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음식

지난 금요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제 아내와 결혼한 지 만 10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10년 동안 부족한 남편을 목회자로 생각하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준 아내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해 주고 싶었습니다. 공부와 목회로 정신없이 보내온 10년을 생각하니, 가족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가정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도, 몸담고 살아가는 가족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특히 힘들 때 아내의 존재는 하나님 위로의 소중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결혼 10주년이라! 뭔가 근사한 것을 해 주고 싶은데… 생각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학교 공부도 기말로 다가오면서 할 것도 많아지는 때이고, 교회에서도 새로이 성경공부를 시작해서 준비할 것도 많고, 그리고 아내 또한 돈 주고 뭔가 사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기말 페이퍼 걱정보다 더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묘안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아내를 특별한 음식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음식 만들기엔 문외한인 제가 특별 음식 마련에 나섰습니다. 금요일이 결혼 기념일이고, 전날인 목요일은 제가 캐나다로 공부를 하고 늦게 돌아오는 날이라, 모든 준비는 수요일에 마쳐야 했습니다. 수요일에 재료를 준비하면서도 아내의 눈을 피해야 했기에 무척 힘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의 이상한 행동을 감지한 아내는 ‘왜 늦게 나왔느냐, 트렁크에 뭘 실었는냐?’하는 등 저를 추궁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위기(?)를 잘 모면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전 날 찬수가 엄지손가락을 다쳐 정신이 없긴 했지만, 아내 몰래 음식을 준비하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음식 이름은….. 사실은 저도 잘 모릅니다. 아무튼 준비된 재료를 올리브기름에 잘 굴린 후, 준비된 소스에 마늘과 고춧가루를 섞어, 재료와 발 버무린 후 약간의 설탕으로 음식의 맛을 살립니다. 드디어 음식이 완성이 되었습니다. 정말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 만들어졌습니다.

아내를 불렀습니다. 아래로 내려온 아내는 깜짝 놀랐습니다. 감탄에, 감격에, 감사에,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맛을 보더니 너무 맛있다며, 결혼 10주년 선물로는 최고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먹으면서 자꾸 질문을 합니다. “여보, 이 소스의 비결은 뭐야? 정말 당신이 만들었어?” “어 뭘로 썰었기에 당근 모양이 이렇게 근사하지? 아무래도 수상한데” “어 이건 죽순 아냐. 당신이 어떻게 알고 죽순을 샀어?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수많은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어허 날 어떻게 보고! 맛있으면 됐지, 뭔 질문이 그리 많나!”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결국은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의 절대적 공범인 이종철 성도가 배후(?)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사실은 특별한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러 이종철 성도(다영아빠)의 가게에 갔었지요. 얘기를 들은 다영아빠는 모든 재료와 소스를 드릴 테니, 아침에 잘 볶기만 하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 사실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제가 아침에 음식을 만들어 놓고는, 소스 그릇을 처리하지 않는 통에 그만 아내에게 모든 것이 들통 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마냥 좋아했습니다. 모든 사실을 알고도 맛있게 음식을 먹어 주었습니다. 마치 제가 모든 것을 다 한 것처럼 말입니다.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정말 오랜만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제 앞에서 활짝 웃으며 기뻐하는 모습에 저 또한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그동안 너무 쉽게만 대했던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매번 특별한 날이 오면, 저만 아내에게 선물을 하곤 했는데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 맘으로 함께 이루어 갈 수 있는 아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다음엔 더 기가 막힌 음식을 만들어 줄께! 20주년 때 말야.”(*^^*) 앞으로 10년이 더 지났을 때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맘으로 아내와 함께 서 있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제게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결혼 10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10주년 기념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도와준 특급 도우미 다영아빠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2004년 3월 28일)

기도

가슴 터지도록 답답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시나요? 마음속 깊이 터져 올라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시나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 가운데 당신은 어떻게 처신하시나요? 감사하라고요? 말씀 읽으며 기도하라고요? ‘정답’이네요. 그렇게 해야만 함을 저 또한 잘 압니다. 하지만……..

기도를 하면서도 그 일이 떠오릅니다. 감사하려 입을 열었다가도 그 사람이 떠오릅니다. 눈으론 말씀을 읽어가고, 입으로는 감사한다 중얼거리지만, 뒤쳐진 마음은 앞서가는 눈과 입을 따라가지 못함을 발견합니다.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을 만나면 진실을 말할 것이라 다짐해 봅니다. 나 없는 곳에서 잉태되어 자라난 말들을 그대로 믿고 나를 정죄하는 사람들에게도 따끔하게 소리쳐 댈 것이라 결심을 합니다. 당사자 간에 있었던 말들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자들이, 다른 사람의 말만을 듣고 나를 그대로 판단하는 모습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겠습니다. 그들은 나의 좋아했던 친구요, 믿었던 동역자요, 사명자들이라 더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제 나도 이곳저곳에 다니면서 진실을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반드시……. 하지만……..

