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은인 여기 오래 오래 있을 거야!” >

지난 월요일에 동생 가족이 이곳에 왔습니다. LA에 사는 사촌 동생 결혼식이 지난 토요일에 있었는데, 그 결혼식 참석차 미국에 왔다가 이곳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저도 참석하려 했는데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 동생네 가족이 우리 가족을 대표해서 참석한 것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한국을 떠나온 지 벌써 3년이 되어옵니다. 그동안 부모님은 캐나다에 있을 때 한 번 다녀가셨고, 어머니는 LA에 부흥회 인도 차 오셨다가 이곳 로체스터에 한 번 더 들르셨습니다. 하지만 동생을 보게 된 것은 정말 근 3년만입니다. 지난 월요일,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게 된 동생네를 마중하러 공항으로 가는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빨라졌습니다.
공항에 도착한 후, 잠시 렌트카를 알아보고 있는데,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동생네가 나왔다고 말입니다. 얼른 달려갔습니다. 동생과 제수씨 그리고 조카 영은이가 눈에 보였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동생의 모습에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선 갓 태어난 것을 보고 왔던…. 이쁜 영은이가 저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큰아빠라고 진한 허그를 해주는데, 정말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찬수와 지혜도 작은 아빠와 엄마 그리고 무엇보다 영은이를 보고 너무 기뻐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은이가 조금 ‘탐색’을 하는 듯 가까이 가지 못하다가, 이내 찬수오빠와 지혜언니 뒤만을 따라다니며 즐거워했습니다. 이제 만 세 살이 되는 영은이의 모습 하나, 말 한마디가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몇 달 전부터 동생에게 근사한 곳을 보여 주려고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첫 이틀은 이 근처에 있는 Strong Museum(어린이 박물관)과 Seneca Zoo를 둘러보았지요. 영은이와 찬수, 지혜가 많이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그동안 밀린 생일파티를 했습니다. 작은 아빠, 작은 엄마 그리고 영은이의 합동 생일 파티를 했고, 그 후에는 찬수와 지혜를 위해 작은 아빠가 그동안 ‘밀린’ 생일 선물을 사 주었습니다. 지혜는 자전거, 찬수는 게임 CD를 받고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멀리 천섬으로 배를 타러 갔는데 그만 잘못된 정보로 인해 배는 타지 못하고(배 운행 아직 안함), 캐나다 킹스톤에서 저녁나절을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나야가라 폴로 큰 이모와 사촌 형수를 모시러 가서, 함께 웅장한 폭포와 영국거리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꼭 일주일! 이제 월요일이면 이들은 떠납니다. 만났을 때 부풀었던 마음 이상으로, 마음이 많이 가라앉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고맙고 미안한 동생 내외에게 무슨 말을 하며 보낼지…. “영은인 여기 오래 오래 있을 거야”라고 다짐했던 영은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오랜 만에 보게 되었던 큰이모와 준희 형수….. 모두 떠나면, 집안은 텅 빈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가족이라는 것!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비록 일주일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이국땅에서의 삶과 외지에서의 목회 여정에 많은 힘을 던져주었습니다. 비록 다시 헤어지게 되지만, 어딘가에서 우리를 생각하며 기도해 주고 있을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힘을 얻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해줘야 할 가족이 있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책임감도 느낍니다.
이제 가족과의 만남을 통해 저희를 위로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제가 몸담고 있는 로체스터 제일 교회 식구들을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하고 사역해야 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난 일주일간의 하나님의 돌보심과 위로하심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 내 삶에 대한 묵상 >

