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괜찮나요?>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의 일입니다. 가족과 함께 다른 주로 여행을 떠나거나, 방학을 이용하여 한국으로 잠시 떠난 성도들이 있어, 그리 많은 성도들이 예배에 참석하진 못했습니다. 아이들을 제외하고 16명의 성도들이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배에 앞서 윷놀이 대회를 열었습니다. 올해 1등 상품은 쌀 한 가마(?)였습니다. 2등은 보리쌀 그리고 참가상과 특별상이 준비되었습니다. 모두들 열심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목사가 속한 팀이 강하긴 강한(?) 모양이었습니다(^^). 마지막 판에서 이민기 권사님 팀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최선을 다했으나, 꼴찌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팀에게 특별상(부침가루)이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운섭 권사님과 옥복순 집사님의 배려로 맛있는 다과를 나누었습니다. 최선이 성도님의 김밥으로 요기를 할 수도 있었지요. 대충 정리를 하고 2003년도를 보내는 마지막 예배를 드렸습니다. 촛불 예배로 진행이 되었고, 예배 후에는 김동진 집사님이 준비해 온 ‘올해의 성구 책갈피’를 나누어 갖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윷놀이를 진행하면서도, 예배를 드리면서도 계속해서 눈길이 가는 곳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천방지축으로 뛰어 놀던 지혜가 오늘은 구석에 자리를 깔고 누워 계속해서 잠을 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아침부터 목이 많이 아프다고 하더니, 결국 교회에 와서는 드러눕고 만 것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교회 어른들도 모두 지혜 주변으로 모였습니다. 아직도 자고 있는 지혜를 보며, 지금이라도 응급실에 가서 진료를 하라면서 말입니다. 김재길 집사님은 직접 응급실까지 따라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열도 조금 내린 것 같고, 상태가 그리 심한 것 같지 않아, 그날 밤은 그냥 두고 보기로 했습니다.

2004년 1월 1일 드디어 아침이 밝았습니다. 잠에서 깬 지혜는 생각보다 잘 놀기 시작했습니다. 열은 완전히 떠났고, 목만 조금 아픈 모양이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물약을 먹이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이임자 집사님이었습니다. 지혜가 걱정되어 전화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김미정 집사님에게서도 전화가 왔습니다. 바로 뒤를 이어 박인옥 집사님과 이종철 성도님에게서도 말입니다. 미국에서 처음 맞는 새해 아침에, 많은 분들에게서 지혜를 염려하는 전화를 받은 것입니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서로 염려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새해 아침에 걸려온 안부 전화들은 목회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모두들 ‘내 일’인 양 염려해 주는 마음이 포근하게 저희 가정에 전해졌습니다. 올 해는 저희 가정이 더 많이 사랑을 받을 모양입니다. 받은 사랑으로 더 사랑을 할 수 있을 모양입니다. 힘든 이국 땅에서의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믿음의 가족들이 옆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올 해 모두 건강하셔서, 그 건강으로 더 열심히 주님을 위해 사는 우리 로체스터 제일 선교감리교회가 됩시다. 화이링!

로체스터에서의 첫 성탄절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돌아왔습니다. 근 한달 동안 연습한 주일학교 아이들이 “Mission Possible”이란 제목으로 성극을 준비했습니다. 미국 교회와 연합 예배로 드려서 예배당이 꽉 찼습니다. 다른 특별한 순서 없이 아이들 성극으로만 예배를 대신했습니다. 한국식으로 준비하는 성탄 예배에 비해 간단하기는 했지만, 아기자기한 맛(?)은 덜했습니다.

