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년 전 오늘 >

이 글을 쓰는 시점은 2023년 3월 20일이다. 정확히 25년 전, 분당 만나감리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3년의 전도사 생활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던 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26살의 나이에 멋모르고 단독 목회를 시작했었다. 철없던 시절, 나이 많은 성도들에게서 “전도사님” 소리를 들으며 첫 목회를 시작했다. 당시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던 서해 끝마을 신외리! 바닷가라 그런지 유독 매서운 바람이 불던 12월, 짐을 싸서 교회 옆에 붙어 있던 창고에 짐을 풀었다. 개발제한구역이라 사택을 지을 수 없어서, 단층 창고를 만들어 그 위에 조립식 컨테이너를 올려놓았던 사택에서 1994년 겨울에 첫 목회를 시작했다. 며칠 후 찬수를 낳았고, 3년간 열심히 목회를 이어갔다.

만 3년의 목회 끝에 1998년 3월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회 나오기 전, 전도사 생활을 했던 목동 한사랑 교회 임영훈 목사님과 내 본 교회 창천 교회의 박춘화 목사님이 안수자로 섬겨주셨다. 평소 존경했던 안철준 목사님도 와 주셨고, 당시 매주 함께 예배 드렸던 LG 여자배구단 전원이 참석해 주었다. 김성희, 이도희, 장윤희, 홍지연 등등. 많은 사람의 축복 가운데 치러진 목사 안수식이었다. 하지만 분주한 순서에 치어, 정작 하나님 앞에서의 다짐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마음에 다짐했던 것이 있어서, 그때 일기장에 기록해 놓았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정결하게 살겠습니다!”

그때 기억이 난다. 이렇게 수십 명이 목사 안수를 받으면 대도시 큰 교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 내게도 한 대형 교회 부목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구의 추천을 받고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자기네 교회에 와서 부목 생활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동기들이나 선배들도 모두 그렇게 해왔다. 3년 단독 목회 후, 목사 안수를 받고, 바로 큰 교회 부목사로 떠나곤 했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부르심도 없이 큰 교회로 그저 떠난다는 것은 내게는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게 신외교회에서 5년을 더 목회했고, 2002년 월드컵 4강의 여운을 마음에 담고 캐나다 McMaster Divinity College(해밀턴)로 유학을 떠났다. 1년 후 로체스터에서 목회 제안이 왔고, 우여곡절 끝에 2003년 7월 4일에 로체스터로 이사를 와서 목회와 공부를 병행했다. 미국으로 옮겨온 후 2년 간 매주 2회씩 Niagara Rainbow Bridge를 오가며 석사를 마쳤다.

청년 목회를 해야 한다며 나를 청빙했었는데 당시 교인은 26명, 그 중 청년은 딱 2명이었다. 김희정 자매와 오혜정 집사! 어른 목회만 해봤지 청년 목회는 처음인지라 노하우도 없었다. 그래서 매주 금요일마다 아내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목장 모임부터 시작했다. 희정과 혜정, 그리고 당시 젊은 부부 3가정! 매주 10여명의 청장년이 사택에 모여 맛있게 저녁을 먹고 예배도 재미있게 드렸었다.

그렇게 꾸준히 3년을 섬기자 청년들이 한 두 명씩 늘어났다. 조이가 태어난 후에는 당시 나이든(^^) 청년들(재연, 선영, 여견, 은실)이 한 달에 한 번씩 목장을 맡아서 호스트 해 주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목장이 급격히 성장했고, 주일에 오는 청년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혼자 하려 할 때보다 여럿이 하니 하나님의 역사하심도 더 컸다.

목회를 하면서 좋았던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열심히 섬길수록 시기하고 모함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아픈 이야기는 여기에 싣지 싶지 않다. 다만 그때 교회를 지키며 함께 기도해준 어른들과 청년들을 생각하니 지금도 마음이 뭉클해진다. 매주 수요예배 후 사택 지하에 모여 통성으로 기도했던 때가 생각난다. 눈물 콧물 흘려가며 1층이 울릴 정도로 통성으로 기도했던 그 순간이 없었다면, 그때 그렇게 함께 기도하며 사역을 이어가던 동역자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제일교회,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미국에서 20년을 목회했다. 올해 7월 4일이면 만 20년이 된다. FUMC 목회도 올해 벌써 8년째이다. 이 글을 쓰며, 지난 20년, 25년을 돌아보니,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때이 없었다. 부족한 목회자가 하자는 따라 준 성도들에게도 감사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든다. 이들에게 실수하는 모습 혹은 부족한 모습도 많이 보여주곤 했는데, 그래도 묵묵히 응원해주며 따라 와준 성도들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런 성도들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야말로 가장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하나님이 나를 그리고 제일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가실까? 또 어떤 이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을까? 많지는 않지만 제일교회를 통해 매해 세례 받은 이들이 있어 왔다. 영혼 구원이 우리의 사명이요, 교회의 가장 큰 존재 이유이기에 세례식이 있을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진다. 두영 선이 은숙 김석 순희 혜욱 지원 재연 소연 지연 Zoe 수연 수민 지영 은지 종무 채창 효미 민구 진수 성준 승엽 다정 도연 제흥 훈지 주연 지현 정담 수현 선목 철금 혜미 승환 희우 태형 동령 성재 현지 앤디 자유 정민 규상 경택 Shane Phohue 제니 가연 현식 현열 케이티까지… 제일교회에 부임한 이래로 20년간 51명이 세례를 받았다(유아세례 제외). 햇수에 비해 많지는 않지만, 매해 세례식을 허락하셔서 제일교회의 존재 이유를 확인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5년 전 목사 안수 받으면서도 다짐했던 것이 영혼구원이었다. 삯군 목사가 아닌 영혼을 사랑하는 목사! 오늘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제일교회를 통해, 나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될 수많은 영혼들을 기대하면서, 영혼 구원의 삶을 우선순위에 두고 초심을 잃지 않고 목회해야겠다. 앞으로 몇 년을 더 목회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목회의 기회가 주어지는 한, 내 명예, 내 성공, 내 유익, 내 감정, 내 생각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뜻인 영혼 구원을 위해 매진하는 내가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나를 위해 기도해준 모든 분들의 사랑이다. 제일교회를 거쳐 간 성도들을 포함하여 기존 제일교우들의 기도에 감사드린다. 늘 기다려주고 격려해준 부모님의 기도와 사랑을 어찌 다 말로 갚으랴! 무엇보다 미국목회 20년 동안, 목사안수 받은 후 25년 동안, 아니 1994년 결혼하고 목회시작 한 후 지금까지 28년 동안 내 곁을 변함없이 지켜준 김희연! 자식을 낳고 함께 기뻐했던 아내, 지혜가 아플 때 함께 울었던 아내, 목회하면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즐거워했던 아내, 오해와 모함 속에서도 함께 견뎌준 아내, 한 명의 아픈 성도를 붙들고 함께 안타까워하며 기도하며 나간 아내, 나의 베스트 프렌드 김희연… 28년 동안 내 삶에 섞여 하나가 되어준 아내에게 감사를 전하고, 그 아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