미국에서는 명문 대학일수록 입학 심사 기준이 많고 까다롭다. 대부분의 대학은 학교 성적과 학력적성검사(SAT) 성적이 입학 심사 기준의 전부이지만, 최고 명문 대학은 대학 보드(College Board)에서 실시하는 성취검사(Achievement test) 성적이 추가되고, 수필과 면접으로 인성, 가치관, 지도력, 봉사 정신 등을 평가한다. 저자인 강영우 박사의 장난 진석군은 지망한 7개 명문 대학에 모두 합격이 되어 하버드 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그 중 하버드, 스탠퍼드, 노스웨스턴 영재 의대 입학을 위해 쓴 수필은 우수작으로 선정되었기에 여기에 그 전문을 소개하려 한다. (2005년 4월 3일)
내 방은 많은 장난감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마치 건축을 하는 공사장과도 같았다. 레고(lego)를 가지고 만든 빌딩과 자동차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블록으로 만든 탑은 색칠하는 책 옆에 자랑스럽게 우뚝 서 있었다. 오늘도 바쁜 하루였다.
“이제 잘 시간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내 방안에 있는 불이 꺼졌다. 무질서하게 어질러져 있는 장난감들을 용케 피해 침대를 찾아갔다. 침대에 자리를 잡고 누워 양손으로 목 아래를 받치고 어둠 속에서 허공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밤의 침묵이 나를 감싸주었다.
잠시 후 내 귀에 익숙한 소리가 침묵을 깨뜨렸다. 아버지의 부드러운 손이 점자책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였다. 다섯 살 된 조그만 몸은 포근하기만 한 세서미 스트리트 이불보 아래 편안히 자리 잡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부드럽고도 최면사의 기법을 닮은 듯한 아버지의 책 읽는 음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또박또박하고 부드럽게 읽어 주시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유치원의 좁은 세계에서 사는 나를 멀고 먼 상상의 다른 세계로 데리고 가곤 했다. 그러한 이야기 중에는 “거북이와 토끼”,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도 있었다.
내 상상은 자유로웠다. 간간이 들려오는 아버지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방해가 될 뿐이었다.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깊은 잠을 자게 된다. 이야기를 다 못들은 채 잠이 들었다. 아침에 잠이 깨면 잠자리에서 다시 그 이야기를 듣겠다는 기대와 동경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아버지의 점자책을 자세히 보았다. 나의 선명한 상상의 뿌리인 그 책은 볼록볼록 튀어나온 점들이 페이지를 채웠을 분 그림 한 장 없었다. 점자 페이지 위에 손을 얹어 놓고 이리저리 더듬어 보며 아버지는 어떻게 그것을 읽으실까 생각해 보았으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한 발견을 했다.
그것은 아직껏 나는 아버지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실명으로 내가 잃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오히려 어둠 속에서 책을 읽어 줄 수 있는 이점이 있어 나는 쉽게 잠들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더 큰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방안에 어질러져 있는 장난감과 옷들이 방해할 수 없는 어둠의 세계로 나를 데리고 가, 그 어둠 속에서 아버지와 나와 내 상상은 떼어놓을 수 없는 동반자가 된 것이다.
(중략) 그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육안이 없이도 볼 수 있는 세계를 보여주신 맹인 아버지를 가지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두 눈을 뜬 내가 두 눈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안내자가 아니라, 맹인인 아버지가 정안자인 내 인생을 안내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비로 나는 아버지처럼 어둠 속에서 책을 읽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그의 실명을 통해 나에게 주신 것은, 그리고 계속 앞으로도 나에게 주실 것은 미래를 바라보고 정진할 수 있는 비전을 가지게 했으며, 내 상상에 불을 붙게 했으며, 인생을 이 세상에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줄 수 있는 풍족한 기회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신 것이다.
강우석의 “어둠을 비추는 한 쌍의 촛불” 중에서

노력 지능 – effort-based-intelligence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한홍 목사님의 책을 읽다가 흥미 있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노력 지능’(effort-based- intelligence)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그동안 IQ과 EQ에만 초점을 맞춰 왔던 미국 교육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노력 지능’이라는 교육 신 개념을 처음 도입한 곳은 미국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의 학교들로서, 지금은 워싱턴 D.C.와 디트로이트, 밀워키, 세인트루이스 등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개념에 의하면, 학생들이 ‘현재 얼마나 머리가 좋은가’보다는 이들이 ‘효과적으로 노력했을 경우 앞으로 얼마나 더 똑똑해질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아 교육한다는 것이다. 즉 IQ를 기준으로 공부 못하는 아이와 잘하는 아이를 구분하지 않고, 노력이라는 변수에 따라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고 믿고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이 주어진 시간 내에 학과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열등생이라고 섣불리 낙인찍지 않는다. 대신 ‘아직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평가하고, 적절한 방법을 찾아 성과를 올릴 때까지 기다려 준다. 문제는 교사가 학생 개개인에게 적절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여유와 인내가 있어야 하고, 학생들이 그 방법에 따라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어떤 아이들은 같이 공부할 친구만 있어도 공부가 더 잘 되고, 어떤 이들은 노트 정리법만 제대로 익혀도 금세 성적이 오른다. 이 이론은 미국 내 많은 도시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 동안 ‘지능은 타고 난다’는 결정론적 사고가 지배해 온 미국 교육계에 이 ‘노력 지능’ 개념은 신선한 충격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홍 목사의 “다음 세대의 날개”에서 발췌함)

