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두 번째 주례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생애 두 번째 주례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삼년전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신외리에서 목회할 때, 저와 함께 일했던 박주환 전도사의 결혼 주례를 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결혼식 한 주전에, 주례하기로 하셨던 목사님이 소천 하시는 바람에, 다급해진 박전도사가 평소 친분이 깊었던 저에게 대신 주례를 부탁했었기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어린 나이에 주례를 서게 된 것이었지요.

그리고 1년전에 캐나다에 오게 되었고, 6주전에 이곳 미국 로체스터에 오게 되었습니다. 공부 때문에 1년 정도 목회를 쉬고 있었고, 게다가 이민 목회라는 특수한 상황을 접하면서, 이것저것 알아가야할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 부임하던 첫주에, 덩치가 친 미국친구가 제게 오더니 할말이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알고 보니 우리교회 박인옥 집사님의 남편이었습니다. 둘이 결혼할 당시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결혼식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귀여운 두 아이가 생겼고, 이제서야 못 올린 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 결혼 주례를 맡았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제의를 듣는 순간, 제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그래도 내색을 할 수는 없는지라,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어떻해서든 그 제안을 거절하려 애썼답니다. “나는 영어도 못하고, 나이도 어리고, 아직 이곳 생활에 익숙하지 못하고……” “Never mind!” 그 친구 왈, “그 정도면 영어 실력은 충분하고(사실 가뜩이나 못하는 영어를 그 날은 왜 그리 더 더듬거렸는지), 나이도 절대 어리지 않으며, 미국 문화는 한달 반정도 시간이 있으니 금방 익숙해 질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부담이 되었지만,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박인옥 집사님의 부탁을 직접 듣고는, 서툴러도 한번 집례를 해 보겠노라고 결심을 했지요. 지금 와서 말이지만, 그때부터 결혼식이 있던 바로 어제까지, 결혼식 주례할 것을 생각하면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정말 열심히 기도함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박집사님의 다리가 불편한지라 오래 서 있을 수 없었기에, 시간을 조절하는데도 애를 썼습니다. 특히 제일 중요한 것은 말씀 권면이라 생각했기에, 짧고 굵게 말씀을 준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전날 밤에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긴다는 기도를 수차례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었답니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되었고, 40분의 결혼 예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제가 미국과 한국 청중들 앞에서 두 나라 언어를 써 가며 결혼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니! 리허설 때만해도 우왕좌왕했던 제가, 이날은 많이 침착해짐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답니다. 아마도 성령님께서 저를 강권적으로 이끄셨나 봅니다.

아무튼 여러 가지 아픔을 안고 살아온 듯한 두 부부를 위해 주례를 맡아줌으로 그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서 저 또한 정말 기뻤습니다. 한달 이상을 부담으로 준비했지만, MR & MRS. Hendrix부부를 맘껏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어서 또한 감사했습니다. 이제 두 부부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더 아름다운, 그리고 작지만 큰사랑을 예쁘게 만들어 나가길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결혼식을 위해 구슬땀을 흘려가며 수고한 손길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들러리로 애쓴 강은진 성도와 김미정 집사 그리고 카메라맨으로 수고한 이두영 성도와 김종후 집사 그리고 보조(?) 카메라 워먼으로 애쓴 최선이 성도 그리고 마지막 뒷정리까지 신경써 주신 김재길 집사 등등. 그러고 보니 우리 교회는 참 행복한 교회입니다. 든든한 식구들이 있으니까요.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 돌립니다. *^0^* (2003년 8월 17일)

<아니 벌써.....>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아니 벌써…..>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지난 월요일부터 2박3일간 미국연합감리교회 소속 동북부 한인 목회자 가정 수양회가 뉴져지에서 열렸습니다. 연세대 이계준 박사님을 주 강사로 모시고 선교와 전도에 대한 강의도 들었고, 김해종 감독님과 사모님, 윤원경 감리사님 그리고 김상모 목사님등 여러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목회 하시는 모습을 보며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수요일 아침에는 드류대학원에서 동기 목사인 박해정 목사와 김지성 목사를 만나 함께 아침을 먹으며 담소를 나눌 수 있어서 더욱 기뻤습니다. 하지만 수요성경공부가 있는 날이라, 두 시간의 만남에 만족하고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7시간을 달려 로체스터에 들어오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들어가는 104번 도로를 타는 순간 이상야릇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야, 이제 우리 집이구나”라는 탄성과 함께 마치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긴 여행 끝에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지만, 우리 집으로 뻗어있는 눈에 익은 도로들이 너무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에 이사온 지 3일만에 즉 첫 주일 예배를 마친 후 바로 다음날, 캐나다 해밀턴으로 다시 와야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에 살던 집문제와 은행업무등 처리할 문제들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레인보우 브리지를 건너서 캐나다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정말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마구 밀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제 아내도, 아이들도 환호성을 지르며 캐나다에 다시 돌아온 것을 기뻐했습니다.