성탄 전야 예배는 미국 교회에서 본당을 사용하기에, 우리는 예배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대신 청장년 모임을 성탄 이브에 사택에서 가졌습니다. 서로 선물을 준비했고, 맛있고 재미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밤 늦게까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성탄 아침! 사실 미국에서는 성탄 당일날 예배는 잘 드리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우리 경우에도, 한국으로 또는 미국내 다른 주로 여행간 성도들이 많은지라, 이날 모일 수 있는 인원은 극소수일 것이라는 예상을 했습니다. 맞벌이 하시는 분들도 많아, 이날만큼은 편히 쉬었으면 하는 생각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탄절 예배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몇 명이 나오든 주님 태어나신 날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의 도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느새 싼타가 성탄절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고, 이날의 의미를 되새기기 보다는 여러가지 선물 목록을 놓고 씨름하는데 시간을 허비해야 되며, 예수님이 왜 태어나셔야 했는지 묵상하기 보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닌 것에 불평하기 쉬워진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크리스마스! 기분 좋은 날입니다. 박애주의의 상징인 ‘싼타’가 많은 선행을 베풉니다. 선물을 주고 받으며 지난 일년간의 스트레스를 모두 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날의 의미를 반드시 깨닫고 지나가야 할 것입니다. 싼타에 앞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선물에 앞서 그분이 왜 태어나셨는지,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앞서 성탄에 태어나신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했는지에 대해 말입니다.

이 날은 백 번 죽어도 마땅한 죄인된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입니다.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을 감당하기 위해 성육신 하신 날입니다. 못난 나를 위해 고난의 길을 대신 걷기로 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첫발을 내디딘 날입니다. 이날은 여러분과 저를 위한 날입니다. 그저 선물 때문에 좋은 날이 아니라, 단지 아름다운 성탄 츄리와 훌륭한 아이들의 성극때문에 기분 좋은 날이 아니라, 죄라는 굴레를 끊어주시기 위해 오신 주님을 생각하기에 기쁜 날이 되야 합니다. 몇 명 모이지 않을 성탄절 아침 예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모임을 갖기로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딱 열명이 모였습니다. 그래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 드렸습니다. 적은 인원이었지만, 모인 모든 성도가 4부로 나누어 하나님께 특송을 올려 드렸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분주했던 성탄 분위기를 잠시 뒤로 한채, 두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고 이날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 보았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성령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배 후에는 서로 진한 허그(hug)로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이름하여 미역국 수제비! 여느때보다 ‘진국’이었습니다.

헌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께 죄송하지만, 성탄 예배를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이곳 방식대로 예배를 드리지 말고 가족과 함께 보내라고 할까. 사실 성탄 주일 예배만으로도 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답니다. 하지만 결론은 몇명이 모이든 매년 성탄절 예배(12/25)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이번 성탄절 예배 직후에 하게 되었지요. 하나님이 너무나 우리 예배를 기뻐 받으셨다는 마음이 강했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난다는 사실, 이 감격을 늘 간직하고 싶습니다. 이런 감격을 가지고 이 글을 읽는 모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해피 뉴 이어~~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답니다. 아주 많이 말입니다. ^^

기억에 남는 세례식이 되길…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기억에 남는 세례식이 되길…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지난주에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인데다가 어릴 적에 세례를 받아서 그런지, 세례식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목사가 된 후, 세례식을 베풀 때마다 기억이 남는 은혜의 세례식이 되길 기도하면서 준비합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결혼 예식이나 다름이 없는 세례식이니 말입니다.

<세례> 올해는 두 분이 받았습니다. 이두영 성도와 최선이 성도! 먼저 두 분과 문답을 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증거하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두 손에 듬뿍 물을 담아 세례를 베풀었지요. 머리를 흠뻑 적시는 물줄기를 통해 예수님의 보혈의 의미를 다시금 새겼으리라 믿습니다.

<성찬식> 세례를 마친 후 곧이어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제가 6년 전 목사 안수 받을 때, 안수 보좌를 해 주셨던 한사랑교회 임영훈 목사님께서 제게 목사안수 축하 선물로 조그만 성찬기를 선물로 주셨었지요. 그 성찬기를 이 날 처음으로 사용하였답니다. 세례를 받으면서 생각한 주님의 흘리신 보혈의 의미를 간직하며, 성찬에 참여하는 두 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기도문낭독> 그 다음으로 각자 기도문을 낭독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된 것에 대한 감사와 결심이 담긴 글이었습니다. 최선이 성도는 목이 아파 남편이 대독하였습니다. 이두영 성도 또한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글을 읽으며 목이 메여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축하의 글> 다음은 특별한 순서였습니다. 한국에서 축전을 보내왔습니다. 멀리 한국에 있는 선이 성도의 부모님이 보낸 축하의 글을 제가 읽었습니다. 선이 성도는 전혀 몰랐던 순서였지요. 사랑하는 부모님의 글에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리고 세린이가 태어났을 때, 출생 감사예배를 드려 주었던 여의도 침례교회 교구 목사님께서 보낸 축전도 읽어 드렸습니다.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두영 성도 순서였습니다. 이곳에서 박사과정을 하기에 아내와 떨어져 사는 성도입니다. 오랫동안 못 본 아내가 사랑이 가득 담긴 축하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두영 성도에게 또 하나의 큰 선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축하의 음악> 다음은 축하의 음악이 기다렸습니다. 우리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지현이가 귀한 바이올린 연주를 준비했습니다. 여기엔 세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먼저는 두 분의 세례를 축하하는 의미가 있었고, 또한 두 분에게 세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의미가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지현이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선율에 하나님도 감동이 되신 모양이었습니다.

