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캐나다에 있는 병원에 갔었습니다. 저는 아직 그곳 학생 비자를 가지고 있고, 등록 당시 학생 비자 기간만큼 의료 보험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했었지요. 이 말은 곧 비자 만료가 되는 8월까지는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지속적으로 불편해 했던 부분에 대해 진료를 받았고, 저 또한 어깨와 흉부 쪽 진료를 받았습니다. 아내는 다음 주에, 저는 한 달 뒤에 한 번 더 와서 진료를 받으라고 하더군요.
오전에 진료를 마치고, 오후에 나야가라 폴에 가기로 했습니다. 두 번 정도 와보기는 했지만, 아직 못해본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이름 하여 ‘Mist Boat Tour’즉 배를 타고 폭포 여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하지 않고는 나야가라 폴에 다녀왔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나야가라 폴 구경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표를 사고, 우비를 걸치고, 배에 올라탔습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탑승하는 가운데, 우리 가족은 배 후미 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폭포 소리와 함께 출렁이는 물결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정박해 있는 배도 큰 물결을 따라 함께 출렁거렸습니다.
그때 찬수가 소리쳤습니다. “아빠, 저기 봐요. 엄마 오리하고 새끼 오리들이요!” 이렇게 큰 물결 속에 무슨 오리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으로 찬수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 오리가 있어?”하고 제가 묻자, 찬수는 여전히 흥분된 목소리로 “저기요, 저기 애기 오리들이 엄마를 쫓아가는 것 안보여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옆에 있던 아내와 지혜도 오리들을 발견했고, 곧이어 제 눈에도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출렁이는 물결 위를 엄마 오리가 헤엄쳐 나가고 있었고, 그 뒤를 쫓아 마치 실로 연결해 놓은 듯이 다섯 마리의 애기 오리들이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순간순간 험한 물결이 엄마 오리와 애기 오리 사이를 갈라놓기는 했지만, 이내 다시 엄마 꽁지에 달라붙어 헤엄쳐 나가는 애기 오리들의 모습에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폭포 근처까지 왔는지는 모르지만, 애기들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는 엄마와, 엄마를 놓치지 않고 뒤쫓아 가는 애기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험한 물결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엄마 뒤를 바싹 쫓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애기들은 알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도 이와 다를 것이 없는 듯 보입니다. 폭력, 살인, 전쟁, 기근, 사기, 음란, 간음, 인터넷 중독, 무너진 가치관, 불확실한 미래……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도 무엇인가를 붙잡아야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입니다. 분명한 무엇인가를 붙잡아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주신 말씀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
순간순간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 또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갈라놓으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엄마 꽁지에 달라붙는 애기 오리들처럼, 우리 또한 예수님에게로, 말씀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 삶에 중요한 이유는 분명한 목표(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목표가 분명하다면, 중간에 쓰러진다 할지라도 그래서 조금 더디 간다 할지라도, 결국 그 목표를 향한 길 위에 다시 올라 설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남읍시다. 이 세상 가운데 살아남아, 마지막 심판 날에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소망하던 하나님 품에 안깁시다. 눈물을 닦아 주실, 수고했다 칭찬해 주실, 약속한 상급을 주실, 무엇보다 영원히 내 손을 놓지 않으실 아버지 품에 안깁시다. 이것이 우리가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유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