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같지 아니하면….. 이런 기도만이

며칠 전 ‘윤주카페'(우리 가족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동생이 올린 짤막한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곤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가 주일 저녁에 대림성모병원에 입원을 하셨다는 글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곳에 다녀가신 뒤, 쉬지도 못하시고 바로 필리핀으로 가셔야만 했었습니다. 그곳에 새로 건축한 교회 봉헌예배와 목회자 세미나 인도를 하셔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내년이면 환갑이신 지라 건강을 돌보며 사역을 하셔야 할텐데….

한국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니와 몇 번 통화를 시도했지만, 통화상태가 불량하여 제대로 대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몇 시간 뒤에 아버지와 통화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전날 어머니 곁에서 병간호를 하신 모양이었습니다. 아버지 말씀인즉, 피로해서 생긴 병이라고 하더군요. 가슴과 복부에 혹 같은 것이 보이는데, 검사에 들어갔으니 며칠 뒤에나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더군요.

순간 초조함과 감사함이 동시에 밀려 왔습니다. 저를 캐나다로 유학을 보내시면서, 공항에서 저를 껴안으시고 “진국아, 잘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며 엉엉 우시던 어머니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이곳에 오셔서 함께 기도하던 중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며 또 우시던 어머니가 생각이 났습니다.

요즘 찬수와 지혜가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QT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지요. 한번은 제가 찬수 침대에서 잔 적이 있는데, 아침이 눈을 떠보니 찬수가 책상에서 어린이 QT책을 읽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때로는 바쁘다는 이유로 하지 못하는 QT를 어린 찬수와 지혜는 늘 하는 것이 정말 대견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것은 자기 책상들 앞에 기도해 드려야 할 분들의 이름을 적고 매일 중보기도하는 일입니다. 거기에는 ‘김창규권사님/김순희집사님’의 이름과 ‘윤영지 할머니’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할머니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할머니 몸 속에 정체불명(?)의 혹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내가 말하기를, 할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 아이와 아내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찬수가 먼저 기도를 했는데, 엉엉 울면서 기도를 하더랍니다. “하나님, 할머니 아프면 안돼요. 암이면 안돼요. 그러면 할머니 보고 싶어도 볼 수도 없고…. 얼른 낫게 해 주세요.” 어떻게 그렇게 눈물이 나올 수 있는지, 제 아내도 놀랐답니다.

물론 저도 매일 같이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곤 찬수가 울면서 진심으로 기도 드린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찬수는 아직 어린 아이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갖기 힘든, 순순한 맘을 가지고 기도를 올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저 사랑하는 맘으로, 그저 안타까운 맘으로 말입니다. 이것저것 다 계산하며 살아가는, 앞뒤를 잰 후에 희생하고 순종하는, 우리의 이기적인 뜻으로만 기도하기 쉬운 우리 어른들의 모습을 생각할 때, 정말 우리가 회복해야 할 맘은 바로 “어린아이 같은 맘”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게 매달려 보렵니다. 모든 문제 앞에서 어린아이 같이 그렇게 매달려 보렵니다. 물론 성숙한 기도가 필요하겠지만, 때론 너무 힘이 들면, 그저 어린 아이처럼 매달려 보렵니다. 그럼 하늘 아버지께서도 서둘러 제게로 달려오실 것이라는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어제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다른 곳에는 이상이 없다는 판명을 받았답니다. 할렐루야! 하지만 신장에 조그만 이물질이 발견되어 지금 큰 병원으로 정밀검사를 받으러 가신다고 합니다. 우리 식구로 끝까지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찬수의 기도처럼 어린아이 같은 맘으로 더 기도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어린아이 같은 맘으로 말입니다. (2003년 10월 26일)

모두들 그만둬요!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모두들 그만둬요!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스위스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어느 날 한 관광 버스가 손님을 싣고 관광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관광객들은 모두가 지쳐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고개를 막 넘어가려던 순간, 운전사는 브레이크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채로 내리막길에 접어든 버스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당황한 운전사의 떨리는 눈동자에는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에 펼쳐진 다섯 개의 급커브길이 보였습니다.