‘노력 지능’이라!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 이 이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교사’입니다. 이들은 아이들의 잠재적인 능력을 인정해 주고 기다려 주는 역할 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맞는 학습 방법을 개별적으로 찾아내어 적용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위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그런 교사가 없었습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일률적으로 똑같은 대답만을 요구해 왔던 우리의 지난날 학교 교육이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겐 위대한 스승이요 멘토 되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를 기다려 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분은 없습니다. 더욱이 ‘성경’이라는 훌륭한 ‘교육 지침서’를 가지고 늘 우리를 연단하고 양육하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노력 지능’이론이 아무리 효과적이라 할지라도, 교사들이 제시해 주는 학습 방법을 학생들이 따라주지 않는 다면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끊임없이 말씀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계속해서 기회를 주실 것이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땅을 치고 후회할 날이 올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더 나은 모습으로, 더 멋지게 주님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씀에 순종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15:22)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믿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순종이요 충성입니다. 순종은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요,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10:17)고 했습니다. 말씀을 늘 가까이 합시다. 그리고 들려진 말씀에 순종합시다. 말씀대로 살려하는 모습을 하나님 앞에서 보입시다. 노력하는 자에게, 애쓰는 자에게, 말씀대로 살아보려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더해질 것입니다.

< 이틀간 여름성경학교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

올 초 1월부터 여름성경학교를 위해 기도회로 모였습니다. 김종후 집사와 정혜연 성도를 중심으로 직접 교재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구상했고, 한 달 전부터는 노래와 율동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사가 많지 않은지라, 힘들 것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많은 성도들이 성경학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보조 교사로, 주방 일로 헌신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교회는 인근 교회들처럼 5일간 오전에 치르는 성경학교 포맷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담임(김미정, 김동진, 김종후, 정혜연)을 맡을 분들이 모두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년마다, 주일 예배 후에 시작을 해서 다음날 끝나는 일박이일 캠프 형식을 취하고 있답니다. 교회에서 sleep-over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교회 아이들도 옆 교회에서 하는 일주일 프로그램을 참석하고 난 후, 우리 교회에서 하는 캠프식 성경학교에 참여를 합니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성경학교의 ‘맛’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주중에는 찬양팀과 율동팀이 계속 모이며 연습을 했습니다. 작년에는 인근 미국 교회의 찬양팀을 불러서 찬양을 인도케 했는데, 거의 ‘공연’ 수준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보기만 하고, 그저 박수만 보내줄 뿐이었지요. 그래서 올해는 진영자매를 중심으로 찬양과 율동 팀을 가동(?)했답니다. 율동을 맡은 성혜자매, 혜정자매, 미영자매의 율동 솜씨는 보기만 해도 신이 나게 하는 수준급으로 급성장했고, 찬양팀도 김동진 집사와 진영 자매의 인도로 준비 완료 되었습니다. 은도 형제가 한국에 가는 바람에, 제가 두드리게 된 드럼 파트가 약간 불안해 보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교실 장식을 멋있게 해 주신 보조교사 왕언니 한청실 집사, 몇 주간 철야 작업까지 하며 성경학교 전체 장식 준비로 애쓴 은진자매와 일경자매, 유쾌한 게임 준비를 맡은 두영형제, 아이들과 교사 식사 준비를 맡은 이종철 성도와 이점화 집사 그리고 Bob과 이운섭 권사, 그밖에도 뒤에서 든든한 도우미로 서 있는 학부모들, 그리고 그 뒤에 울타리가 되어 주시는 우리 예수님의 손길!