<사랑의 선물> 다음은 선물 증정 시간이었습니다. 각 속장들이 속도원들과 함께 준비한 귀한 선물을 증정하였습니다. 무슨 선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선물을 주고받는 모습만 보아도 제가 다 흐뭇해졌습니다. 선물은 받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옆에서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녹여주는 모양입니다.

<감격의 포옹> 이제 마지막으로 모든 성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조용한 피아노 소리에 맞춰, 모든 성도들이 앞으로 나와 두 분을 꼭 안아 주면서 축하해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자기 일인 양 눈시울을 적시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정말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상은 제가 어떻게 이들을 기쁘게 할까 하고 준비한 순서였습니다. 물론 이번 세례식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깜짝 순서를 준비해서가 아닙니다. 이런 순서들 이면에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준비한 순서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세례라는 의식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두 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깨닫는 것이어야 합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최선이 성도와 이두영 성도를 위해 흘리시기를 마다하지 않은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져야만 합니다. 영혼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도 감수하신 주님의 눈물이 이들에게 머물러야만 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리하셨지만 앞으로도 이들의 삶을 전적으로(entirely) 책임져 주실 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례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하나됨의 의미입니다. 두 분의 세례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두 분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2003년 12월 21일)

<故김창규권사님을 주님 품으로 보내면서...>

이곳에 처음 이사 오던 날 저희 가족을 함박웃음으로 받아 주시던 권사님.

유학생들에게 사랑으로 복음을 심어주어, 그들을 세상 속으로 파송하는
일이 우리교회 사명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던 권사님.

말씀 끝에 항상 애기처럼 환하게 웃으시던 권사님.

어떤 일보다도 주님께 받았던 은혜를 자랑하시던 권사님.

입원하신 후에도 주일 예배 시간에 맞춰 병실을 돌며 찬송하고 기도하시던 권사님.

병실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복음송을 부리며 ‘이렇게 좋은 찬송을 왜 그동안 많이 못 불렀을까!’하시던 권사님.

사택 지하에 물이 찼다는 소식에 안타까워 하셨다는 권사님

이번 성탄절에는 교회에 나와 함께 예배드릴 수 있을 것이라 말하며 좋아하셨던 권사님.

며칠 전 심방 갔을 때, 목사가 왔다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신 후 저를 한참 바라보셨던 권사님.

…… 이젠 아픔과 고통을 뒤로한 채, 사랑의 아버지 품에 안겨있을 권사님.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이운섭 권사님과 긴 통화를 하셨다고 합니다. 눈만 감으면 십자가가 보였답니다.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이 떨어졌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답니다. “내가 너의 모든 죄를 용서했노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권사님은 퇴원해서 이것을 모든 성도들에게 간증하고 싶다고 하셨답니다. 하지만….. 그런 환상을 보여주시고, 그런 음성을 보여주신 이유는 아마도…. 권사님으로 하여금 세상 떠날 준비를 시키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평생 주님을 위해 헌신하셨던 권사님. 분명 고쳐주실 줄 믿었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한다고 하셨던 권사님. 이제 권사님은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는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기셨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간절히 갈망하는 아버지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게 되었습니다.

권사님께서 사명 다함에 있어, 여기까지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의 분량이었기에 하나님이 그 영혼을 손수 모시고 간 것입니다. 그냥 죽는 것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라면, 마냥 슬프고 아프기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잠시 권사님을 못 보는 것뿐입니다. 이제 우리도 그 뒤를 따를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지켜 권사님을 뒤 따라 갈 날이 곧 올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승리에 도취되어 기쁨으로 권사님을,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 주신 예수님을, 바로 그 하나님을 만나 뵐 것입니다.