뉴져지 여정을 마치고 로체스터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느낀 감정이 바로 이 감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 온지 이제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고향에 돌아온 느낌을 가지게 된 제 자신에게 놀란 것입니다. 사실 이곳에 와서 너무 분주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여름성경학교와 결혼식 주례 준비(영어), 청년부 모임과 한국학교 문제, 자동차 보험과 등록 등등 너무나 많은 일들이 제 앞에 놓여 있었기에, 몸도 마음도 너무 분주하게 지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고, 오며가며 스치는 거리들을 눈여겨볼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뉴져지에서 돌아오던 날에는, 로체스터의 도로와 거리들이 긴 여행으로 지친 저를 마치 품어주는 듯 했습니다. 저희 가족을 위한 보금자리 사택이 있고, 제가 사역하는 교회가 있으며, 교우들이 곳곳에 있고, 자주 들르는 웨그만과 월마트 그리고 리스, 아이들이 좋아하는 파파이스 등등 모든 것들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온지 아직 한 달밖에 안되었지만, 하나님이 제 마음의 닻을 이곳 로체스터에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심어 가는 것 같네요.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저희 내외를 도구 삼아 우리 교우들 모두에게 찐~한 사랑을 전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2003년 8월 10일)

<오랜만의 산책>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신외리에서 8년 목회, 캐나다 땅에서 1년 공부 그리고 이곳 미국 로체스터! 결혼후 지난 8년간의 세월을 뒤돌아보니, 정말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만 온 것만 같습니다. 신외교회는 작은 교회였지만 이것저것 돌볼 일들이 많았고, 1년 캐나다에서의 공부도 몇 과목 듣지 않았지만 책만 파고들어야만 했었습니다. 이곳에 와서도 여러 가지 알아가야할 그리고 계획하고 준비해야할 문제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한 주간 동안은, 자동차 보험 문제로 여간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무사고 경력을 인정해줄 수 없다느니, 아직 미국에서의 신용이 전혀 없는 관계로 보험료를 많이 내야만 한다느니, 게다가 영어까지 제대로 되지 않아, 너무 힘든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저녁 해가 저물 무렵, 아이들이 산책을 나가자고 졸라댔습니다. 하루종일 보험회사를 찾아다니느라고 몸도 맘도 지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아이들의 청이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내는 집안 정리할 것이 있다고 하여, 아이들과만 동네 산책에 나섰습니다. 아빠 손을 잡고 나선 발걸음이 신이 났던지, 아이들도 조잘조잘 저에게 얘기를 걸며 함박웃음을 지어댔습니다. 제 팔에 매달리기도 하고, 앞서 뛰어나가기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하루의 체증이 모두 내려가는 듯 했습니다. 저도 느긋한 발걸음으로 아이들 뒤를 좇아가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의 산책이었습니다. 분주하고 정신없었던 하루일과를 잊고, 아니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9년간의 제 삶을 잠시 뒤로 한 채, 참된 안식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만 이루어지는 목회가 아니기에 더 많이 하나님을 붙잡아야 하는데도, 인간인지라 일에 진척이 없고 어긋나가기 시작하면 마음부터 분주해 지는 저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저의 모습을 아셨는지, 이날 저에게 귀한 시간을 허락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능히 해낼 수 있는 일은 극히 적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발버둥치며 살아갑니다. 어떻게 보면 부질없는 것 같은 일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작은 것에서 찾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의 짧은 산책 시간을 통해서 느꼈던 것처럼, 우리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 주는 행복은 지금 바로 내 곁에 있답니다. 작고 보잘것없이 보이는 일들, 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누릴 수 없는 일들,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행복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래의 일들로 머리 싸매고 정신없이 살아가시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가끔씩 모든 걱정을 그 자리에 내려놓고, 하나님이 이미 여러분에게 허락해 주신 복들을 헤아려 보세요. 아이들과 산책을 하는 일,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이 곁에 있다는 사실, 멀리 있지만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랑의 손길이 있으며, 두발 뻗고 누울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고, 무엇보다 나를 소중히 여겨 주시는 우리 예수님께서 나를 늘 지켜주신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큰 행복이요, 잊기 쉬운 복들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잊어버린 소중한 복들을 하나 둘씩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분주하고 힘든 하루도 보람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2003.8.3)

