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명문 대학일수록 입학 심사 기준이 많고 까다롭다. 대부분의 대학은 학교 성적과 학력적성검사(SAT) 성적이 입학 심사 기준의 전부이지만, 최고 명문 대학은 대학 보드(College Board)에서 실시하는 성취검사(Achievement test) 성적이 추가되고, 수필과 면접으로 인성, 가치관, 지도력, 봉사 정신 등을 평가한다. 저자인 강영우 박사의 장난 진석군은 지망한 7개 명문 대학에 모두 합격이 되어 하버드 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그 중 하버드, 스탠퍼드, 노스웨스턴 영재 의대 입학을 위해 쓴 수필은 우수작으로 선정되었기에 여기에 그 전문을 소개하려 한다. (2005년 4월 3일)
내 방은 많은 장난감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마치 건축을 하는 공사장과도 같았다. 레고(lego)를 가지고 만든 빌딩과 자동차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블록으로 만든 탑은 색칠하는 책 옆에 자랑스럽게 우뚝 서 있었다. 오늘도 바쁜 하루였다.
“이제 잘 시간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내 방안에 있는 불이 꺼졌다. 무질서하게 어질러져 있는 장난감들을 용케 피해 침대를 찾아갔다. 침대에 자리를 잡고 누워 양손으로 목 아래를 받치고 어둠 속에서 허공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밤의 침묵이 나를 감싸주었다.
잠시 후 내 귀에 익숙한 소리가 침묵을 깨뜨렸다. 아버지의 부드러운 손이 점자책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였다. 다섯 살 된 조그만 몸은 포근하기만 한 세서미 스트리트 이불보 아래 편안히 자리 잡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부드럽고도 최면사의 기법을 닮은 듯한 아버지의 책 읽는 음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또박또박하고 부드럽게 읽어 주시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유치원의 좁은 세계에서 사는 나를 멀고 먼 상상의 다른 세계로 데리고 가곤 했다. 그러한 이야기 중에는 “거북이와 토끼”,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도 있었다.
내 상상은 자유로웠다. 간간이 들려오는 아버지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방해가 될 뿐이었다.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깊은 잠을 자게 된다. 이야기를 다 못들은 채 잠이 들었다. 아침에 잠이 깨면 잠자리에서 다시 그 이야기를 듣겠다는 기대와 동경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아버지의 점자책을 자세히 보았다. 나의 선명한 상상의 뿌리인 그 책은 볼록볼록 튀어나온 점들이 페이지를 채웠을 분 그림 한 장 없었다. 점자 페이지 위에 손을 얹어 놓고 이리저리 더듬어 보며 아버지는 어떻게 그것을 읽으실까 생각해 보았으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한 발견을 했다.
그것은 아직껏 나는 아버지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실명으로 내가 잃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오히려 어둠 속에서 책을 읽어 줄 수 있는 이점이 있어 나는 쉽게 잠들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더 큰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방안에 어질러져 있는 장난감과 옷들이 방해할 수 없는 어둠의 세계로 나를 데리고 가, 그 어둠 속에서 아버지와 나와 내 상상은 떼어놓을 수 없는 동반자가 된 것이다.
(중략) 그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육안이 없이도 볼 수 있는 세계를 보여주신 맹인 아버지를 가지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두 눈을 뜬 내가 두 눈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안내자가 아니라, 맹인인 아버지가 정안자인 내 인생을 안내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비로 나는 아버지처럼 어둠 속에서 책을 읽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그의 실명을 통해 나에게 주신 것은, 그리고 계속 앞으로도 나에게 주실 것은 미래를 바라보고 정진할 수 있는 비전을 가지게 했으며, 내 상상에 불을 붙게 했으며, 인생을 이 세상에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줄 수 있는 풍족한 기회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신 것이다.
강우석의 “어둠을 비추는 한 쌍의 촛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