이제 김순희 집사님과 두 자녀 정아와 재훈을 위해 기도합시다. 믿음이 있기에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인지라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제 임종 예배를 가족들과 드리면서 느낀 것은, 권사님께서 믿음의 유산을 유족들에게 잘 심어주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권사님의 마지막 가는 길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믿음만이 우릴 다시 만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기에, 믿음을 남겨두고 가신 권사님의 흔적이 너무나 소중히 보였습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우리 모두 죽음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믿음 없이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겠습니까? 아니면 믿음을 지켜 아름다운 부활을 약속 받으시겠습니까? 믿는 자에게는 죽음이란 없습니다. 권사님 또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위해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신 것뿐입니다.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품으로 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이유랍니다. 죄 많고 의심 많은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 이제 권사님의 영혼을 주님께 맡깁니다. 권사님 이제 평안히 쉬십시오. 우리도 신앙을 지켜 그 뒤를 따를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4:7-8) (2003년 12월 14일)

My proofreader – Kingsley 선교사님 — 로체스터 흙내음소리

이제 이번 학기도 거의 끝나갑니다. 그래서 지난 한 주는 기말 페이퍼를 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제출하기 전에 교정을 보아줄 사람(proofreader)을 구해야 했습니다. 캐나다에 있을 때는 학교가 가까웠기에 proofreader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다, 미국본교회의 Kingsley 선교사님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교회 사무실로 들어오는 할머니 한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Kingsley 선교사님이었습니다. 올해 76세인 선교사님은 새로 목회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인사를 하러 오신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것은 한국말을 너무 잘 하신다는 것이었지요. 알고 보니 이 분은 1992년까지 한국에서 선교사로 사역을 하신 분이었습니다.

1954년 10월, 전후 몸살을 앓고 있던 한국에 복음을 전하고자 미국을 떠나셨습니다. 한해 전부터 Yale 대학에서 한국어 수업을 들으며 기도로 준비해 오시다가, 드디어 의료선교사역자(간호사)로 한국에 첫 발을 디디셨습니다. 1955년부터 3년간 강릉에서 Public health Center에서 봉사하시다, 서울로 사역지를 옮긴 후 연세간호학원을 거쳐 인천기독 간호학원(정확한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셨음) 초창기 멤버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 후 이 학원이 1973년 안산전문대학으로 인가를 받게 되었고, 그곳에서 3년간 교육감으로 강의를 하셨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말로 말입니다. 1976년에 첫 졸업생들을 배출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답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연세 세브란스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시어 Home care와 Cancer Center에서 1992년까지 헌신하시다가 65세에 은퇴를 하셨다고 합니다.

한국 선교사로 온 삶을 헌신하신 지난 얘기들을 듣자니, 진한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결혼도 마다하고(지금도 미혼이랍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삶을 바쳐 주님을 위해, 한국의 영혼들을 위해 소리 없이 피와 땀을 흘리신 선교사님 얼굴에는 지난날의 기억들이 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지금도 선교사님은 미국본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을 맡아서 열심히 헌신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같은 건물에서 예배드리는 한국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애쓰며 배려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십니다.

어제 선교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페이퍼 교정을 다했으니 교회에서 만나자고 말입니다. 꼼꼼하게 문법과 스펠링을 체크해 주셨고, 문맥에 맞지 않는 말들은 “이건 말이 안돼요”라고 한국말로 설명해 주면서, 손수 고쳐 주셨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이 교정을 모두 마친 후 선교사님과 나눈 대화입니다. 헤어지면서 제가 감사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감히 한국인을 대표해서 선교사님의 사랑과 헌신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입니다. 그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릴 수 있음을 다시금 감사 드렸습니다.

