함께 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던지, 찬수가 산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더군요. 언젠가 찬수가 좀더 크면 설악산 대청봉과 지리산 천왕봉을 꼭 함께 오르고 싶습니다. 그때는 아내와 지혜와도 함께 올라, 위대하신 하나님을 맘껏 느껴 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웅장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감격을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2004년3월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