버스에 점점 가속이 붙자 눈을 뜬 관광객들은 뭔가 이상이 생긴 것을 눈치채고는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고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운전사는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커브 길을 한 개 두 개 잘 운전해 나갔습니다. 마침내 그는 마지막 커브 길을 통과하였고, 모든 관광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습니다. 이젠 마을길을 지나 반대편 언덕으로 올라가 차가 자연히 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저 멀리 아이들이 길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란 운전사는 경적을 울려 피하라고 경고를 하였습니다. 모든 어린이들이 그 소리를 듣고 피했지만, 아직 한 아이가 그 자리에서 우물거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운전사는 관광객을 살려야 할지 저 어린아이를 살려야 할지 갈등하다가 결국 그 어린아이를 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버스는 예상대로 건너편 언덕에서 멈춰 섰습니다.

운전사는 차가 서자마자 그 아이에게로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둘러서 있던 사람들이 “살인자! 살인자!” 하며 운전사에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운전사는 아무 말없이 아이의 품에 고개를 묻고는 아이를 안은 채 흐느끼며 옆의 오솔길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쫓아가면서까지 “살인자! 살인자!” 하며 야유를 하였습니다. 그 순간 어느 젊은이가 외쳤습니다. “모두들 그만둬요. 소리지르지 말아요. 자 아이는 바로 운전사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운전사는 승객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기 아들을 자기 차로 짓밟고 갈 수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승객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로 인해 운전사는 더 이상 아들의 웃는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승객들은 운전사에게 온갖 욕을 퍼부었습니다.

영원히 죽음 가운데서 고통 당할 여러분과 저를 살리기 위해, 아무 죄도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죽게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후회하시지 않으십니다. 여러분과 저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이지요!

어느새 2003년도 석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우리 모두 잊고 살아가진 않는지요? 우리가 울부짖을 때 들어주시는 분이 있음을, 당신의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눈물겨운 사랑이 있음을, 그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야 함이 마땅한 것임을 말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 살기엔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이제 하나 둘씩 회복하여 따뜻한 겨울을 맞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몸도 마음도 따뜻한 겨울을 말입니다. (2003년 10월 12일)

<어처구니없는 사고 속에서도....>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는 몇몇 분들에게 매주 주보를 발송하고 있습니다. 늘 기도하는 맘으로 말입니다. 이 작업을 이운섭 권사님이 하고 계십니다. 주일날 예배 후에 주보 20여장을 가지고 가셔서, 주초에 주보를 발송하십니다. 하루라도 빨리 보내고자 하는 마음에, 주초에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주보 발송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지난주에는 권사님 내외분이 out of town을 하셔서 김희연 사모가 그 일을 대신 하게 되었습니다. ‘다녀오셔서 해도 늦지 않을텐데’ 라고 생각했었는데, 주보를 기다리는 분들이 있기에 최대한 빨리 발송을 해야한다고 하시더군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주 주보를 받지 못하신 권사님에게도 주보를 얼른 가져다 드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사님이 하시는 일 중 또 하나가, 오는 손님들에게 주보를 건네주며 전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Lee’s-식품점을 운영하심).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주보를 갖다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화요일 새벽 6시, 여느때보다 조금 서둘렀습니다. 그날은 학교(캐나다 맥매스터)에서 시험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학교로 출발하기 전에, Lee’s에 들러 문고리에 주보 뭉치를 매달아 놓으려 했기 때문이었지요. 아침마다 운동을 하시고 일찍 가게로 나가시는 이형주 집사님이 혹시나 계실까 하는 맘으로 갔지만, 역시나 아직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보를 담은 봉지를 문고리에 매달아 놓고, 흐뭇한 맘으로 차에 올라탄 후 후진을 했습니다.

“우지직!” 그때 갑자기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얼른 차에서 내렸습니다. 아뿔싸! 이게 웬일입니까! 깜깜했는지라 뒤에 있던 조명용 기둥을 보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뒷 범퍼가 보기 흉하게 움푹 패어졌습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얼마나 들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맘으론 힘들었지만, 입술을 열어 계속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리며 운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자꾸 흉하게 찌그러진 뒷 범퍼가 떠올랐습니다.