‘헌신’이라는 말! ‘몸을 바친다’는 의미를 선교사님의 삶을 통해 발견해 봅니다. 결혼도 마다해 가며, 단란한 가정을 꾸미는 것도 포기해 가며, 이역만리의 땅에서 자신의 청춘을 바쳐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만을 전하며 살아온 선교사님. 선교사님의 삶을 주장했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기에, 이러한 헌신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뜨겁게 주님을 사랑했기에, 사랑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셨기에, 그 사랑을 어떻게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셨기에, 그런 헌신의 삶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받은 사랑을 이제 우리도 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너무나 부족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부족한 그대로 시작합시다. 부족하기에 주님께서 채우실 것이고, 미약하기에 주님께서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채우심과 힘주심을 믿고, 이제 헌신의 첫 발을 내디딥시다. 내 모습 그대로,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헌신의 씨앗을 뿌립시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13:4)

물난리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물난리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지난 금요일은 청장년 속회를 일찍 모이기로 했습니다. 추수감사절 연휴이므로, 일찍 모여 식사하고 예배드린 후, 친교 시간을 갖기로 한 것입니다. 식사후 아내는 장을 봐서 매운탕 준비를 하기로 했고, 저는 기말 페이퍼를 이날 모두 끝내려 했습니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예배를 드리려 했던 것입니다.

식사후 페이퍼를 마무리하려고 지하 서재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습니다. 여느 때보다 맨발에 느껴지는 감촉이 차갑고 시려웠습니다.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물이 스며나는 것이었습니다. 다용도실 문을 여니 온통 물바다였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얼른 물을 퍼내 보지만, 좀처럼 물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어제 밤부터 계속해서 내린 비때문인지…. 지난번에 이보다 더한 폭우가 올 때도 문제없었는데…. 순환펌프의 전원이 나간 것도 아닌데…. 원인을 모르니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입으로는 ‘주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마음은 급해지기만 했습니다. 벌써 물은 다용도실을 넘어 서재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물을 퍼내면서, 김재길 집사님에게, 이민기 권사님에게, 이운섭 권사님에게, 김종후 집사님에게 전화를 했지만, 추측만 할뿐 근본 원인을 찾아내진 못했습니다. 일단 이민기 권사님 말대로 plumber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곤 한참 물을 퍼내는데 김재길 집사님이 오셨습니다. 김미정 집사님이 직장에 나갔기에, 아이들을 아버님에게 맡기고 오신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최악을 사태(?)를 대비하여, 모든 장비를 갖추고 오셨습니다.

함께 물을 퍼내면서 살펴보니, 지하에 차는 물을 밖으로 퍼내는 순환 펌프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아냈습니다. 얼마 후에 김종후 집사님이 가세했습니다. 셋이서 근 세시간을 물을 퍼내고, 물을 흡수해내는 관 주변에 쌓인 진흙을 긁어내었습니다. 그래도 펌프가 작동하질 않았습니다. 얼마후 김종후 집사님이 땅 속으로 뻗어있는 파이프를 분리하여, 긴 막대기로 후벼대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원을 연결하였습니다. 위잉~~ 펌프가 돌아가며 진흙덩어리와 물이 밖으로 터져 나와 모두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기분은 ‘짱’이었습니다. 원인을 알아내어 문제를 해결했기에, 그까짓 흙탕물 뒤집어쓰는 것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변 진흙과 다용도실 가장자리에 쌓인 토사를 제거하고 바닥을 물로 씻어내니, 벌써 5시 예배 시간이 되었습니다.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에, 두 분 집사님의 수고가 고맙기도 했지만 많이 미안했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 식사를 하면서 아내와 다짐을 했습니다. ‘우리 어떤 상황이 와도 감사하자’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일이 터진 것입니다. 처음엔 감사가 되지 않았지만, 물을 퍼내면서 이내 감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제가 집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긴 것이 감사요, 서재가 잠기기 전에 발견되어 감사요, 두 분 집사님의 헌신이 있었기에 감사요, 원인을 찾아내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에 감사였지요. 하지만 김종후 집사님 말대로 서재 카펫이 마르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고, 곰팡이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며, 진흙 때문에 펌프가 다시 막힐 수도 있기에 늘 지하(?)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늘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겐 감사해야 할 제목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번 물난리로 조금 불편해 진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복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자”라는 결단을 하자마자 닥친 이번 물난리가 오히려 저희 가정에 감사거리를 더해 준 것 같아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수고한 김재길 집사님과 김종후 집사님 그리고 진흙 나르는 일을 도운 아들 찬수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 (2003년 11월 30일)