그렇게 되면…. 둘 중 하나는 거짓이 되고 맙니다.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이미 그 진실을 전적으로 믿어줄 만한 사람들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살고 저가 죽는다면…. 그것은 분명 주님의 뜻이 아님을 알기에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내가 죽고 저가 산다면…. 머리로는 그렇게 해야 함을 알지만, 그것 또한 내겐 너무 큰 아픔이라, 움칠거리며 발을 다시 떼어보려고도 해 봅니다. 그러다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맙니다. 주님, 너무 힘이 듭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뭐라고요? 지금 뭐라 말씀하셨나요? …… 저를… 저를 사랑하신다구요? …… 그렇군요. 이렇게 아파하는 저를 주님은 사랑하고 계셨군요. 제게 상처를 주었던 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죄인 중에 죄인인 저를 주님께서 사랑하고 계셨군요.

제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었네요. 사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습니다. 주님이 모든 일을 밝혀 주길 바래 왔습니다. 누군가가 진실을 말해주길 바래 왔습니다. 하지만 제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눈물을 닦아줄 주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부르르 떨고 있는 저를 안아줄 주님의 넓은 품이었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힘없이 주저앉아 있는 저를 일으켜 세워줄 주님의 팔이었습니다. 주님….. 주님…..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를 미워하는 자들보다도……… 그들을 미워하고 정죄할 궁리만 하고 있었던 저 때문에 주님이 더 마음 아파하심을 깨닫습니다. 그들의 죄악보다도 더 상습적이고 지능적인 죄악으로 빠져드는 제 모습에 더 많은 눈물을 흘린 주님이 떠올라 고개가 숙여집니다.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집니다. 이런 환경 중에서도 나를 주시하며 사랑하신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아님을 깨달았기에 흘리는 눈물입니다. 회개해야할 사람은 바로 나였기에 흘리는 눈물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여전히 부족한 ‘나’이지만 저를 외면하지 않고, 저를 달래서 사용해 주시려 하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번 잘못으로 평생 그 사람을 정죄하고 살지만, 주님은 그렇지 않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도 주님의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용서가 필요한 곳에 저를 보내 주소서. 화해가 필요한 곳에 저를 보내 주소서. 희생과 죽음이 필요한 곳에 저를 보내 주소서. “주님을……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노라”고 감히 고백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용서하소서!(고국에 두고 온 어머니와 아버지가 유난히 보고 싶은 날에)

산에 오르고 싶다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저는 산을 참 좋아합니다. 대학교 때 농구 동아리에 몸을 담은 후부터, 친구들과 자주 산에 올랐습니다. 폭우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설악산 대청봉을 정복했고, 마음이 답답할 때에는 지리산을 하루에 올라갔다 내려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산을 좋아하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가장 많이 올라가본 산은 아마도 홍천강 유역에 있는 팔봉산일 겁니다. 삼년 전, 제가 담임하던 시골교회의 학생부(16명)와 수련회를 떠났습니다. 많은 일정이 있었지만, 저에게는 팔봉산(302m) 등정이 가장 인상에 남았습니다. 세 번째로 오르게 된 팔봉산은 그리 높지 않으면서도 홍천강 유역 일대가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산을 처음 타는 사람들에게도 안성맞춤의 산으로 유명합니다.

그 당시 수련회를 떠나기 전, 어린 찬수(당시7살)와 약속을 한 것이 기억납니다. 찬수가 팔봉산 등정에 함께 나서기로 한 것입니다. 힘들 것 같기는 하지만, 아빠가 원하니 한번 해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자기가 힘들다고 하면 꼭 쉬었다 가자고 하더군요.

사실 실제로 찬수가 산에 올라갈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프다고 하는 아이였으니 말입니다. 초등학교 처음 들어가서 간 소풍 (동물원) 때 너무 많이 걸었다며 울면서 집으로 왔던 찬수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런 찬수가 팔봉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3봉 정상에 찬수와 우뚝 서서 사진을 찍을 때의 기분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사실 찬수만 안 갔다면 거의 쉬지 않고 올라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찬수가 올라가면서 힘들다고 말할 때마다, 온 일행은 그 덕분(?)에 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요.

간간이 쉴 때마다 찬수에게 아빠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 주었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산에 오르면 오히려 힘이 난다고 말입니다. 정상에 오르면, 이 세상을 만드신 우리 하나님이 다시 한번 자랑스러워지고, 아빠에게도 큰 힘이 생긴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올라 더 기쁘다고 말입니다.

얼마 후 정상에 오른 찬수는 ‘이 정도쯤이야’하는 표정을 짓더군요! 짜아식! 정상 3봉에 이어, 해산 바위와 로프타기 등 모두를 거뜬히 소화해낸 찬수에게 가장 큰 적은 하산길이었습니다. 아래만을 쳐다보고 가자니 고개가 많이 아팠다고 합니다. 하산길에서 오히려 힘들다는 이야기를 몇 번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등하산 길에 찬수를 포함한 우리 일행 모두는 낙오자 없이 완주를 했습니다. 내려와 홍천강에 몸을 담근 찬수가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다음엔 설악산 아니 지렁이산(지리산)에 올라가요!”