아내와 통화를 했습니다. 아내도 놀랐습니다. 아마 많이 속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도 아내 나름대로, 저 또한 저 나름대로 감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운 것은 이 사건으로 하나님께 많은 것을 회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고들의 원인이 ‘죄의 댓가’ 라고만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생각지 못했던 많은 잘못들이 떠올랐습니다. 학교 채플에서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서 제 맘에 잊고 살았던 ‘감사거리’를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를 살면서 감사해야할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데도 감사하지 못한 제 모습이 떠올라 또다시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사건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마음만 쓰릴 뿐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저와 제 아내의 마음속에 회복되어진 것이 많음을 발견합니다. 특히 한시라도 주님의 돌보심이 없다면 우린 일분 일초도 살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우리에게 오늘 하루도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 건강을 허락하신 하나님,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비록 떨어져 산다 할지라도), 서로 힘이 되어주는 성도들, 운전대를 늘 잡아주시는 주님, 조그만 교회지만 선교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심, 무엇보다 힘들 때 내 음성을 들어주시고 함께 아파해 주시고 내 눈물을 닦아주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 이젠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늘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 나머지, 감사하지 못한 아니 감사하지 않았던 것까지도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님 사랑해요. 정말로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2003년 10월 12일)

<대단합니다! 처녀 출전 족구 대회 4위>

지난 토요일은 한인회 주최로 족구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여섯 명이 정원인데, 우리 교회 성도들은 운동과 친한 분들이 별로 없어서 선수 구성에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가까스로 정원이 채워졌습니다. 구성 인원을 보면, 족구가 뭔지 모르는 분 2명, 알긴 알아도 한번도 족구를 해본 적이 없는 분 2명, 해보긴 했지만 팀에 도움이 안되는 사람 한명(이진국목사)! 어떻게 보면, 말도 안되는 팀 구성이었습니다. 그래도 왕년에 축구 선수였던 옥영곤 집사님이 계셨기에, 거기에 우리의 모든 희망을 걸기로 했습니다.

토요일 결전의 날이 다가 왔습니다. 밤새 비가 오긴 했지만, 한인회에서 강행하기로 해서, 우리도 일찌감치 준비를 하고 나섰습니다. 사실 우리는 족구 자체보다는 여러 성도들이 가족들과 함께 공원에서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을 더 기쁘게 여기는 듯 했습니다. 오랜만에 나들이를 하게 되어 아이들도 기뻐했고, 최선이 성도가 맛있게 재어온 고기로 점심을 나눌 수 있어서 또한 모두 즐거워했습니다.

점심 식사 후,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팀 구성은 변변치 않았지만, 우리 역시 우승을 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경기 전에 타교회의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와 막상막하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지요. 게다가 우리의 응원부대 또한 ‘짱’이었습니다. 김 사모를 위시한 여성도들의 열심은 하늘을 찌르는 듯 했습니다. 든든한 응원을 뒤에 업고 드디어 경기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제일 강한 팀 중에 하나인 팬필드 교회와 첫 판을 맞게 되었습니다. 경기는 거의 비등하게 나갔습니다. 하지만 간발의 차(?)로 아쉬운 패배고 말았습니다.

곧 이어 두 번째 경기를 하였습니다. 역시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장로교회와 맞붙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응원도 여전히 우리를 밀어 주었지요.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약간 휴식을 취한 뒤, 이번엔 벧엘교회와 맞붙었습니다. 이젠 응원단도 또 지려니 생각했는지, 우리가 포인트를 올려도 반응이 시큰둥해졌습니다. 더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실수를 하지 않는 벧엘 앞에 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성적은 3패!

옥집사님이 선수들에게 “그래도 1승은 해야지 않겠느냐”고 격려를 하셨습니다. 마지막 상대는 심우회, 노련한 노장팀이었습니다. 이대로 침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열심을 내었지요. 이런 열심히 안타까워 보였는지 응원단도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열심을 내었습니다. 몸을 던졌습니다. 친선 경기이긴 하지만, 1승에 목말라하는 우리 선수들은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귀중한 1승을 따냈습니다. 처녀 출전한, 그리고 족구가 뭔지도 몰랐던 우리들이, 족구를 해 봤어도 도움이 안 되었던 우리들이 드디어 1승을 따냈습니다. 첫 출전에 4강, 4위를 한 것이었습니다. 총 몇 팀이 참석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묻지 마십시오!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1승한 것이 마냥 기뻤습니다. 응원단도 파도타기로 승리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사실 1등을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오늘 우리 교회가 얻은 소득은 서로 하나가 되는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장년부 대표(?)로 나오신 옥집사님과 청장년들의 어우러짐을 보면서 많이 흐뭇했습니다. 사실 옥집사님은 경상도 사나이로 말씀이 별로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이번 족구 대회를 통해 젊은 성도들과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이 목회자인 저에게는 두 배의 기쁨으로 다가와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교우 모두가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어간다면, 그래서 사랑이 흘러 넘치는 교회가 된다면, 로체스터 땅의 상처받고 외로이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게 위로가 되어 드릴 수 있는 귀한 교회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내년 목표는 2승입니다. 그때는 더 많은 어른들과 젊은이들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을 기대해봅니다. 제일감리교회 파이팅. ^.^ (2003년 10월 5일)