<은혜 속에 마친 세례식>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은혜 속에 마친 세례식>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두 주 전에 전화가 왔습니다. 윤현옥 성도의 전화였습니다. 교수로 일할 기회가 생겨 두 주 후에 귀국하게 되는데, 가기 전에 세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한국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 우리교회에 나오시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아직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 모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일대일제자양육>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부분을 김희연 사모와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너무나 순수하게 복음을 받아 들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식이 있던 날에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모든 성도들도 함께 기뻐해 주었답니다. 지금쯤이면 한국에 거의 도착했을 것 같습니다. 윤현옥 성도 가정을 위해 지속적인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003년 7월 27일)
(다음은 윤성도님의 ‘기도문’과 이운섭권사님의 ‘격려의글’입니다)

(윤현옥 성도의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처형으로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의 삶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시어, 우리 곁에 살아계신 하나님.
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하나님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세례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삶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큰 뜻을 되새기며,
주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막연하게 예수님의 삶을 알았던 저의 무지함과 무관심을
주 그리스도의 큰 사랑으로 감싸주신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모든 성도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윤현옥

(이운섭권사의 격려글)
윤현옥 자매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가 우리뜻대로, 우리 힘으로 사는 것 같지만,
우리의 생각, 행동 하나하나, 한 순간 순간을 하나님의 섭리대로 살고 있는 것을 고백합니다.
윤현옥 자매를 예전부터 아시고, 부르시고, 인도하셔서,
오늘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받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오늘 이 시간 이 자매의 마음에 빛을 비추소서.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알아가게 하소서. 십자가의 은총을 확신하게 하소서.
이 세상에서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감사하며 기도하게 하소서.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 너를 구속하신 여호와! 너를 지명하여 부르신 여호와, 너는 내것이라”
하신 이사야 43장 1절 말씀을 늘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편과 두 자녀를 아시오니, 그들 위에도 함께 하여 주시고,
한국에 가서 좋은 교회와 목자, 좋은 성도들 만나,
착하고 선한 일로 예수님 잘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사하는 모든 일을 보살펴 주시기를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로체스터 선교 감리교회 여선교회 (이운섭권사)

<오늘 시작입니다>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오늘 시작입니다> – 로체스터 흙내음 소리

드디어 오늘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됩니다. 성경학교를 열흘만에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도움의 손길을 붙여 주심을 강하게 느낀 한 주간이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바 있는 Hope Lutheran Church에서 2차 연합성경학교를 열었습니다.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에 그곳에 다시 한번 방문을 했답니다. Mary라는 분이 총 디렉터였는데, 그분에게서 받은 사랑은 이루 말로 다 못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선 두 명의 정교사를 우리 여름성경학교에 보내 주기로 했습니다. 두 주 연속 연합여름성경학교로 지쳐있을 법도 한데, 두 명의 교사가 우리교회를 지원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두 교사를 만났는데 깜짝 놀란 것은 우리 아이들을 자신들의 아이들처럼 생각하며, 이것저것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교실 장식이나 창작 활동도 자신들이 준비해 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겸손하게 다가오는 그분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고, 아이들을 우리들 못지 않게 사랑하는 맘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금요일 오후에는 모든 자재들과 자료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오후 5시에 정리작업을 시작한다고 해서 갔더니, 벌써 우리교회에 줄 자료들을 모두 정리해 두었습니다. 자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기쁨보다는, 동역 의식을 갖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고 도와주는 손길이 있음에 더 기뻤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 명단을 받아 가지고는,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겠다”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정말 큰사랑을 받고 있음에 다시 한번 감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분들의 도움에만 의존한 것은 아닙니다. 이 모든 행사를 안타까움으로 준비해온 집사님들이 있었고, 부족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하는 청장년 회원들이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주었으며, 음식으로 물질로 기도로 후원을 아끼지 않는 교인 모두들이 있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시고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오늘 성경학교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랍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기업이 아닙니다. 기업이나 회사의 생명은 ‘생산성’에 있지만, 교회의 생명은 ‘사람’에게 있답니다. 행사를 통해서 부족한대로 우리 자신이 변하여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경학교를 통해 진정으로 우리 모두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복음의 씨앗을 심어주실 것이고, 교사들에게는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실 것이고, 모든 교우들에게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0^7 (2003년 7월 20일)