하지만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교회 보수 공사와 야외 예배가 연달아 지난 두 주간 성경학교 준비모임과 겹치는 바람에, 두 주 동안 성경학교 전체 모임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프로그램 진행을 담담할 교사를 정하는 데 많은 애를 먹었습니다. 준비하고 신경 써야 할 자잘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럭저럭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오늘 성경학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아이들을 위한 잔치가 이틀간 벌어집니다. 교회 일이란 내 일, 네 일이 따로 없답니다. 몸으로 뛰는 교사는 한정되어 있지만, 여름성경학교는 우리 교인들 모두의 행사가 돼야 합니다. 그래야 작지만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랍니다. 아이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봐 주세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칭찬 한마디 해 주시는 것도 힘이 될 것 같네요. 혹시 열 너덧 명 넘짓한 아이들 이름을 아직 모르고 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아이들 이름을 한 번 외워보면 어떨까요? 외운 이름을 불러가며, 아이들을 위해 잠시 기도해 주면 더 신이 날 것 같습니다.

또한 교사로 수고하는 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교사들의 말 한마디 복음의 씨앗이 아이들 마음 판에 새겨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자기들을 사랑하시는지, 십자가의 사랑이 무엇인지, 또한 그 사랑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등등에 대해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깨달아 갈 수 있는 이번 성경학교가 되기 위해 우리 모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참! 특히 오늘과 내일 비가 온다고 하네요. 좋은 날씨를 달라고도 꼭 기도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교사들에게 전합니다. 몇 안 되는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성경학교를 위해 준비한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약간의 부담감을 갖기로 작정하고 뛰어든 여름성경학교, 이곳에서 여러분이 흘린 땀과 투자한 시간…..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하늘 공책’에 예쁘게 그려져 가고 있음을 그래서 영원히 기억될 것임을 잊지 마세요. 화이링~~

살아남기 위해서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지난주에 캐나다에 있는 병원에 갔었습니다. 저는 아직 그곳 학생 비자를 가지고 있고, 등록 당시 학생 비자 기간만큼 의료 보험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했었지요. 이 말은 곧 비자 만료가 되는 8월까지는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지속적으로 불편해 했던 부분에 대해 진료를 받았고, 저 또한 어깨와 흉부 쪽 진료를 받았습니다. 아내는 다음 주에, 저는 한 달 뒤에 한 번 더 와서 진료를 받으라고 하더군요.

오전에 진료를 마치고, 오후에 나야가라 폴에 가기로 했습니다. 두 번 정도 와보기는 했지만, 아직 못해본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이름 하여 ‘Mist Boat Tour’즉 배를 타고 폭포 여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하지 않고는 나야가라 폴에 다녀왔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나야가라 폴 구경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표를 사고, 우비를 걸치고, 배에 올라탔습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탑승하는 가운데, 우리 가족은 배 후미 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폭포 소리와 함께 출렁이는 물결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정박해 있는 배도 큰 물결을 따라 함께 출렁거렸습니다.

그때 찬수가 소리쳤습니다. “아빠, 저기 봐요. 엄마 오리하고 새끼 오리들이요!” 이렇게 큰 물결 속에 무슨 오리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으로 찬수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 오리가 있어?”하고 제가 묻자, 찬수는 여전히 흥분된 목소리로 “저기요, 저기 애기 오리들이 엄마를 쫓아가는 것 안보여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옆에 있던 아내와 지혜도 오리들을 발견했고, 곧이어 제 눈에도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출렁이는 물결 위를 엄마 오리가 헤엄쳐 나가고 있었고, 그 뒤를 쫓아 마치 실로 연결해 놓은 듯이 다섯 마리의 애기 오리들이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순간순간 험한 물결이 엄마 오리와 애기 오리 사이를 갈라놓기는 했지만, 이내 다시 엄마 꽁지에 달라붙어 헤엄쳐 나가는 애기 오리들의 모습에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폭포 근처까지 왔는지는 모르지만, 애기들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는 엄마와, 엄마를 놓치지 않고 뒤쫓아 가는 애기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험한 물결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엄마 뒤를 바싹 쫓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애기들은 알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도 이와 다를 것이 없는 듯 보입니다. 폭력, 살인, 전쟁, 기근, 사기, 음란, 간음, 인터넷 중독, 무너진 가치관, 불확실한 미래……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도 무엇인가를 붙잡아야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입니다. 분명한 무엇인가를 붙잡아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분이 주신 말씀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