팔봉산에서 찍은 사진을 얼마전 찬수와 함께 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던지, 찬수가 산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더군요. 언젠가 찬수가 좀더 크면 설악산 대청봉과 지리산 천왕봉을 꼭 함께 오르고 싶습니다. 그때는 아내와 지혜와도 함께 올라, 위대하신 하나님을 맘껏 느껴 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웅장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감격을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2004년3월14일)

국경을 초월한 사랑 나눔

(미국에 있지만,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그만 사랑운동에 동참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해관 보육원 아이들과 함께 목욕봉사를 다녀온 조부영 청년이 제게 보낸 글을 이곳에 싣습니다. 읽고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샬~롬~~~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먼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잘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12월 첫째 주에 다녀오고 두달여 만에 오늘(2/28) 다녀왔습니다. 이번엔 왠지 모르게 몇 주전부터 아이들도 보고 싶고,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답니다. 드디어 2/28일이 되고 해관보육원을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부터 들떠 있었어요.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남양으로 내려오면서, 김밥과 음료수를 사서 저희들이 항상 만나는 동사무소 주차장으로 갔답니다. 한설이가 먼저 기다리고 있고 조금 있으니, 교회 봉고차가 왔지요. 전도사님과 정혜, 그리고 몸이 아파 일주일동안 고생한 김명자 집사님도 동참해 주셨답니다. 현미는 어린이 집에 일이 많아 함께 가지 못해 너무 미안해 하고 아쉬워했지요. 제가 김밥을 사왔는데, 한설이두 김밥과 라면 그리고 찐빵까지 사와서, 함께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열심히 먹었지요. (아이들을 씻기려면 저희들이 먼저 힘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지난번에 만났던 아이들의 얼굴은 생각이 나는데, 이름이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거예요. 암무튼 그 아이들이 나왔으면 하는 맘으로 보육원엘 도착했어요. 일단 사무실에서 간단한 방문일지를 쓰고, 아이들을 기다리는데 남자아이 2명, 여자아이 3명이 나왔어요. (아이들은 어른 수에 맞춰서 보내 준답니다….나중에 물어보니 저희들 힘들까봐 1인당 1명만 보내주는 거래요. 담엔 더 많이 보내주셔도 된다고 했어요.)
그중 남자아이 한명만 처음만나는 아이이고 나머지 네 명은 저희들이 거의 6개월 정도 만났던 아이들 이었어요. 남자아이 이름은 노현진(5세), 문성태(5세), 여자아이는 변혜림(7세),임정민(5세),이다은(5세) 이랍니다. 제가 아이들을 너무 예뻐하지만 이 어린아이들은 정말 예뻐요.

노현진이란 아이는 항상 한설이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꼭 아빠란 호칭을 쓰면서(첨엔 27살 청년이 아빠란 소리에 놀랬대요) 헤어질 때가 되면 안떨어지려고 눈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다음에 꼭 온다는 약속을 해야만 손을 흔들고 뒷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가요. 오늘은 사진을 찍었는데, 제일 늦게 방으로 들어 가더군요. 제일 아쉬운 시간이죠!! 개구장이면서(첨엔 목욕탕에서 뛰어 다니다가 넘어져 머리를 부딪혔대요.) 수줍음도 많이 타고 수다쟁이예요. 햄버거를 먹으러 가면 햄버거두 잘먹지만, 감자볼이란 튀김을 잘 먹어요. 그러면서 옆에 저희들이 있으면 케찹을 찍어서 먹여주고 자기손에 케찹이 묻었으면 자기가 손가락을 빨아먹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모르겠어요. 그리구 그손으로 또 줘요…ㅎㅎ

문성태란 아이는 오늘 처음 봤는데, 현진이랑 동갑이지만, 생일이 많이 늦는 것 같아요. 아직 발음이 새어나가서 “이름이 뭐야?”라고 물어보면 “문덩태”라고 대답을 해요. 귀엽죠!! 흰피부에 큰눈을 가진 밝고 씩씩한 아이랍니다. 단점이 있다면 뭘 물어보면, 항상 반대로 대답을 한다는 거예요. 햄버거를 먹고 헤어지는데, 사진찍자고 하니까 뒤도 안돌아 보고 방으로 뛰어가는걸 잡아서 사진을 찍었어요. 깨물어 주고 싶은 아이랍니다.

혜림이를 만난 건 작년 초였을 거예요. 그때는 말도 없고 그냥 웃기만하면서 햄버거랑 치킨만 먹던 아이였어요. 지금도 먹는 건 1등이지만, 또래 아이들보다는 활발하지가 못했는데, 일년이 지난 지금은 너무 밝고, 키도 많이 컸고, 혼자서 옷도 갈아입는 아이로 변했답니다.
정민이는 우리가 만난지 6개월 정도 된 것 같아요. 첫인상이 너무 좋아요. 정민이를 보면 예전에 신외리 동굴파(!!)생각이 나네요. 터질 듯한 볼에 눈은 작지만, 항상 웃는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네요. 5살인데도 너무 의젓하고 조용해요. 제가 목욕탕에서 장난기가 발동해서 슬그머니 다가가는데 무서워하면서 도망을 가더니 한참을 제 곁으로 안 오는 거예요. 민망해서 혼났어요.