어머니와 함께 한 삼일낮 삼일밤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어머니가 이곳 로체스터에 오셨습니다. LA에 말씀 전하러 오셨다가 이곳에 들르신 것입니다. LA에서 이곳까지 바로 오는 비행기도 없고, 갈아타는 곳에서도 두어 시간을 기다리셔야 하고, 건강도 그리 좋은 것이 아니시기에, 사실은 이곳에 오실 계획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떠나기 며칠 전에 전화가 왔습니다. 힘들지만 이곳에 오시기로 한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 로체스터 공항에 드디어 어머니 모습이 보였습니다. 너무 반가웠습니다. 찬수와 지혜가 먼저 달려가 안겼습니다. 긴 여행에 지친 얼굴을 하셨지만, 아이들을 안아 주시는 어머니 모습에서 가족의 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짐을 차에 옮기고 공항을 출발하기 전에 어머니가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마디를 채 마치시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며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식구를 이렇게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면서 말입니다. 자식은 공부와 목회를 하면서 정신없이 시간을 지내왔는데, 어머니는 아들 내외와 손주들을 멀리 보내고 나신 뒤, 하루하루를 그리움으로 보내오신 듯 하여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안타까웠던 것은, 정작 어머니와 함께 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담임 목회를 하시기에 두 주 이상 본교회를 비울 수 없으셔서, 사흘 뒤 금요일 아침에는 이곳을 떠나셔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캐나다 해밀턴으로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들으러 가야하기에, 실질적으로 어머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수요일 하루였습니다.

특히 수요일 저녁에는 특별 집회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팠던 이야기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여느 때보다 많은 성도들이 나와서 함께 은혜를 나눌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늘 듣는 간증이었지만 저 또한 많은 도전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 이제 어머니가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경비를 아끼신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항공편을 예약해 놓으셨기에, 시카고에서 한번, 일본 동경에서 한번 비행기를 갈아 타셔야 했습니다. 각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총 22시간 정도가 걸리는 모양이었습니다.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티켓팅을 하고 짐을 부치고 나니, 한시간 반 정도가 남았습니다. 그래서 커피와 빵을 시켜 잠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제 아내가 기도를 했는데, 또다시 기도는 눈물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힘들게 목회 하시는 어머니를 옆에서 위로해 드릴 수 없어서였는지, 마음 한 구석이 메어져 왔습니다.

이제 시간이 되어 보딩 장소로 갔습니다. 들어가는 어머니를 꼭 안아 드렸습니다. 안으면서 참 불효 자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에 온지 나흘째인데, 이제 어머니를 처음 안아 드린 것입니다. 아무리 무뚝뚝한 아들이라도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너무 죄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이곳에 오셔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건강은 괜찮은지, 애들은 무얼 갖고 싶은지 에만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려고 애쓰셨는데, 저는 마음으로만 사랑을 했지 어머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해드렸음이 깨달아져 뒤늦게 후회가 되었습니다. 사라져 가는 어머니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다가 그만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습니다.

늘 받기만 하는 것이 자식인가 봅니다. 무뚝뚝한 자식에게라 할지라도 늘 주시려고만 하는 것이 부모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무엇으로도 부모의 사랑은 갚을 길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잘해드리려 애써도 늘 부족한 모양입니다. 변변치 않은 아들의 설교 테이프 두어 개를 손가방에 넣으시고는 뿌듯해 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네 설교 들으면서 갈게!” 웃으시면서 남긴 말 한마디에 더 코끝이 찡해집니다. 그깟 설교 테이프 하나에도 기뻐하시는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집니다. 어머니가 들어가기 직전에 살며시 용돈과 편지를 손에 쥐어 드렸습니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말하시면서도, 흐뭇해하시는 어머니 얼굴에 제 마음도 조금 위로가 되었습니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 모르겠지만, 건강하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늘 부족한 자식이지만, 늘 열심히 영혼 사랑하고, 열심히 목회할 것입니다. 다음에 오실 때는 제가 제일 먼저 안아드릴께요.” 어머니가 떠난 뒤에 혼자서 뒤늦게 되뇌어봅니다. 이 마음이 어머니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2003년 9월 28일)