<여름성경학교를 앞두고>

지난 목요일 저녁에 Hope Lutheran Church에 갔었습니다. 500명이 넘는 인근 교회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여름성경학교(Vacation Bible School)를 하고 있었습니다. 교사들도 족히 100여명은 넘는 듯 했습니다. 저희 교회도 두 주 뒤에 여름성경학교를 하는지라, 교재와 자료들을 얻기 위해 교사들과 함께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레 담임목사가 바뀌는 바람에 성경학교를 이제야 준비하게 된 것이지요. 앞으로 열흘, 그리고 교사도 부족, 게다가 저 또한 영어가 제대로 되지 않는 터라 가중되는 부담은 어쩔 수가 없는 듯 합니다. 아무튼 맘씨 좋은 스텝들의 도움으로 이것저것 자료를 얻고, 다음날 아침 나머지 자료들과 노래 악보를 얻으러 다시 한번 이곳에 오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예정 시간보다 좀 늦게 도착했는데, 감사하게도 스텝 두어 분이 벌써부터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님을 소개해 주시더군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깜짝 놀란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 연합 성경학교를 위해 올 1월부터 온 교사가 모여 준비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이들 한명 한명을 놓고 기도로 준비해왔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복음을 잘 심어줄 수 있을까 연구(brainstorming)에 연구를 해왔으며, 창작활동 자료를 직접 고안하기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교사가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이 구석구석까지 보여 다시 한번 도전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런 큰 교회의 프로그램을 모두 따라할 수는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늦은 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교회도 몇몇 교사들이 열정을 가지고 성경학교를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귀찮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얼마든지 발을 뺄 수도 있지만, 이제라도 준비를 하게 되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물론 성경학교를 준비한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영혼들에게 작은 복음의 씨앗이라도 심어주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 부담을 뒤로한 채 성경학교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학교는 하나의 행사라기보다는 어린 영혼들을 위한 어른들의 작은 관심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어릴 때 들은 성경귀절 하나가 이제 아이들 맘속에 심어진답니다. 지금은 건성으로 듣는 것 같지만, 지금 뿌려지는 말씀들은 아이들 맘속 깊이 새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먼 훗날 이 말씀들이 아이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지어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말씀의 위력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교사들을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세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답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 속에 이번 성경학교가 은혜로이 마쳐지기를 기도합니다. (2003년 7월 13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저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감리교 신학대학과 대학원을 나와, 경기도 화성 신외리라는 시골에서 8년 목회를 했습니다. 목회를 하던 중 아직 젊었을 때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유학을 결심하게 된것이지요. 지난해 8월에 캐나다 해밀턴애 있는 맥매스터 신학교에 입학하여 M.T.S.과정 두학기를 마치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사실 3년전 미국 워싱턴디시에 있는 웨슬리 신학대학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미국 비자를 받는 과정에서 세 번이나 낙방(?)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이후 유학을 포기했던 저에게 제 스승이었던 왕대일 교수님이 캐나다 맥매스터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이곳으로 오개 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동안 목회를 주욱 해왔던 저였기에, 머리 박고 책만 읽는다는 것은 정말 숨가쁜 일이었습니다. 8년 목회하면서도 그러했듯이 목회하면서 필요한 공부 (특히 성서와 설교)를 병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곳에서 담임목회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너는 세 번이나 거절당한 경력이 있고, 더군다나 캐나다에서는 더더욱 비자 받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저와 제 아내 또한 많은 기대를 하기 보다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안될 때 안되더라도 최선의 노력은 해봐야 하는 법! 이번에는 미국에 있는 변호사에게 종교 비자 의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비자 인터뷰 전날까지 서류가 도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저를 담당한 여직원의 실수로 서류를 일반 우편으로 보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서류를 제대로 갖추어서 대사관에 들어가도 쉽지 않을 판에, 난리가 난 것입니다.

그 순간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내려 놓게 되었습니다. 유눙한(?) 변호사에게 맡겼으니 틀림없이 비자를 받을 것이라는 교만한 마음이 저를 감싸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없을 것을 있게 하시고, 있는 것을 없게도 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저희 가족은 급한대로 팩스로 서류를 받아 (비자 심사시 기본적으로 원본을 요구함) 가지고 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장장 6시간을 기다린 끝에 제 이름이 불려졌습니다. 덤덤한 마음 반, 떨리는 마음 반(왜 영사 앞에만 서면 그렇게 떨리는지 ^^;)으로 창구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어라, 우째 이런 일이….. 그렇게 많이 준비해 간 서류는 하나도 보지 않고, 초청장 한 장만을 보더니 비자를 내 주는 것이 아닙니까! (감사하게도 초청장은 저에게도 원본이 한 장 있었습니다) 남들은 영사 잘 만나서 또는 운이 좋아서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야말로 분명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희 같이 부족한 내외를 이곳으로 부르셨으니, 이제 하나님은 더 바빠지실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목회자 내외를 이곳에 세웠으니, 어찌 하나님이 한 눈을 파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희가 부족한 만큼 하나님은 갑절로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손수 일하신다면,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족한 저희 내외를 위해서는 더 많이 기도해 주시고, 여러분 삶 구석구석까지 만져주실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해서는 끝없이 기대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2003년 7월 6일)