다은이도 정민이랑 같은 날 만났지만, 처음엔 3살 정도 되는 줄 알았어요. 5살 아이들보다 키도 작고 말도 없이 입을 내밀고 화난 아이처럼 있었어요. 지금도 처음 보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지요. 그런데 오늘은 정혜한테만 딱붙어서 때밀구 햄버거도 먹고 그랬어요. 아직도 많이 늦은 것 같지만, 전보단 많이 컸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목욕하고 나오면 항상 음료수(팽돌이)를 먹어야 나오는 아이고, 햄버거를 먹으러 가면 한숨만 쉬고 주는 대로 먹던 아이였는데, 오늘은 치킨만 먹었어요. 콜라를 마셔도 콜라보다는 얼음만 먹는 아이랍니다. 다은이랑 정민이랑 첨엔 쌍둥인 줄 알았어요. 진짜 많이 닮았거든요. 목욕을 하고 옷을 입는데, 한 아주머니가 손녀딸을 데리고 목욕탕엘 왔는데, 옷 벗겨 주고 하는 모습이 부러웠는지, 정민이란 아이는 한참을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고 쳐다보고 있는데, 가슴한편이 찡~하더군요.

처음 보는 아이들은 항상 그랬지만, 목욕하고 데려다주면 뒤도 안돌아보고 방으로 뛰어가요. 아이들이 정을 안 주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한두번 만나면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뒷걸음을치며 방으로 들어가곤 하는데, 그때면 저희들도 헤어지기가 싫답니다.

첨엔 엄마 아빠란 호칭이 어색했는데, 아이들 머리감기고 때밀어주는 게 어설펐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더 감사한 것은 오늘은 토요일인데도 목욕탕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샤워기를 1인당 1개씩 가지고 놀기도 하고 물싸움도 하고 그랬답니다. 나중엔 옆에 목욕하는 아주머니한테 물을 뿌려서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그 시간시간이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과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상처없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줬으면 좋겠어요. 비록 몸도 피곤하고, 서너시간 밖에 함께 있진 못하지만,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함께 전하고 나눌 수 있다는것에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후원금으로 저희들이 오늘 잘 다녀 왔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들 위해 더욱더 기도해 주세요.

조부영 올림 (2994년 3월 7일)

< 개척자의 맘으로, 섬김의 모습으로 >

여느 교회나 그렇겠지만, 우리 교회 또한 여선교회가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기에, 우리 교회가 이만큼 자라날 수 있었던 것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 부임하면서 내내 맘속에 한 가지 소원이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남선교회가 조금만 더 활성화 되었으면 좋겠는데……. 어른들이 나서 주시면, 나이 어린 사람들은 그 모습을 닮게 되어 있는데……’

몇 주 전 예배 후에 점심 식사를 하고 있던 남자 성도들에게 이운섭 권사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남선교회에서 Nursery room 정리를 맡아 주면 어떻겠냐고 말입니다. 미국 교회를 빌려 쓰고 있는 입장이라, 가끔 지적을 받곤 합니다. 특히 Nursery room 정리에 대해서 말입니다. 여선교회에서는 매주 여러 가지로 바쁜지라, Nursery room 정리까지 신경 쓰기에는 일손이 부족합니다.

이운섭 권사님의 제의에 저는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과연 누가 이 일을 하신다고 나설까?’그러면서도 남선교회가 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내심 흥분(?)이 되었습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다가, 제일 연장자이신 이민기 권사님이 어떻게 하면 되냐고 자세히 물으시더니, 우리 남선교회에서 하겠다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당장 2월 한 달은 이민기 권사님이 맡기로 하셨고, 3월부터는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두주가 지났습니다. 미국교회 담임목사에게서 쪽지를 받았습니다. 자기가 부임한 이래로 이렇게 기가 막히게 정리를 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입니다. Nursery room 뿐만이 아니라, 지하의 주일 학교 교실까지 매주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음을 보니, 정말 흐뭇했습니다. 매주 친교 후에 일찍 가시던 이민기 권사님이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정리를 하시며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을 종종 보셨을 것입니다. 저도 흐뭇하지만, 이임자집사님(부인)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듯 ‘섬기는 모습’은 삶을 넉넉하게 해줍니다. 섬기는 자나, 섬김을 받는 자 모두의 삶을 말입니다.