교회 속의 ‘작은 교회’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모임이 잘 운영되어야 합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혼탁해진 영국 사회를 바꾸기 위해 심여를 기울였던 부분도 바로 정기적인 속회 모임이었습니다. 속회는 교회 속의 또 다른 교회입니다. 그 안에서 사귐과 나눔 그리고 치료와 위로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가 오기 전까지 속회 모임이 잘 운영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속회 모임이 부담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속회 모임을 갖지 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모임을 다시 시작해 나가고 있습니다.

속회 모임을 다시 시작하면서, 한가지 사업을 함께 시작했습니다. 각 속회에서 나오는 헌금을 선교 헌금으로 지출하기로 한 것입니다.

우선 청장년속은 인도의 쿤트라칼 교회를 돕기로 했습니다. 쿤트라칼 교회는 제가 신외교회를 담임할 때, 신외교회 교우들과 함께 개척한 교회입니다. 지금은 거의 마을 주민 모두가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인근에 버려진 아이들이 많아, 쿤트라칼 교회에서 그 아이들을 모아,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복음을 가르치려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청장년속에서 모아지는 예물을 기도함으로 그곳에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장년속에서 모아지는 예물은 뉴질랜드에서 솔로몬 군도의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이군호 선교사님을 돕기로 했습니다. 장년속은 아직 한 달에 한번 밖에 모임을 갖고 있지 않기에 많은 것이 미약합니다. 하지만 이 제안을 내놓았을 때, 모두들 기쁜 맘으로 예물을 드리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선교지원은 교회 전체적인 재정에서 지출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속의 ‘작은 교회’인 속회 모임에서 자체적으로 돕게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각 속회별로 맡은 선교지와 사역자를 위해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빚진 자들입니다. 그 사랑을 거저 받은 자들이기에, 우리도 복음을, 사랑을 베풀어야만 합니다. 매일 기도하면서,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어떤 모습으로든 전해야만 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의 두 속회가 그 일을 감당하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이제 시작이라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것이기에 염려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일에 도구가 되어 드릴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릴 쓰신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이런 멋진 일들이 우리 삶 속에 늘 일어나기를 기도해 봅니다. (2003년 9월 21일)

창립 9주년 기념 주일을 앞두고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금주 목요일은 우리 교회가 세워진지 만 9년이 되는 날입니다. 창립 9주년을 두어 달 앞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러던 중에 ‘말씀을 한자 한자 적어보자’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잠언서를 쓰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성경을 매일 꾸준히 읽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더군다나 성경을 쓴다는 것은 배로 신경을 써야 가능한 일이기에, 솔직히 ‘몇 분이나 쓸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가지고 주일 예배 때 광고를 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투자하고 정성을 다해 성경을 쓰는 분들이 한 분이라도 있다면, 이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한 달이 지났을 때였을까요? 주변에서 하나둘씩 들려오는 소리들이 있었습니다. “요즘 잠언 쓰느라 정신이 없어요.” “글씨가 엉망인데 괜찮나요?” “워드로 쓰면 안되나요?” 모르긴 몰라도 대여섯 분은 잠언을 꾸준히 쓰기 시작한 모양이었습니다. 참 흐뭇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잠언을 옮겨 적으면서 일단 한번 눈으로 읽어야 하고, 또한 옮겨 적으면서도 한번 더 읽게 되는 것이기에 그만큼 말씀을 묵상함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두어 달이 지나 드디어 창립기념주일을 한 주 앞두게 되었습니다. 지난주까지 다 쓰신 분들은 제출을 해 달라고 광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세배나 많은 성도들이 잠언을 쓰신 것이었습니다. 사업으로, 직장으로, 갓난아기로, 어린 자녀들로, 학교 생활 등으로 이리 저리 짬을 내기 어려운 분들이 잠언을 써 오신 것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모든 분들 맘속에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렇게 잠언을 써오지 못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창립 9주년을 맞이하여, 모두들 보람있는 일들을 하신 것 같아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엡5장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영어 번역을 보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내어 보라”고 되어 있습니다. 9년 전에 우리교회를 이곳 로체스터에 세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신 것이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비록 조그만 것이었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찾아, 성경을 쓰는 일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도록 하실 줄 믿습니다. 비록 잠언 성경 쓰기는 끝이 났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일들을 찾는 일은 우리 삶 속에서 계속되어질 것입니다. 아니 계속되어져야지만 합니다. ‘신령한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야말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참 기쁨이 될 것입니다. 세상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쁨 말입니다. (2003년 9월 14일)