어려움 중에 위로

지난주간 밤 10시 기도시간에 가정예배를 드리고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는데 사모가 말하기를 “목사님 주기도문과 내 주기도문이 좀 다른 곳이 있네요”라고 했습니다. 같은 예수 믿으면서 무엇이 틀리나 별꼴이네 하며 물었드니 나는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고 기도하는데 본래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것이었습니다. 둘다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는 같은 뜻이 아니냐고 말했지만 하나는 마옵시고 하나는 하옵시고니 틀리는게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뜻을 생각하다가 오늘 본문을 설교로 택하게 되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같은 것 같으나 오늘 본문에서 그것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한 해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시험에 들지말게 하옵시고는 내가 시험에 든다는 의미인데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는 남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는 피동의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허락이란 단어가 바로 그 의미입니다.시험은 내가 들고 안 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 하시느냐 않하시느냐 하는데 달렸다는 말입니다. 시험에 ‘들다’라는 단어 ‘에이습헤로’를 영어로는Lead us not into temptation, Don’t put us to the test, to carry inward temptation, not bring us into temptation등으로 해석했는데 lead, put, bring, carry등의 단어가 모두 우리(us)를 시험 속으로 이끈다는 피동형입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시험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본문에서 3가지 단어를 유의해 봐야 합니다. = 허락, 피할 길, 능히 감당하게.
㉠허락한다는 말씀 모든 시험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온다는 말입니다. 욥의 경우도 하나님이 허락하심으로 마귀가 욥을 시험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당 못할 시험은 허락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피할 길을 내사 피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홍해가 진퇴양란의 막다른 골목이었지만 사람으로서는 피할 길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바다에 길을 내서 살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길을 내신다는 것임.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길 힘을 주신다는 말입니다.★어느 청년이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됐는데 견디기 힘들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자가 돌아오게 해주시든지, 내가 잊을 수 있게 해 주시든지, 다른 더 좋은 여자를 주시든지”. 그런데 그가 돌아오지는 아니했지만 죽을 것 같은 마음이 견딜 만 하게 되었고 나중에 더 좋은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길 힘을 주십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어려움 중에 위로가 됩니까? 내 어려움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어려움이다 하나님이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시는 일이다. 자식의 어려움은 보고 있는 부모가 더 몸달 듯이 나의 어려움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더 몸달고 계시고 부모가 자식의 어려움을 도와주듯이 하나님이 나의 어려움을 반드시 도와 주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나에게 반드시 길이 있다, 솟아날 구멍이 있다, 나갈 문이 있다, 그런데 그 길을 하나님이 열어주실 것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지금 같아서는 도저히 헤쳐나갈 힘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이기고 극복하도록 힘을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에겐 절망이 있을 수 없고 낙심이나 좌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포자기나 포기가 있을 수 없습니다. ★루터 부인이 말한 대로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으신 이상, “그 팔이 짧아지지 않으신” 이상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2)둘째로는 시험은 실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인간에게 시험이 있습니까?
①시험하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 4:2) 마귀를 시험하는 자라 불렀습니다. 시험하러 존재하고 시험하려는 것이 마귀에 주된 일 입이다 (계12:9)에 하늘에서 쫓겨난 붉은 용이 있는데 잡고 보니 옛 뱀이요, 마귀라고도 부르며 천하를 미혹하는 자더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에덴에서 아담을 시험한 그 뱀입니다. 하와를 미혹하여 시험들게한 자입니다. 아담도 시험하고, 욥도 시험하고 다윗도 시험하고, 사울왕도 시험하고 베드로도 시험하고 가롯유다도 시험하고 심지어 예수님까지 시험했습니다. 지금도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자를 미혹하여 넘어지게 하려고 밀 까부르듯하고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첫째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시험한 마귀는 둘째 아담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했습니다. 그 시험하는 방법은 (요일 2 :16절)로 합니다.
