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주일에 성도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찬수와 지혜가 아주 어렸을 때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 중,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추억들을 글로 써 놓았었다. 지난 주 설교 제목이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였는데, 이 설교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추억노트에서 찾았다. 2002년4월14일에 있었던 일이다.
이 이야기는 캐나다 유학 나오기 직전에 썼던 글이다. 찬수가 일곱 살 때의 일이다. 당시 한국에 <가시고기 아빠의 아기 사랑>이라는 책이 유명했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던 책이었다. 내용이 괜찮은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을 사왔다.
며칠 뒤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갔다 내려오니, 찬수가 벌써 그 책을 다 읽었다는 것이다. 아내 말로는 찬수가 그 책을 읽고 너무나 감동을 받아 눈물까지 글썽였다고 했다. 아기 가시고기를 위해 자기 몸까지 내어주며 사랑해 주는 아빠 가시고기에 감격했다는 것이다. 결국 아빠 가시고기는 아기 가시고기를 위해 목숨을 버리게 된다. 그 결과 아기는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게 된다. 찬수가 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 제목: 가시고기 아빠의 아기 사랑 >
아빠 가시고기는 자기 자식을 정말 사랑한다. 그리고 아기 가시고기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아빠 가시고기의 사랑에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오늘밤에 아빠와 산책을 하기로 했다. 아빠께 “사랑해요”라고 말 할거다.
이 독후감을 쓰면서, 찬수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엄마, 꼭 우리 아빠 같아요!”… 사실 그 당시, 유학 준비하느라, 아이들에게 본의 아니게 짜증을 많이 냈었던 것이 기억난다. 조그만 실수에도 얼굴을 붉힐 때가 많았다. 그러던 터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좋은 아빠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말이다.
독후감을 다 쓴 찬수가 나에게 와서, 책 내용을 주욱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안기며 물었습니다. “아빠! 아빤 닐 위해 죽을 수 있어요?” 사실 죽음에 대한 질문이라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반사적으로 주저함 없이 힘을 주어 대답했다. “그럼! 아빤 널 위해 죽을 수 있지!”
이렇게 대답한 후, 내 자신도 깜짝 놀랐다. 너무 쉽게 그러나 분명하게 대답을 한 것이었다.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당연한 대답을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한 것이다. 나는 찬수와 지혜와 조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왜냐고? 내 자식이기 때문이다. 내 생명을 바쳐서라도 지킬 수 있는 자식들…
그 대답 직후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모습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구나. 이런 것이었구나. 하나님이 서슴없이 독생자를 주실 수 있었던 이유, 하나님 스스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돌아가실 수 있었던 이유는, 날 진심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이었구나!” 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머리로는 이 사실을 철저히 알아왔지만, 가슴으로는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과거에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이 있다는 사실을, 만일 또 필요하다면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 주실 분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사실이 진정으로 우리 마음속에 녹아들 수만 있다면, 세상의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두려움은 없을 것 같다. 왜냐고? 바로 그분이 나와 함께 있으니 말이다!
자기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아빠의 대답을 들은 찬수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아는가? 나를 안으며 속삭였다. “아빠, 고마워요!” 아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순수하게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안아줄 수 있음이, 아빠가 자식에게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 아닌가싶다. 하나님도 그러실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묵묵히 나를 위해 변함없는 사랑으로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께 “고마워요 아버지”라고 말할 때 가장 행복해 하시지 않을까?
나를 위해 죽으셨고, 혹 앞으로 또 나를 위해 죽어야하실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죽음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으실 하나님 아버지! 그 분 앞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말자. 입술로 주께 감사하며 나아가자. 그러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할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후회하지 말고, 살아 숨 쉬는 순간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