순간순간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 또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갈라놓으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엄마 꽁지에 달라붙는 애기 오리들처럼, 우리 또한 예수님에게로, 말씀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이 우리 삶에 중요한 이유는 분명한 목표(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목표가 분명하다면, 중간에 쓰러진다 할지라도 그래서 조금 더디 간다 할지라도, 결국 그 목표를 향한 길 위에 다시 올라 설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남읍시다. 이 세상 가운데 살아남아, 마지막 심판 날에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소망하던 하나님 품에 안깁시다. 눈물을 닦아 주실, 수고했다 칭찬해 주실, 약속한 상급을 주실, 무엇보다 영원히 내 손을 놓지 않으실 아버지 품에 안깁시다. 이것이 우리가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유랍니다.

< “우리”를 위해 헌신한 “누군가”가 있었기에...... > (“한국에 온 그리스도의 대사 케이트 쿠퍼” 서평)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n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케이트 쿠퍼 목사가 어린 시절부터 읽고 또 읽었던 윌리엄 캐리의 글귀이다. 케이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했고, 점차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갔다. 그것은 바로 ‘조선’에서의 사역이었다. 그녀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고, 그녀는 지체 없이 그 부름에 응답했다. 이 책은 그 부름에 응답한 그녀의 활동을 그리고 있다. 그녀가 무슨 일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어떻게’ 사역을 감당했는지가 이 책을 통해 잔잔하게 전해지고 있음을 주지하면 좋겠다. 그녀는 사랑의 화신이었다. 그녀는 우리가 힘들고 지쳐 있을 때, 우리 곁에 머물러 있으면서, 우리의 아픔을 들어주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끝까지 돌본 사랑의 어머니였다.
변방의 이름 없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한 케이트 쿠퍼의 마음이 서평을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녀의 온 삶은 오로지 한국인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죽을 병으로 몇 번씩 고생하면서도, 그녀는 ‘우리들’을 생각했다. 유서를 받아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절망적인 진단을 받았을 때도, 그녀는 한민족에 대한 사랑 하나로 질병을 이겨낼 수 있었다.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을 때도, 그녀의 복음에 대한 열정이 그녀를 살려내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한 두 번의 추방 속에도, 그녀는 ‘우리들’을 생각했다. 전쟁으로 고통당할 한민족을 생각하며, 하루빨리 한국으로 돌아갈 날 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녀는 첫 번째 추방 기간 중에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아픔을 당하는 것을 생각하니, 나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다.” 그녀는 우리로 인해 기뻐했고, 우리로 인해 아파했다. 이러한 그녀의 사랑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 민족은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65세 생일을 맞던 날,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두 번째 추방을 당한다. 그녀는 일본에 머물러 있는 동안 선교국 주관으로 건강 진단을 받게 되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본국(미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받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선교본부에 장문의 편지를 쓴다. “내 건강 상태는 양호하며, 적어도 4년은 더 일 할 수 있으니, 제발 저를 이곳에 머물게 해주십시오.” 그녀의 한국인 사랑은 가식이 아니었다. 업적이나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우리를 사랑했다. 주님께서 그녀를 사랑했듯이 말이다.
그녀는 50여년 간의 한국 사역을 마친 후에, 주님의 사역을 위해 50년간 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남겼다. 오로지 주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 살아온 케이트 쿠퍼 목사는 92년의 인생을 마감한다. 그녀는 평생 자신의 삶을 살지 않았다. 그녀는 주님의 삶을 살았고, 주님에 의한 삶을 살았고, 주님의 위한 삶을 살았다. 그러한 그녀의 삶은 한민족을 향한 사랑으로 표출된 것이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생각해 본다. 한 사람의 희생과 헌신이 한 민족을 살렸다. “우리”를 위해 헌신한 “누군가”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젠 우리가 나설 차례이다. “누군가”를 위해 이제 “우리”가 나서자.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말이다.