물론 기존에 헌신하는 분들의 모습은 더 귀합니다. 매주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손길, 끝까지 남아 구석구석 정리하는 손길, 식탁을 미리 세팅해 놓는 손길, 설거지로 섬기는 손길,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는 손길, 차량으로 봉사하는 손길, 매주 일찍 나와 찬양으로 섬기는 손길….. 정말 헌신하는 손길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가 건강해지지 위해서는 ‘섬김’의 모습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그냥 이 자리에 머물러 우리끼리 천년만년 좋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섬김을 받으려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몸된 교회로 이끄신 것 또한 서로 섬기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직분이 문제가 되나요? 체면이 그리 중요한가요? 뭔가 보상을 바라고 헌신하나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섬김, 예수님의 헌신, 예수님의 죽으심은 뭐가 되나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저 섬기십시오. 하나님은 섬길 수 있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나’를 비우고, ‘남’을 섬길 수 있는 자가 됩시다. 남이 못하는, 아니 남이 안하는 부분들이 발견 됩니까? 여러분이 하십시오.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세상 속에 나가 그저 섬기는 모습으로 살아가세요. 섬기는 모습은 바로 예수님이 찾는 모습입니다.

이번 주일은 “남선교회 헌신예배”로 드려집니다. 이제 우리 남선교회가 섬기는 데 앞장을 서려 합니다. 여지껏 섬김을 받는 데만 더 익숙하지만, 이제 섬기는 데 익숙해지는 남선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은 그 기념으로 남선교회에서 무엇인가를 준비한 모양입니다. 뭔지 기대가 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모습이 기대가 됩니다.

그래요.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개척자의 맘으로 다시 시작합시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고, 서로 배려하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섬김’이 있기에 우리의 삶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말입니다. (2004년 2월 29일)

“인자(예수)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어눌한 말솜씨라 할지라도

캐나다 맥매스터에서 함께 공부하는 김유찬이라는 전도사가 있습니다. 해밀턴에 있는 한 교회의 1.5세들을 맡아 양육하고 있는 전도사로, 정말 순수한 청년 전도사입니다. 이번 학기에는 함께 듣는 과목이 없지만, 종종 학교에서 만납니다. 몇 주 전 저녁 무렵에 그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종일 맘이 불편해서 혼났어요. 사실은 오늘 오전에 교회 청년들과 캠퍼스 전도를 나가기로 했는데, 할 것도 많고 피곤하기도 해서 나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하루 종일 하나님께 죄송한 맘이 들어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히지 뭐예요…. 그래서 늦었지만 지금 막 나가서 복음 전도 하고 왔어요. 그랬더니 맘이 한결 나아졌네요.”

김전도사 말로는, 복음을 제시하면 시간이 없다고 거절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진지하게 듣는 학생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영접 기도까지 따라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 몸은 피곤하지만 맘은 편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김전도사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 안면이 있는 사람에게도 ‘예수님 믿으라’고 하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 판에,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일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와서 불편한 맘이 많이 사라졌다는 김전도사의 얼굴에는 진정으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제시하기에 앞서 많은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시간이 없다며 거절당할 수도 있고, 그동안 잘 쌓아왔던 나의 좋은 이미지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내가 예수 믿는다는 것을 악용하여 나를 시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붙여주신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인지, 복음이 무엇인지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주에 이성혜 자매가 남편 (Darrin, 미국인)과 함께 예배에 참석을 했습니다. 남편은 이곳에서 치료사 공부를 하고 있는 분인데, 학교 숙제 때문에 이날 예배에 참석을 했다고 합니다. 숙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 경험하기’였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 발걸음을 인도하신 이는 분명 하나님이셨습니다. 저는 한 주 전에 Darrin이 우리 교회에 올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곤 적지 않은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예배에 참석을 한다는데, 무엇인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 끝에 예전에 사 두었던 영어 사영리 소책자를 가지고 교회에 갔습니다.

예배가 끝났습니다. 성혜 자매와 Darrin에게 5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곤 사영리 책자를 함께 읽었습니다. 설명은 제가 읽고, 성경 구절은 Darrin이 읽었습니다. 영어를 하면서도, ‘이 사람, 내 발음 이해하려면 꽤나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마구 밀려 왔습니다. 하지만 영어가 잘 되지 않는 가운데서도, 성령께서 그 시간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알고 보니, Darrin도 중학생일 때 교회를 다녔답니다. 그런데 차츰 바빠져서 교회를 멀리했답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는 것은 중요한 것이라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너무 사랑하신다는 사실과 함께 말입니다.

제가 말한 것을 그가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그를 만난 이상 그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에도 가끔 오기로 했습니다. 그러다보면 Darrin의 맘이 성령님에 의해 활짝 열어질 순간이 올 것입니다. 어눌한 말 실력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 그것도 외국인에게 되지도 않는 영어를 가지고 전한다는 것, 제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심을 알기에, 전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 실력을 키운 뒤에, 성경을 좀더 연구한 뒤에 전도하겠다구요? 아닙니다. 지금 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내일이 보장되어 있다고 누가 말하던가요? 바로 지금, 내게 붙여주신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오늘 복음을 전하세요. 그리고 그를 위해 헌신하시고, 잠잠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그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요, 오늘을 살아가는 유일무이한 이유랍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능력의 통로가 되어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나의 어눌한 말솜씨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역이 시작된답니다.