옛날 사진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옛날 사진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집안을 정리하다 보니, 눈에 낯선 비디오 테잎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이게 뭔가 하는 맘으로 캠코더에 넣고 플레이를 시켜 보았더니, 어디서 많이 보던 사진들이 눈에 띠였습니다. 오래 전에, 제가 몇몇 사진들을 캠코더로 녹화 떠놓았던 바로 그 테잎이였습니다. 앞부분을 보다 보니, 제가 군입대하여 논산에서 6주 훈련받고 가족들과 짧은 시간동안 면회를 하던 장면도 있었고, 군 제대후 필리핀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했던 사진도 있었으며, 대학에 갓 들어가서 주일 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던 장면도 있었습니다.

하나 둘씩 살펴보니, 정말 옛날 생각들이 저절로 나더군요. 한국에 있을 때도, 가끔씩 옛날 사진을 보곤 했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추억들이 담겨 있습니다. 소중한 추억들을 잊지 않으려고 찍은 사진들이었기에, 옛날 사진들을 볼 때면, 미소가 절로 흘러나온답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촌스러웠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사진조차도 정말 귀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런데 지나간 사진들을 볼 때마다, 동시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있어 깜짝 놀라곤 합니다. 인간들도 옛날 사진들을 이렇게 찍어 기록으로 남기는데,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록을 어떻게 남기시고 계실까? 우리의 마음까지도 감찰하신다고 했는데, 우리의 악한 생각과 그 행위 하나까지도 하늘의 필름으로 기록하고 계신다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순간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나빴던 행위는 제쳐 두고서라도, 우리가 날마다 짓고 살아가는 마음의 죄까지 기록하고 있는 하늘의 필름이 있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입니까!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그 죄를 덮을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4:8)

그렇습니다. 내가 죽어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웃을 사랑했던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내가 평생 지으며 살았던 죄악의 필름들은 하나 둘씩 가려질 것입니다. 이제부터 주님이 원치 않는 것은 “의지”를 가지고서라도 끊어 버립시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인간의 방법이 아닌 주님이 원하는 방법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답니다. (2003년 9월 7일)

아빠 나 다 나았어요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수요일 밤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이들이 태권도 발차기를 하면서 30분 동안을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러다 지혜가 장난을 치려고 바닥에 누워서 “오빠, 일으켜 줘”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일어날 수 있는데도, 오빠에게 간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모른 척 하던 찬수가 늦게 서야 지혜에게로 다가가서, 지혜의 팔목을 잡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순간 지혜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팔목을 잡고는 엉엉 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찬수가 지혜를 빨리 일으켜 세우려다가 팔에 무리한 충격을 준 모양이었습니다. 약간의 엄살이 섞인 줄 알고, 아픈 곳을 쓰다듬어 주려 했는데, 손도 못 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팔을 펴지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때문에 지혜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찬수도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무튼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응급실로 가려고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하지만 지혜가 병원에는 안가겠다고 더 울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팔을 잡고 기도해 주면서 얼러 주었습니다. 기도 후에 지혜가 퉁퉁 부은 얼굴로 저를 쳐다보면서, “아빠, 지혜 내일 아침이면 날거야?” 하고 계속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밤에 잘 때에도 몸을 뒤척이면서 계속 신음 소리를 내었습니다. 오른팔로 왼팔을 잡고는 얼굴을 찡그리며 잠을 자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통증이 느껴졌는지 또 다시 울어대었습니다. 그래서 최민석 집사님이 운영하는 ACE 통증 클리닉에 예약을 하고 달려갔습니다. 혹시 어깨나 팔꿈치가 빠진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X-ray를 찍은 결과 뼈나 신경에는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순간적인 충격으로 뼈 속에 멍이 들어 아픈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약간의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바르고 병원을 떠났습니다.