지금은 힘이 들어도….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지금부터 15개월 전,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 도착을 했습니다. 33년 몸담아 살았던 조국을 떠나, 정들었던 신외교회에서의 삶을 뒤로한 채, 유학을 온 것입니다. 조국을 떠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외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공부를 더 하겠다는 맘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유학을 와서야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부 계획이나, 재정적인 문제, 제 목회 진로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공부를 마친 뒤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공부를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 남아 목회를 할 것인지? 한 7-8년 정도 후에 학위를 따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이곳에 무작정 남아 있을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이민 온 사람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아이들의 삶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것은 ‘언어’ 때문입니다.

사실 유학을 결정한 후 아이들에게 특히 찬수에게, 정들었던 신외리와 그렇게 좋아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나야만 한다는 말을 꺼내기가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찬수는 맘이 여려서 제 말을 거절을 못합니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냥 알았다고 하고는 이내 눈물을 글썽입니다. 앞으론 교회 마당에서 축구도 할 수 없고, 친한 친구 예찬이를 볼 수가 없으며, 언제나 자기편이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못 본다는 사실이 찬수에게 많은 어려움으로 다가왔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캐나다에서의 1년! 어렵사리 적응하게 된 캐나다를 또 다시 뒤로해야 할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곳 로체스터에서 목회를 하게 된 것이지요. 이 말을 전해들은 찬수와 지혜! 이때도 찬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정이 들기 시작했는데…. 친구도 제법 생겼는데….. 아빠가 하는 일이기에 이번에도 찬수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 맘을 회유해 보기 위해, ‘아빠만 가서 설교하고 자기들은 이곳에 있으면 안되겠냐’고 몇 차례 물어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포기하고 그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한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했답니다.

어제 캐나다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찬수가 뭔가를 외우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과학 시험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유인물을 세 장 나누어 줬는데, 그것을 모두 외워야 했습니다. 문제들 중에는 제게도 어려운 문제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찬수가 시험지를 들고 내려왔습니다. 그리곤 다 외웠다고, 문제를 내 보라고 하더군요. 그랬더니…. 문제를 듣고 답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답을 그냥 순서대로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문제의 순서를 바꿔 냈더니, 그것도 모른 채 그저 순서대로 외운 대로 답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두어 시간 동안에 걸쳐 결국엔 외우긴 했지만, 힘들어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영어 문장을 읽고 해석하고 답을 외어 쓰는 일은 아직 찬수에게 버겁게만 다가오는 듯합니다. 물론 시간이 가면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면, 저보다 영어를 더 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압니다. 하지만 그 동안 아이들이 겪어야 되는 당장의 ‘아픔들’을 바라볼 때, 부모는 안쓰러울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그만큼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일 겁니다. 진정 사랑하기에, 때로 부모는 자식이 스스로 문제를 헤쳐 나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랍니다.

유치하게 들리시나요? 하지만 이 원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적용됩니다.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땀과 눈물과 헌신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왜 하나님은 내 뜻대로 놀고먹고 즐기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나요? 그것은 예수님이 준비하시는 더 좋은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더 좋은 처소를 만들고 계십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릴 훈련시키길 원하시는 것이고, 우리 또한 아버지의 뜻을 알기에 나를 날마다 죽이고 생명 다해 기도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아버지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찬수와 지혜도 깨달아 갈 것입니다. 지금은 힘이 든다 할지라도, 땀과 눈물의 대가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엇보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얻어지는 귀한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

단풍 끝물에 나눈 귀한 시간, 귀한 시 한편!

로체스터 지역에서 유명한 것 중 하나는 가을 단풍입니다. 특히 인근 레취워스(Letchworth)의 단풍은 한 폭의 그림 같이 단아하고 화려하기로 유명합니다. 우리 교인들도 모두 한번쯤은 그곳에 다녀온 경험이 있답니다. 이곳에서 한시간 정도 거리에 있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누구나 다녀 올 수 있는 곳입니다.