발렌타인 날 받은 사랑의 편지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이번 주는 ‘발렌타인 데이’가 있는 주간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날 여자가 남자에게 쵸콜릿을 줍니다. 그리고 ‘화이트 데이’(3월14일)가 따로 있어, 이날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캔디를 선물합니다. 하지만 미국에는 ‘화이트 데이’가 따로 없습니다. 대신 ‘발렌타인 데이’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조그만 선물을 나눕니다.

오늘 지혜가 학교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림 카드였습니다.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학교에서 만든 것 같았습니다. 위쪽에는 예쁜 그림들을 그려 놓았고, 그 밑에 짤막한 글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드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예뻐 보였습니다. 몇 번씩 물어 보았습니다. “이거 네가 쓴거니? 선생님이 좀 도와 주셨니? 책에 나온 것을 카피한 거니?”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생각해서 글과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빠와 엄마를 이렇게 사랑한다며 쓴 글입니다. 그저 ‘사랑한다’는 표현만 말 줄 알았지, 이렇게 구체적으로 사랑을 표현해 보지 못해왔던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 Dear Mom and Dad > – Love Sophia (지혜)

I love you like clocks love numbers.

I love you like Valentine’s love hearts.

I love you like snowman loves snow.

I love you like beds love pillow.

I love you like hands love mittens.

I love you like hats love heads.

I love you like a flowers love the sun.

I love you like a sandwich loves eggs.

조금 틀린 곳도 보이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 글의 공통점은 각 행의 두 가지 요소가 항상 붙어 다니는 하나의 짝이라는 사실입니다. 시계가 숫자를 사랑하듯, 침대가 베개를 사랑하듯, 모자가 머리를 좋아하듯, 그리고 샌드위치가 계란을 사랑하듯, 그렇게 엄마와 아빠를 사랑한다는 내용입니다. 엄마와 아빠를 사랑하는 지혜의 맘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없는 것임을 알기에, 뽀뽀를 열 번이나 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함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언뜻 생각나지 않는다면, 잠시 모든 일손을 멈추고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예수님, 허물 많은 우리를 지금도 용서하시며 인내함으로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나는 과연 어떤 언어로 표현하면 좋을까?’

사실 그 사랑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요즘 예수님 보다는 다른 것들에 더 정신이 팔려 있지는 않은지….. 예전에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던 그 맘이 이젠 식어 버리지는 않았는지….. 과연 내가 주님의 말씀처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는 있는건지…..

우리 이제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시작합시다.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아, 주님께 그 사랑을 보여 드립시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샌드위치가 계란을 사랑하해 늘 함께 하듯, 손이 장갑을 사랑해서 늘 함께 하듯, 눈사람이 눈을 사랑하여 늘 함께 하듯, 우리 또한 주님과 함께 해 드려야겠습니다. 아니 함께 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전부를 주신 예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길 원하십니다. 문을 열고 주님과 하루 하루를 동행한다면, 그 모습이야말로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사랑 편지가 될 것입니다.