언제나 방법은 동일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에 자랑으로 시험합니다.
이브가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하고(육신 정욕), 보암직하고(안목의 정욕),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지라(이생에 자랑), 예수님도 떡을 만들어 먹어라(육신의 정욕), 천하 영광을 보이며( 안목의 정욕) 뛰어내리라 천사가 발을 받들리라(이생에 자랑)을 가지고 시험했습니다. 에덴에서 아담은 졌습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은 이겼습니다. 풍요 속에서 시험에 들기가 더 쉬운 것입니다. 적이 있으니 전쟁이 있고 도적이 있으니 도적을 맞고 테러분자가 있으니 테러가 나듯이 시험하는 자가 있어서 시험이 있습니다.
②시험하는 때이므로 시험이 있습니다. (계3:10) “시험의 때에 지켜 이기게 하리라”
지금은 시험의 때요 환란의 날입니다. 시험의 때와 시험하는 자가 있기 때문에.
3)시험의 근원지가 어디냐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시험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시험은 3곳에서 옵니다 ①하나님께로 부터(창22:1), ②마귀로 부터(마4:1), ③자기 욕심으로 부터(약1:14) 그런데 누구에게서 시험이 왔느냐에 따라 시험의 내용이 다릅니다. 시험은 원어에는 ‘페이라스므스’라고 했는데 experiment, trial, test, temptation등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test입니다. 마귀가 주는 시험은 temptation입니다. test를 왜 합니까? 진학, 진급, 상, 취직등의 유익한 목적으로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에게 시험을 줍니다. 마귀는 temptation합니다. 이 것은 넘어뜨리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마16:23)에 베드로에게 주님은 ”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시험이던지 본문에 원칙에 따라 옵니다. 하나님의 허락과 피할 길과 감당할 능력을 반드시 주십니다. 기도하면 길이 있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어려움의 해답이 있습니다. 왜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믿는 자에게 어려움이 있느냐는 반문이 있습니다 욥기서의 물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trial)하시고 test하셔서 좋은 것을 주시려는 목적이 있으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단 사탕도 주지만 쓴 보약도 줍니다. 나는 어릴 때 약을 몹시 안먹었습니다 이를 앙 물고 안 먹습니다. 그러면 어른들이 네 손발을 붙듭니다.그래도 입을 꼭 깨물고 있으면 뺨을 때립니다. 앙! 하고 울 때 약을 입에 처넣습니다. 그러면 그 때는 뺨은 아프고 입은 쓰고 어른들이 원망스럽지만 그래야 병이 낫습니다 ★해군에 가면 수영을 가르칠 때 무조건 물 속에 처넣습니다. 살겠다고 허우적거리다가 수영을 배웁니다. ★독수리는 무조건 새끼를 높은 공중에서 내려뜨립니다. 세끼는 살겠다고 허우적거리다가 나는 법을 배웁니다 ★쇠는 용광로에 들어가야만 강해 집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약도 먹이고 수영도 가르치고 강한 자로 연단도 하십니다. 운동은 노동이 아닙니다. 훈련은 벌이 아닙니다.
≡】그러면 시험이 올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1)기뻐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test는 상 줄려고 하는 것입니다.(벧전 1:6)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 같아서 ……” 강철이 강할수록 불이 뜨겁고 여러 번 불 속에 넣듯이 귀히 쓰는 그릇일수록 큰 시험을 통과합니다.
2)염려하지 말아야합니다. 본문을 복창합시다. ” 감당 못할 시험은 허락지 않으신다. 피할 길이 있다 반드시 있다. 이길 힘을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8:35) 모든 것은 협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롬6:28) 화를 복으로
★김창규권사님 몸이 건강해도 좋지만 질고를 만나 잠시 근심했으나 그로 인해 바울 같은 삼층천의 경험과 사도 요한의 밧모섬 환상을 보는 은혜를 체험하고 기적을 통해 건강을 얻고 도리어 복이 되었습니다.
3)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은 당할 때 이겨야 합니다 빠지면 안됩니다. 이기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기도 않해 시험에 들었었습니다. 환란 날엔 내게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미국은 지금 시련의 시간입니다. 전쟁을 안 할 수는 없는데 세계 각국의 반전데모가 너무 심합니다. 테러 가능성이 High로 올라갔습니다. 한국도 정권이양 초기에 남북관계와 한미관등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정주영씨의 말대로 우리에겐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습니다. 어려움은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기면 약이 됩니다. 길이 있습니다. 감당할 능력을 주십니다.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인이 되고 어려움의 의미를 설명해주며 소망의 원동력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영변 약산 진달래꽃