매주 두 번씩 캐나다로 학교를 오가야 하는 저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습니다. 공부와 목회를 겸하여 하고 있는 저로서는, 정신없이 한 주 한 주를 보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곳까지 왔는데, 가을 단풍을 안 볼 수는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날을 잡고 그곳에 가려고 애를 썼으나, 좀처럼 시간이 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올 가을을 넘길 수는 없는 법! 11월 첫주에 아내를 옆에 태우고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한 공원을 찾았습니다. 이름하여 엘리슨 파크! 로체스터 내에 있는 공원인데, 규모도 크고 나무도 많고 단풍도 제법 드는 곳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단풍은 낙엽이 되어 많이 떨어졌고, 가는 날이 장날인지라 이곳 저곳에서 낙엽 담는 기계 소리가 윙윙거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의자들도 모두 치워 버려, 앉아 쉴 곳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온 발걸음이라 그런지 아내도 저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건너편에 마침 아직 남아 있는 의자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함께 QT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소보다 많은 찬양을 불렀고, 말씀과 서로의 고민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비록 ‘낙엽 감상’에는 실패했지만, 아내와의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음은 욥기서를 묵상하는 중 제 아내가 지은 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 있기에, 저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곳에 싣게 되었습니다. 백 마디의 말보다….

주님만을 향합니다.
백 마디의 말 보단,
주님을 위해 한 방울의 피를 흘리게 하소서.
백 마디의 비판 보단,
주님을 위해 한 방울의 땀을 흘리게 하소서.
백 마디의 대안 보단,
주님을 위해 한 가지의 수고를 심게 하소서.
백 마디의 내세움 보단,
주님을 위해 한 시간의 기도가 있게 하소서.
백 마디의 외침 보단,
주님을 위해 한 가지의 나누어지지 않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교사 한명에, 학생 두명!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교사 한명에, 학생 두명!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제가 이곳에 온 지도 넉달이 지났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목회 한다고 하지만, 늘 한 쪽 맘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식구들이 그리 많은 것이 아니기에, 늘 교사가 부족해 왔습니다. 특히 2세나 1.5세 자녀들을 교육할 자원이 없었습니다. 주일 학교는 본교회 즉 미국 교회와 연합으로 운영되기에 그런 대로 나은 편이지만, 중고등부를 위한 예배나 프로그램은 전무한 형편입니다. 학생도 많은 것은 아닙니다. 정기적으로 나올 수 있는 아이들은 다영이와 우현이 두 명뿐입니다. 하지만 교사가 없다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아이들을 방치해 온 것입니다. 특히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아이들을 교육하려면, 교사 또한 영어에 문제가 없어야만 했기에, 학생회 예배 문제는 늘 고민으로만 다가왔지 구체적으로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김동진 집사님과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학생회 예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복음을 심어줘야 할 아이들이 지금 그대로 방치되어, 복음이 뭔지 예수님이 누군 지도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이 너무 마음 아프다는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김동진 집사님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사실 집사님은 그 동안 예배전 찬양 인도를 맡아 왔었습니다. 하지만 찬양 인도를 해 오면서도, 그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교사를 해도 좋을 텐데…. 하지만 목사님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겠고….나에게 그런 자질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런 생각을 그 동안 죽 해왔답니다.

교사에 대한 자질이란 것이 분명히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자질 중 으뜸은 바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고, 복음을 전하면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준비만 되어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물론 김집사님이 전에 아이들을 정식으로 가르쳐 본 적은 없습니다. 교회에 아이들을 위한 교제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중고등부를 위한 기가 막힌 프로그램이 확보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도 단 두 명뿐입니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아이들이 따라 주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사도 단 한 명이기에 중간에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작합니다. 단지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만 가지고 시작합니다.