멀리 있지만 한 맘으로

2001년 추수감사예배를 드린 직후로 기억됩니다. 당시 저는 경기도 신외리에서 시골목회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추수감사주일 예배 때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갖가지 과일과 배추, 호박 그리고 쌀 한가마를 차에 싣고 안양에 있는 <해관보육원>을 방문했습니다. 해관보육원은 1918년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보육시설이자, 기독교 최초의 고아원이기도 합니다. 본래는 독립투사들의 자녀를 보호 교육시키는 시설로 출발하였으나, 지금은 기독 보육원으로서 고아들과 버려진 아이들, (부모의 형편 때문에) 맡겨진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곳입니다. 유아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100여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곳에 처음 가기 전 정어진 원장님에게 전화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물었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부금이나 어떤 물건들을 가져다주시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이곳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시는 것이 더 필요하답니다……….. 이번에 오실 때 초등학생 아이들과 목욕을 함께 가 주시면 안될까요? 목욕탕 주인들이 아이들끼리 목욕탕 오는 것을 싫어해서….. 목욕탕에 한번도 못 가본 아이들이 태반이랍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음식과 옷가지 그리고 물질로 후원하는 것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저희 내외와 청년들은 ‘몸으로 뛰는 것’(?)에는 자신 있었기에, 그렇게 하겠노라 했습니다. 한번에 많은 아이들이 가지 못하기 때문에, 순번을 정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제 세상 만난 듯이 탕에 뛰어들었고, 냉탕에서 수영하며, 깔깔대며 좋아했습니다.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저마다 먼저 달려와 저와 청년들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앞으로 커서 소방관 또는 경찰관이 되겠다고 자랑스레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중 지훈(당시 1학년)이란 아이가 있었습니다. 앞머리가 잘라져 있어, 슬쩍 말을 시켜보니, 기가 막힌 이야기가 흘러 나왔습니다. “초등학교 반 친구들이요,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내 머리를 잘랐어요. 그리고 매일 발로 밟고 그래요. 야구놀이 한다고 방망이로 날 때리고, 선생님이 들어오면 얼른 책 읽는척해요….. 근데 괜찮아요. 내가 참아야죠. 참을 거예요.”
이 아이들에게는 자기들의 투정을 받아줄 사람이 필요했고, 자랑할 누군가가 옆에 있기를 원했으며, 자기들이 다른 친구들보다 더 사랑 받고 있음 또한 몸소 느끼고 싶어했습니다. 버림받았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 이 아이들로 하여금 ‘사랑’을 더 한층 그리워하게 만든 것이지요.
목욕이 끝난 후,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맥도날드’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은 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합니다. 실은 근처에 있는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사주려 했었습니다. ‘맥도날드’에 가야만 한다고 찡얼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밉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이렇게 자기들의 엄마 아빠에게 찡얼거리기도 하며 사랑도 받고 자라야 할 아이들이 아닌가!’ 결국 모두 함께 ‘맥도날드’로 가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준비해간 잠옷을 나누어주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런 말이 들려왔습니다. 이번에 목욕탕과 맥도날드 다녀온 아이들의 발걸음이 달라졌다고 말입니다. 늘 우울해하며, 학교 가기도 싫어했던 아이 한명도, 제일 먼저 학교로 달려가고, 가슴을 죽 펴고 힘차게 걸어다니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형들에게 자랑한답니다. “내가 말이야, 지난번에 목욕도 갔었고, 맥도날드에도 갔었지!”시린 마음에 잔잔한 미소가 흘러나왔습니다.
사랑은 지속적인 것이랍니다. 매주 가지는 못했지만 정기적으로 이들을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목욕도 하고, 맥도날드에서 맛있는 것도 먹으며, 많은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열심히 하다가 저희 가족은 멀리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신외리 청년들이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는 손길들도 붙여 주셔서 더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이영범/김태연 집사님, 김구환/이경하 집사님, 사랑하는 조카 영은이 엄마와 아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기에, 함께 기도해 주는 분들의 기도와 물질 후원은 이 청년들에게 더 큰 힘이 된답니다.
요즘은 더 어린 아이들(5-6세)이 나온다고 합니다. 초등학생들과는 달리, 목욕을 시켜주는 청년들을 엄마나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들도 있답니다. 그럴때면, 정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제 이 일에 우리 교회도 조그만 힘을 싣어 주기로 했습니다. 지난 성경공부팀이 모은 100불 정도의 예물을 ‘고아들 목욕비’로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상하반기로 나누워 도울 생각입니다.
우리는 비록 그곳에 직접 가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지만, 멀리서나마 같은 맘으로 기도하며 후원할 것입니다. 넉넉지 못한 액수라 할지라도, 해관 보육원의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청년들을 위해 계속 기도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 어렵게 생각하지 맙시다. 그저 사랑이 필요한 자들을 찾아가서, 만나주고, 이야기 나누며, 함께 사랑을 만들어 가면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거기서부터 출발합니다.
“부영아, 현미야, 한설아, 정혜야, 낙은아, 그리고 주환, 미선 전도사, 모두들 사랑한다. 우리 몫까지 열심히 사랑해 다오.” (2004년 2월 8일)

성경쓰기

주님을 위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저 어린아이와 같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은 무엇이 있을까요? 어린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큰 일이 아닙니다. 하루 하루를 살면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과연 이 일이 예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일까’하는 단순한 고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됩니다.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며 살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복잡한 문제의 해결은 단순해 짐에 있습니다.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생각이 틀려 있기에, 세상이 힘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질이 우선이 되야만하고, 명예만은 지켜야 하며, 좋은 인간 관계가 힘이 된다는 사고들….. 틀린 생각들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먹고 사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명예가 주어진다는 사실에 삶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내게 없는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좋은 ‘줄’을 잡고 있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그러한 것들이 영원히 여러분 것이 될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물질이, 명예가, 연줄이 여러분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나요? 정말 그런가요?

이 땅에서의 삶은 나그네 삶일 뿐입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삶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영원한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짓기를, 나그네의 삶을 통해 영원한 삶을 결정지을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영원한 영광 가운데 살 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고통 가운데 살 것인지는,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에 달려 있답니다.

당장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 같은 물질과 명예와 권력도, 사실 지나가면 그만인 것입니다. 남들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 나도 일단 얻고 보자는 식으로 덤벼드는 우리의 삶을 이제 내려놉시다. 그리고 영원한 삶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에게로 눈을 돌립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서 아버지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며 삽시다.

오늘 이야기가 많이 무거워졌네요. 사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바쁜 삶 속에서 우리가 잊으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내 마음에 둔 것이 ‘말씀’이고(시119:11), 우리를 거룩하게 지켜주는 것도 ‘말씀’(요17:17)이며, 영원토록 존재하는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벧전1:25).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작년에 처음 성경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창립기념주일을 앞두고 ‘잠언서’를 여러 성도들이 쓰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는데, 열다섯명 이상이 성경을 썼습니다. 정성껏 성경을 써 온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에게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로마서’를 썼습니다. 이번엔 오히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성도들이 꽤 참여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성경을 쓰게 되면 세 번 읽는 셈이 됩니다. 쓰기 위해 읽으면서 한번, 읽은 것을 되뇌이면서 한번, 되뇌인 것을 적으면서 한번! 일석 삼조! (Killing three birds with one stone.)