‘님은 나보기 역겨워 가신다지만 나는 가는 님도 사랑하여 진달래 한아름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라’는 애틋한 사랑의 시를 낳은 영변의 진달래는 이 봄도 곱게 곱게 피어나겠지! 금강산 육로 관광길이 열렸다하여 금강산 보다 먼저 보고싶은 것이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이어서 찾아가 볼 수 있을려나 했는데 아름다운 그곳이 핵 공장이 들어서서 악의 축에 중심부로 공격목표가 되었다고 하니 슬퍼질 뿐입니다 왜 국민들이 굶어죽어 가는데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드느라 안간힘을 쓰는지 모를 일입니다. 핵을 가졌다고 세계를 점령할 일도 아니겠고 그것이 없다고 하여 침략 당하는 시대도 지나갔는데 미운 짓 해서 좋을 것 없는 일을 왜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어야 천국이 될 터인데 교회 종을 부수어 대포알을 만들다 망한 일본의 역사가 종이에 잉크도 마르지 아니했건만 김정일 정권은 무슨 망령에 홀려 있는지 야속함뿐입니다. 이락 공격을 시작하면서 파월 장관은 북한의 핵을 다시 경고하며 지나갔습니다. 바그다드를 향하든 포신을 영변으로 돌릴 수도 있다는 암시인 듯 했습니다. 그간 한미 관계는 심각성을 느끼게 했으며 반미 데모의 불길은 꺼질 줄을 몰랐습니다. 다행이 이락전 개전 후 노 대통령이 전쟁 지지연설과 파병을 계획한다고는 했지만 성조기를 불태우며 양키 고홈을 외치며 가장 큰 욕인 가운데 손가락을 뻗쳐 올리던 윤도현이란 가수가 미국에 와서 공연을 하고 있는 마당에 북한을 이락보다 더 위험 수위에 올려놨던 미국 국민들의 마음은 응어리가 쉽게 가실 리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시위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도 같은 민족이면서도 마음이 그들에게 가지 않는 것은 우리가 미국에 살고있기 때문이라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반미 감정의 시발은 두 여학생의 죽음입니다. 이에 대해 미국 대통령은 애도의 뜻을 전했지만 한국 사람들은 사과를 하고 미군병사들에 잘못을 처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분노할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견해의 차이일 뿐이며 미국은 미국대로의 할 일을 다한 것입니다. 개념의 차이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 미국의 도덕성은 “오로지 악한 행위는 악한 동기에 있다고”하는 어거스틴의 말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서양의 도덕견해는 동기가 중요한데 반하여 동양의 도덕견해는 결과에 우선을 두고 있는 것이 차이입니다. 크리스 포어먼이란 사람은 이러한 예를 들었습니다. 한 일꾼이 성당 지붕 위에서 일을 하다가 기왓장을 밟아 떨어뜨렸는데 마침 아래 지나가는 사람이 맞아 죽었습니다. 일 하는 사람은 그 사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전혀 고의적인 악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사람이 지붕에서 일을 하다가보니 조금 전에 죽은 그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평시에 죽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참이라 기왓장을 떨어뜨려 죽게 했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범죄입니다 결과는 둘 다 똑같이 기왓장에 맞아 죽은 것입니다. 서양 도덕관 동기가 문제가 됩니다. 동양은 결과가 문제입니다. 병사들이 죽일 동기가 있어 여학생을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 미국의 판결이었으나 한국은 사람이 죽었으니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주장입니다. 당사자인 병사도 그렇거니와 더욱이 제 삼자인 대통령이 잘못한 일이 아니기에 사과할 이유가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한 여학생의 죽음을 위해 일국에 대통령이 직접 애도의 뜻을 전한 것은 미국 대통령으로서 지나칠 만큼 관대한 행동이었으며 한국을 무시한 처사가 결코 아닌데도 한국에서는 사과하라고 야단이니 공연한 열등의식에서 온 감정일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기도가 생각납니다.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나이다” 그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지 동기가 악해서 그런 것이 아니기에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전에는 고양이와 개가 원수였던 것은 표현의 차이에서 온 것입니다. 꽁지를 치켜들면 개는 호의에 표시인데 고양이는 공격의 표시로 보고 덤비니까 만나면 싸웠듯이 한미관계도 관념의 차이임을 인정해야합니다. 물론 두 학생의 목숨은 천하보다 귀하지만 우리를 위해 죽은 미군 수십만의 생명은 귀하지 안타고 여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영변약산에 진달래가 곱게 피기를……박목사