< 새벽 한 시에 걸려온 아들의 전화 >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지난 주 금요일 오후에 찬수가 패트릭 네서 sleep over를 하기 위해 짐을 싸기 시작합니다. 하루 밤 자러 가는 것이었는데, 가방에 이것저것 넣더니 두 가방 가득 담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찬수도 sleep over에 대한 기대감이 컸든지 다소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얼마 후 패트릭 엄마가 찬수를 데리러 왔습니다. 패트릭도 함께 왔더군요. 둘은 서로 기뻐하며, 놀거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찬수를 보내고 청년부 모임을 가졌습니다. 밤11:30 정도에 모임을 마치고, 집안 정리를 대충하고 나니 새벽 한시 정도가 되었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로 가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아내가 전화를 받았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찬수의 전화였습니다. 그날따라 패트릭이 일찍 잠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 한두 시간을 보내다가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울먹이면서 말입니다. 집에 오고 싶다고 그러더군요. 새벽 한시에 말입니다. 그래서 설득을 했습니다. 네가 결정한 것이니, 오늘 밤은 거기서 자고 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찬수는, 잠도 안 올 뿐더러 ‘family’가 그립다면서 집에 오고 싶다는 말하더군요. 아빠도 보고 싶고, 엄마도 보고 싶고, 그렇게 싸우던 지혜도 보고 싶다며 말입니다. 그래서 또 설득을 했습니다. 아빠가 가서 너를 데리고 오면, 어른들을 깨워야 할 텐데 미안하지 않느냐며 말입니다. 이번엔 울먹이면서, 그래도 집에 오고 싶다고 그러더군요. 가족의 소중함을 알았다나요, 허허!

아무튼 다 큰 아이가 가족을 보고 싶다고 하는 말이 싫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찬수를 데리러 갔습니다. 패트릭의 형인 피터가 일어나 있더군요.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찬수는 아빠를 보고서, 얼굴에 안도의 한숨과 미소를 그려냈습니다. 집에 와서는 엄마를 꼬옥 껴안더군요.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입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이날 찬수는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있는 곳, 늘 다투지만 귀여운 동생이 있는 곳! 보고 싶은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간들의 보금자리는 다름 아닌 가정입니다. 가정이 건강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이나 교회생활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많은 것을 배우겠지만, 무엇보다 가정의 소중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힘들면 기댈 수 있고, 좋은 일은 나눌 수 있는 가정! 나아가서는 자신들의 가정에서 배운 따뜻함을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여유도 배우면서 말입니다. 가정의 이런 소중함에 늘 감사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 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영적인 가족들입니다. 힘들 땐 새벽 한시에도 맘 놓고 전화할 수 있는 찬수처럼, 우리 또한 삶에 지쳐 도움이 필요할 때 소리쳐 도움을 요청할 분이 계시답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랍니다. 그분은 새벽 한시가 아니라, 두시 세시라 할지라도 달려 오신답니다. 힘들 땐 가정으로 돌아오세요. 괴로울 땐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세요. 답답할 땐 예수님께 기도하세요. 두발 벗고 달려오시는 주님의 은혜를 느끼실 것입니다.

우현이의 변화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우리 교회에 7학년(중학교1년)에 다니는 우현이란 아이가 있습니다. 덩치가 크고, 키도 저만한 아이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지만, 부모님을 따라 우리교회(한인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그동안 학생부 모임이 없었다가 몇 개월 전부터 학생부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우현이와 다영이가 초등부 예배를 함께 드려왔었습니다. 그래서 두 아이가 교회에 가는 것을 힘들어 했습니다. 아침에도 늦장을 부리고, 조금만 힘들어도 교회에 나오지 않곤 했지요. 교회에 와서 대화할 사람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새로 부임한 이래로 제일 큰 기도 제목 중 하나가 바로 ‘학생부 예배의 시작’과 ‘교사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수개월 전부터 김동진 집사님이 교사로 헌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 두 명에, 교사 한 명! 지금은 두어 명의 학생이 더 나오고 있습니다. 비록 아이들은 몇 명 되지 않고, 때로는 아무도 안 나올 때도 있지만, 김 집사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학생들을 위해 기도해 왔답니다.