아침도 못 먹은 채 12시가 넘어가는 바람에 근처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사 먹었지요.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계속 통증이 오는지, 얼굴을 간혹 찡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계속 아픔을 호소하며 우는 지혜를 보니,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뼈나 신경에는 이상이 없음에 감사하면서도, ‘얼마나 아플까’하는 안타까운 맘으로 지혜를 내려다보며, 다시 한번 기도해 주었습니다.

두어 시간이 지났나요. 지하에서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지혜가 달려 내려왔습니다. “아빠, 이것 봐요. 지혜 팔 다 나았어요. 이렇게 펼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어요.” 자고 일어나니, 다 나았다며 달려 내려온 것입니다. 제가 볼 때는 약간의 엄살 아니 상당한 엄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 때문에 밤새 잠을 뒤척이고, 오늘 하루 종일 자기를 안고 병원으로, X-ray Laboratory로 뛰어다닌 부모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말 한마디를 남긴 채, 지혜는 오빠와 다시 신나게 놀기 시작했습니다.

엄살이 80% 이상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아직 의료보험이 온전히 커버 되지 않아, 진료비와 검사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어도, 다시 원기를 회복한 지혜의 모습을 보니, 제 마음도 환하게 밝아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게 엄살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건강한 자식의 모습을 보니 얼마나 기뻤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답니다.

오늘 하루 무사히 보냈다는 사실, 특히 사랑하는 가족이 오늘 하루를 건강하게 지냈다는 사실이야말로, 정말 감사해야 할 제목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늘 누리고 살아가기에, 그것이 내가 누려야 되는 당연한 것인 양 착각하며 살지는 않는지요? 오늘은 무뎌진 저의 감사 거리를 되찾은 하루였습니다. 잊지마세요. 오늘 내가 누리는 복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 드려야 하는 복들인지 말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감사함’으로, 주신 복들을 ‘누리며’ 살아 가시길 바랍니다. ^.^ (2003년 8월 31일)

꼭 보고 싶은 얼굴들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꼭 보고 싶은 얼굴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모습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염려가 되고 궁금해집니다. 미리 사정을 알게 되면 걱정은 덜 되겠지만, 아쉽고 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많은 성도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강태윤 형제와 길호진 성도, 친구 결혼식 때문에 뉴저지에서 주일을 지키게 된 김동진 집사와 안진영 성도, 따님네 다녀온다고 뉴저지로 가신 최보물 권사, 늦깎이 결혼식을 아픈 몸으로 올려 몸살이 난 박인옥 집사, 그리고 연락 없이 못나오신 성도들도 두어명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못나온 성도들의 빈자리를 볼 때면, 그분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궁금하고 걱정이 된답니다. 주일 예배 뿐만이 아닙니다. 저희 교회는 새벽기도 멤버들이 정해져 있는데, 그 중 한 분만 빠져도 ‘몸이 아프신가’, ‘무슨 일이 있으신가’ 하는 걱정이 기도회 내내 떠나질 않습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늘 자리를 지키시던 이운섭 권사님이 연락도 없이 예배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 모두들 한 목소리로 걱정을 했습니다. 저도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하며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심방차 ‘Lee’s'(직장)를 찾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권사님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나이도 드시고, 일도 고되다 보니, 무릎에 이상이 생기신 것이랍니다.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저에게 다가 오시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한 곳에 앉아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아픈 무릎을 꼭 잡고 말입니다. 얼굴을 보고 함께 기도를 드리고 나니, 그제야 안심이 되고 기분도 좋아졌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우리 교인들이지만, 감사하게도 매주 거의 모든 분들이 예배에 참석을 하십니다. 적은 교인들이기에 한 분이라도 자리를 비우게 되면, 눈에 금방 띄게 된답니다. 그래서 한 주만 못 봐도 너무 보고 싶고, 얼른 주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을 그렇게 그리워하며 주시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여러분이 있어야 할 자리(예배의 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안타까운 맘으로 우리를 찾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정말 감사하지 않으십니까?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며 만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나’를 보고 싶어 못 견뎌 하는 분이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서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내 얼굴을 보기 싫어하는 사람은 혹 있을지 몰라도, 내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받으시며, 나를 보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아갑시다. 그 자리는 예배의 자리요, 기도의 자리요, 용서의 자리요, 감사의 자리요, 헌신의 자리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 만남의 자리를 늘 사모하며 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2003년 8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