오늘은 학생부 예배가 시작된 지 석주 째가 되는 주일입니다. 그 동안 김집사님이 해오던 찬양 인도는 제가 맡기로 했고, 얼마 안되는 성가대의 빈자리는 정문식 형제가 함께 하기로 했으며, 성가 복사는 김종후 집사님이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대예배를 드리지 못함으로 설교를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침에 조금 일찍 나와, 그날 설교 말씀을 저와 미리 나누기로 했습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는 듯 합니다. 하지만 늘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사역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보며 그리고 이를 위해 수고하는 교사를 바라보며 항상 격려하고 기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교사 한 명에, 학생 두 명! 자신들의 교사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다영이와 우현이, 그런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김집사님. 성경 공부를 통해 많은 것을 질문하는 아이들, 이런 학생들의 반응에 더 힘을 얻는 김선생님. 비록 두 명으로 시작한 학생회 모임이지만, 이 모임 속에 아름다운 결실들이 벌써 영글어 가는 듯 합니다. 이제 복음을 안고 뿌리기 시작한 사랑의 씨앗이, 우리 모두의 지속적인 기도와 함께, 풍성하고 아름다운 결실로 다가 올 것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Regarding Henry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Regarding Henry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지난 금요일은 할로윈데이였습니다. 저녁에 동네 아이들이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침 이날이 금요일인지라, 약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사랑속(청장년) 속회가 사택에서 있었기 때문이지요. 계속 초인종이 울릴 것이기에, 예배를 드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날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태윤 형제가 자기네 집에서 드리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피자 여섯 판 시켜놓을 테니, 와서 함께 예배 드리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모두 태윤 형제네로 모이기로 했습니다.

이날은 특별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비디오 감상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헤리슨 포드 주연의 “Regarding Henry”라는 영화였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영화였습니다. 온갖 부정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많은 케이스들을 승리로 이끈 유능한 변호사 헨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자기가 가장 아끼는 피아노에 실수로 물을 쏟은 딸에게 엄한 벌을 주었고(하루동안 방에 가둠), 자기보다 낮은 사람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으며(건물 경비의 인사는 받지도 않음), 딸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부모와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명문 사립학교에 보내기로 함), 공공연하게 자기 아내와 애정 표현을 하는 것을 꺼려했으며(손잡고 다니기도 꺼려함), 다른 여자와 부정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 자기멋대로만 살아온 자였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시련이 다가옵니다. 강도를 만나 총에 맞게 됩니다. 그리곤 지난 기억들을 모두 잊게 됩니다. 더불어 걸을 수도, 말할 수도, 읽을 수도 없게 됩니다. 그러나 어렵사리 건강을 찾아가고, 말하고 읽을 수 있게 되며, 가족과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 둘씩 찾아갑니다. 특히 식탁에서 물을 쏟는 딸에게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경비와도 따뜻한 포옹을 하며, 그렇게 싫어하던 강아지를 딸을 위해 사 주었고, 사람 많은 곳에서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키스를 하는 등 그의 삶은 180도로 바뀌어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시작됩니다. 자신이 어떠한 변호사였는지를 깨달으면서 괴로워하기 시작합니다. 거짓 방법을 동원해 많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심어온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곤 그 사람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는 등 자신의 본 모습을 찾으려 애를 씁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사랑하는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것을 우연찮게 알게 됩니다. 오랜만에 참된 행복을 찾은 아내는 “Everything was different”라고 울부짖지만, 헨리는 부정했던 아내를 뒤로 한 채 집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헨리는 자신에게도 역시 내연의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곤 상처받고 울고 있을 아내를 떠올립니다. 단숨에 다시 아내에게로 달려갑니다. 그리곤 울고 있던 아내를 껴 안으면서 말합니다. “You are right. Everything was different!” “I don’t like who I was. I can’t be a lawyer any more!” 결국 평생을 쌓아온 부와 명예와 직장을 포기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딸이 입학한 명문 사립학교로 옮겨집니다. 아마도 전교생이 모여 교장 선생의 훈시를 듣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Competition!” “경쟁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긴강감이 도는 훈시 도중, 강당 뒤쪽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그리곤 헨리와 아내가 들어옵니다. 헨리는 교장 앞에 서서 “11년동안 딸아이를 잃어 왔습니다. 더 이상 딸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요? 헨리는 기억을 잃을 때, 욕심을 함께 잃습니다. 그랬기에, 자신의 삶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기억을 찾게 되지만 찬란했던(?) 과거를 버리기로 결심할 수 있게 됩니다. 욕심과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그는 허상을 버리고, 참된 행복을 찾게 된 것입니다. 욕심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지만, 끝없는 욕심이 그 인간을 잡아먹게 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맘속에 자리 잡고, 결국 내 인생 전체를 망쳐 가는 ‘욕심’을 쏟아 내어 버려야만 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무엇인가로 우리 삶을 채워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유일한 소망인 예수님이랍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거기에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거기에 안식이 있답니다. (2003년 1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