몇 주 전에 이점화 집사님 (우현 엄마)이 하신 말씀을 전해 들은 젃이 있습니다. 우현이가 그전까지는 교회에 다니는 것을 힘들어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생부가 시작된 후부터 우현이의 모습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매주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한 이래로, 주일 아침에도 미리 준비하여 아빠를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오는 것에 재미(?)를 들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자기들을 위한 모임이 생겼고, 자기들을 담담할 선생님이 생겼기 때문이지요.

또한 요즘은 이런 일도 있다고 합니다. 우현이가 가끔 아플 때마다, 엄마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아프니 엄마에게 기도해 달라는 것이지요. 엄마로 하여금 아픈 부위에 손을 얹게 하고, 기도를 받습니다. 그리고 일어나면서는 엄마가 기도해 줘서 이젠 많이 좋아진 것 같다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달라진 우현이의 모습에 이점화 집사님은 마냥 기쁘기만 합니다.

성경공부 모임과 선생님의 관심을 통해, 아이들 맘속에 예수님의 사랑이 심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은 철모르는 아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조금씩 예수님의 존재를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은 모두 밑으로 빠져버리지만, 어느새 쑤욱 자라나 있는 콩나물들을 발견할 수 있듯이, 이제 시작된 학생부 모임을 통해 아이들에게도 믿음이 심겨지고 있음을, 조금씩 신앙이 자라나고 있음을 볼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아이들이 커서 무엇이 되느냐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 믿음으로 자라난 아이들은 그들이 무엇이 되던 하나님이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돌보시고, 하나님이 관심 가지시고, 하나님이 쓰시는 자녀가 된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점화 집사님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우리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이것이 행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 음정 박자 무시된 찬송일지라도 >

지난주일 예배는 한미 합동으로 예배들 드렸습니다. 평상시 미국교회는 10시에 예배를 드리고, 우리 교회는 11시 30분에 예배를 드리는데, 연합으로 예배를 드릴 때는 10시 30분에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이전 시간에 익숙해져 있어, 자칫 잘못하면 시간을 놓치기가 쉽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원래 시간대에 오셔서, 예배를 함께 드리지 못한 가정이 몇 가정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멀리서 오시는 한청실 집사님 가정은 예배 후 점심식사를 나누는 중에 오셨습니다. 많이 미안해하시는 집사님에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니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미안하셨든지, 오늘은 점심식사 후에 하는 성경공부에 참석을 해야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리하여 한 집사님과 어머니 조정숙 권사님 그리고 함께 오신 최보물 권사님이 성경공부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조별 모임 후, 함께 모여 나누는 시간에 최보물 권사님과 조정숙 권사님이 간증을 하셨습니다. 두 원로권사님들의 간증은 신실하고 은혜로웠습니다. 그중 조정숙 권사님의 간증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밤에 주무시는데, 꿈속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힘차게 일어나 어서 찬송가 386장을 부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얼른 일어나 찬송 386장을 펴서 부르셨답니다. 제목은 “힘차게 일어나”였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연로하신 권사님에게 찬송을 통해 힘과 위로를 주시려 했던 모양입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있던 김종후 집사님이 “우리 함께 그 찬송을 부르지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젊은 목회자는 당황했습니다. 권사님이 간증할 때, 저도 그 찬송을 함께 부를 목적으로 386장을 폈는데, 처음 접하는 찬송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간증을 듣고만 있는데, 갑자기 그 찬송을 부르자는 의견이 나오니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일단 멜로디를 주시하며 함께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두 소절을 못 넘기고 찬송을 멈춰야 했습니다. 그러자 그런 모습이 답답해(?) 보였는지, 권사님이 독창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으로, 새 찬송을 배우려는 마음으로 찬송을 따라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권사님이 보시는 찬송은 큰글씨 찬송가로, 멜로디는 나와 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가사는 정확했지만, 음정과 박자는 마치 창을 하시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것도 4절까지 모두 부르셨습니다. 거의 한 음만을 가지고 말입니다.
하지만 권사님의 찬송 부르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비록 음정과 박자는 무시된 찬송이었지만, 마치 권사님의 노래가 한 가닥 한 가닥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평생을 고생하시다가, 미국에 와서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며,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울먹이는 권사님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권사님은 미국에 오셔서 최고의 선물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힘차게 일어나 용감히 싸워라 저 마귀 물리친 옛 성도들같이!” 더 이상 권사님의 앞길을 막을 자는 없습니다. 가끔씩 간증을 할 때마다, 늘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눈물 흘리시던 권사님이 오늘도 똑같은 간증으로 우리 모두를 울렸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은혜는 무엇이었나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피 흘려 죽으신, 그래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예수님의 은혜보다 더 큰 은혜는 없답니다. 오늘도 그분이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힘차게 일어나라고 말입니다. 그 찬송을 이번 주에는 모두 멋있게 불러 보려 합니다. “힘차게 일어나서 말입니다.”*^^* (2004년 5월 30일)