들으라! ( Shema ) (사 55:3)

오래 전 시카고에 한 나이트 클럽에서 화재가 났다. 당시 유명한 코미디언이 코미디를 하고 있었는데 무대 맞은 편 관중석 뒤 출입구 쪽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그것을 본 코미디언이 “불이야!” 하고 소리쳤지만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진짜같이 실감나게(Realize) 한다고 갈채를 보냈다. 코미디언은 빨리 밖으로 나가
라고 소리치며 자기도 뛰어나갔지만 관중들은 정말 진짜같이 하는 엄청난 연기라고 계속 박수를 치며 불길 속에 타 죽어갔다. 사실을 말해도 코미디로 여기고 불에 타죽은 사람들은 소돔고무라 때도 있었다 롯이 사위들에게 하늘에서 유황불비가 올 것이니 도망가라고 할 때 사위들은 물 비는 보았지만 불 비는 못 보았다고 농담으로 여기고 장인은 정말 같이 말하는 재주가 있다고 찬사를 보내며 유황불에 타죽었다. 현대판 소돔고무라 사건이 근일에도 일어났다 지난 2월 20일 로드아일랜드 웨스트 워릭에 있는 나이트 클럽에서 화재가 나서 100여명 이상이 죽었다. 불은 당시 공연 중이던 그레이트 화이트 헤비메탈 그룹이 공연을 시작하면서 벌린 불꽃시연 과정에서 불이 커튼과 천장에 튀어 화재가 났다. 불길이 벽에 번져 타오르자 관중들은 그것을 불꽃공연으로 알고 박수를 쳤다. WPRI 방송이 제공한 비디오 테이프에 팬들이 무대 뒤에 불타는 모습을 보며 환호하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사실을 코미디로 알고 공연장면으로 알다가 불에 타죽은 예들이다. 요사이 TV를 보면 그것이 영화인지 실제인지 뉴스인지 미래의 가상 인지 과거의 다큐멘타리인지 미래의 공상인지 분간이 안가는 때가 있다. 사실 지난번 9.11사태 때도 TV에 WTC가 무너지는 장면이 나올 때 처음에는 영화 더 애프터 데이의 한 장면인줄 알고 정말 촬영을 잘했다고 생각하며 보았는데 조금 후에 실재임을 알게됐다. 이락 공격이 눈앞에 다가왔다 지난번 걸프전을 보며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듯 했었다. 이락 공격은 90분 안에 이락 전체가 불바다가 된다고 하니 정말 불꽃놀이 같을 것이라 상상이 된다. 사실과 가상을 분간하기 어려운 시대이기도 하지만 이 시대의 비극은 사실을 사실로 믿지 안는데 있다. 진리를 외쳐도 듣지도 믿으려고도 하지 않고 코미디로 농담으로 공연으로 생각하며 긴박한 주님의 재림을 외치는 설교를 목사들의 쇼맨십으로 알고 있다. 주님 당시에도 외쳐도 외쳐도 무반응인 세상을 향해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 치지 않는 시대라”고 말씀하셨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을 향해 귀 막은 독사라고 표현했다 술사가 피리를 불면 춤추는 것이 코브라인데 술사가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행할지라도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귀 막은 귀머거리 독사라고 말했는데 이 시대가 그런 시대가 되었다. 디모데후서 4장3절에 말세인들은 사욕의 스승을 귀에다 두고 귀가 가려워서 진리에서 귀를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쫓으리라고 예고했다. 주님은 “심판 때에 남방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며 니느웨 사람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요나가 들을까봐 염려하며 적은 소리로 말한 전도하는 소리를 듣고 민감하게 반응하여 온 나라가 회개했던 니느웨가 듣지 안는 이 세대를 심판할 것이라는 것이다. 듣지 안는 시대, 진리를 외면한 시대, 사실을 인정 안하는 현대 인들을 두고 마이동풍, 대불탄금, 우이독경이란 말을 쓰게 된다. 소귀에 경 읽어봐야, 부처에게 가야금을 타봐야, 말귀에 동풍 지나가듯 소용없는 일일 것이다. 이사야선지는 ”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와 들으라 그리하면 좋은 것을 먹을 것이요,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을 것이며, 영혼이 살 것이라고” 말씀했다. “들을 귀 있는 자가 복된 시대”(계3:13)가 바로 말세인 것이다. 우리 잠든 영혼을 깨우시려 곁에서 기적을 일으키셨으니 김권사님의 간증이 우리들의 영혼을 깨우는 놀라움으로 다가오기를 바랄 뿐이다. 박목사