말씀은 곧 육신의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입니다(요1:1,14). 그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내게 복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이야 말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생명’입니다. 물질도, 영화도, 명예도, 권세도 다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말씀만큼은 여러분과 저를 세상 끝날까지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함이 여러분의 양식이 되길 원합니다. 그가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영원한 안식과 평안으로 이끌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기준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이유랍니다. (2004년 2월 1일)

“The word of the Lord endures forever. That word is the good news that was announced to you.” (1Pet1:25)

또 한 분을 떠나보내며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요즘 며칠 째 눈이 계속해서 내립니다. 제가 목회하던 신외리에도 한 번 눈이 오면 많이 내리긴 했지만, 이곳처럼 눈이 꾸준히, 끈질기게 쏟아지는 것을 본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아이들 학교가 임시 휴교를 할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김순희 집사님이 이곳을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목요일 여선교회 회원들이 모여 저녁 시간을 함께 한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캐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늦은 밤이 되기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떠나는 날인 금요일 아침에 찾아뵙기로 했습니다. 고속도로 490을 타고 가다 보니, 사고가 이곳저곳에서 난무했습니다. 대형 사고가 나서 차량을 통제하는 구역도 많았습니다.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사를 하실 수 있을까?’

도착을 하니 한참 짐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또한 떠나기 전에 하우스 인스펙션을 받아야 했기에, 재훈이는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집사님은 모자를 쓰신 채 벤지(퍼피)에게 밥을 먹이고 있더군요. 집사님이 웃는 얼굴로 반겨 주었습니다. 얼마 전 사랑하는 남편(김창규권사)을 잃으신 후부터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신다고 하더니, 어제도 두어 시간밖에 못 주무셨다고 합니다.

권사님이 병원에서 암투병을 하실 때, 하루 종일 간호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답니다. 양쪽 어깨에는 권사님의 하루 세끼 식사 주머니와 빨래 가방을 둘러매고, 품에는 벤지와 또 다른 가방을 들고 매일 밤 집으로 돌아오노라면, 오르막 계단에서 힘에 겨워 종종 뒤로 쓰러지기도 하셨습니다. 지친 몸으로 빈 집에 돌아오면, 다음 날 준비를 또 하셔야 했답니다. 자녀들은 모두 멀리 떠나 있었기에, 벤지만이 유일하게 말동무가 되어 주었답니다.

그 힘들었던 모든 시간들을 뒤로 한 채, 이제 이곳 로체스터를 떠납니다. 좋은 추억들도 많았지만, 가슴 아픈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진심을 왜곡했던 사람들 때문에 침상을 적시며 지낸 시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기로 했고, 두 분 또한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도 했답니다…… 이젠 모두 과거가 되어버린 시간들을 추억 속에 담아두고, 이곳을 떠납니다.

우리 교회에서 준비한 조그만 선물을 전해 드렸습니다. 하나는 교인들의 인사말을 담은 비디오 테잎이었습니다. 지난 주 친교 시간 이후에 모두 성가대실에 모여, 한분씩 집사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답니다. 아쉬움을 담기도 했고, 웃음과 격려를 담기도 했으며, 언제나 함께 하자는 약속을 담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는 제가 이곳에 온 후에 우리 성가대들이 찬양한 곡들을 CD에 담아 드렸습니다. 거기에는 권사님이 살아계셨을 때 함께 들었던 성가들도 꽤 있었기에, 집사님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카드를 한 장 드렸습니다. ‘몸은 떠나셔도, 우리 교인임을 잊지 마세요’라는 글을 담아서 말입니다.

하우스 인스펙션을 마치자,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눈물이 글썽한 재훈이를 안으며,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벤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신 집사님을 눈밭 위에서 꼬옥 안아드렸습니다. 한참 동안 안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만이 그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예전처럼 열심을 찾게 만들 것이고, 더 헌신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권사님의 못 다 이룬 사역을 이루며 사실 것입니다. 30년! 적지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비록 이곳을 떠나시지만, 집사님과 돌아가신 권사님을 통해 이곳에 뿌린 사랑의 씨앗들은 반드시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임을 압니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보다는 떠나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더 아프다더니,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습니다. 많이 아쉽습니다. 두 분이 함께 가시기로 한 길을 혼자 보내드려 더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것임을 또한 믿기에 힘을 얻습니다. “제 자리를 채울 성도가 꼭 와야 할 텐데…”하며 걱정했던 집사님 말대로 우리교회에도 새로운 식구들이 오게 될 것임을 믿고, 집사님에게도 우리 이상으로 사랑을 주고받을 귀한 지체들이 예비되었음을 믿습니다. 가셔서도 부디 건강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