조카 예찬이의 눈물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예찬이란 조카가 있습니다. 처형의 아들인데, 찬수와 나이가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축구의 소질이 있어, 4학년이 된 지금까지 축구를 배우고 있습니다. 차범근 축구교실에 다니면서, 차범근 감독과 이상윤 코치의 눈에 들어, 매번 주전 스트라이커로 맹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한 경기에 평균 5-6골을 넣는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이번 달에 개최된 일본 유소년 축구 대회에 예찬이네 팀이 초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들뜬 마음으로 예찬이를 비롯한 차범근 축구교실 팀이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90여개 팀이 참여한 가운데, 예찬이네 팀이 분전을 했지만 16강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팀과 맞붙는 바람에 그만 0:1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엄마를 본 예찬이는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엄마…. 일본 애들이 축구를 너무나 잘해….”

“예찬아 질 수도 있는 거야. 울긴 왜 울어.”

“엄마, 나 때문에 진거야. 골 찬스가 많았는데, 모두 골대를 맞고 나왔어. 내가 너무 교만했었나봐. 내가 아무리 잘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어.”

예찬이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시합에서 졌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실력만 믿고 교만했던 자기 모습이 하나님 앞에 너무 죄송했기에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아까운 찬스를 놓쳤기에 흘린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심판의 편파 판정을 탓하는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발견되어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고백하는 아들의 모습에 엄마도, 아빠도 눈물을 흘렸답니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농담 삼아 “이번에 네가 득점왕이 되면, 넌 이제 출세 길은 맡아 논거나 다름없어!”했던 아빠도 “나는 신앙생활을 헛했다”며 함께 눈물을 흘렸답니다. 제 아내도 조카 예찬이의 눈물 흘린 사연을 듣더니. 언니와 함께 전화를 붙들고 울었습니다.

일본에 다녀온 후, 예찬이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답니다. 선생님이 슛 자세를 지적해 주면, 예전과는 달리 겸손하게 귀담아 듣고 자세를 교정하려고 애쓰고, 집에서도 엄마와 아빠 말씀을 귀담아 듣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의 패배가 예찬에게는 더 귀한 선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귀한 깨달음을 받은 예찬이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지금은 용산 초등학교 축구부에 스카우트되기 위해 기도중이랍니다. 마침 그곳 감독도 크리스천이라고 하더군요. 앞으로도 좋은 선생을 만나, 인격과 실력이 더불어 성장하길 기도해 봅니다. 먼 훗날 국가대표가 되어, 시원한 골 후에 그라운드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예찬이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또한 지난 월드컵 때 경기에 지고서도 기도를 올린 송종국 선수나 월드컵 마지막 경기에서 고작 10분을 뛰고서도 기도를 올린 최태욱 선수처럼, 이김과 짐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드릴 수 있는 예찬이가 되길 또한 기도합니다. 예찬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